이윤선의 남도인문학>송가인, 남도트로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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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인 공연모습. 뉴시스 편집에디터
송가인 공연모습. 뉴시스 편집에디터

심신정화 송송태풍(心身淨化 宋頌太風)이란 말이 있더라.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의미심장한 사자성어일까? 아니다.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되는 신조어다. 송가인의 노래바람이 심신을 정화시킨다는 의미로 만들었다나. 삼행시 짓기에서부터 열성팬클럽 회원들에 의해 직조된 조어들이 저자에 넘친다. 건배사까지 장르를 뛰어넘는다. 송가인의 본명은 조은심(曺恩心)이다. 예명을 지은 이유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엄마 송순단의 성 송(宋)과 노래 가(歌) 혹은 아름다울 가(佳)에서 따왔다. 송(Song)이 노래라는 뜻이니 일석이조다. 본 이름이 촌스러워 예명을 만들었다는데, 열성팬들은 조은심(좋은 마음)이라 추켜세운다. 가히 송가인의 시대다. 지난 회 나는 이 지면을 통해 묻지 마라 갑자생으로부터 베이비부머세대까지 송가인 열풍의 진원지를 분석한 바 있다. 사회현상의 하나라는 뜻이었다. 연전에는, “송가인의 엄마는 왜 무당이 되었을까”라는 제목으로 송가인의 토대를 분석해보기도 했다. 유행인기에 영합하거나 묻어가자는 것 아니다. 왜 송가인 현상이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 어떤 목마름들이 이 현상을 만들었는가에 대해 주목하는 것이 시대를 주목하는 문화학자의 본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최영균은 ‘커버의 전성시대’라는 화두로 빅히트곡 없는 송가인을 풀이한다.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부르는 커버 활동으로 톱가수가 먼저 되고 히트곡이 나중에 나오는 SNS시대의 풍토를 주목한 셈이다.

송가인의 무엇이 특별한가?

무명가수에서 일약 톱스타로 도약한 송가인,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어 있더라는 언설 그대로다. 백건우는 송가인의 특별함을 탁월한 가창력, 전라도 진도, 판소리와 씻김굿, 엄마 송순단 등 가족, 송가인의 개성과 태도 등으로 분석했다. 다소 과장되거나 현장 상황을 모르고 기술한 부분들이 눈에 띄지만 공감되는 분석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예컨대 탁월한 가창력을 주목한 점. 트로트의 특징 중 ‘꺾기’가 판소리의 기교와 닮아있어서 판소리를 전공했던 송가인에게 유리하다는 주장, 누구나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들이다. 고향 진도가 남도소리의 본고장이라고들 하니 진도나 남도를 내세우는 것은 불문가지다. 송가인 노래의 토대가 되었을 씻김굿에 대해서는 나 또한 지난 칼럼을 통해 소상하게 추적한 바 있다. 어머니 송순단과 외할머니, 외증조할아버지 등에 대한 내력은 지난 내 글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송가인의 트로트는 이미 우리 사회를 평정해버렸다. 엠넷 음악 프로그램 ‘더 콜’ 관련 영상 중 최단 기간 동안 100만뷰를 돌파해버리기도 했다. 지금까지 트로트는 마이너 장르였다. 인디음악, 록/메탈에도 밀리는 등수였다. 촌스런 구닥다리 전형적인 뽕짝이었던 트로트가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송가인이 그 발원지가 되어버린 셈. 가히 폭발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송가인의 노래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주간동아)의 분석을 빌려본다. 한이 맺힌 목소리, 구성진 음색과 흥이 넘치는 호흡, 정통 중의 전통 트로트라는 호평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한이 맺힌 소리? 구성진 음색과 흥이 넘치는 호흡? 그렇다. 우리 판소리 혹은 민요에 대한 언설 아니던가? 우리는 판소리와 민요를 포함하여 언필칭 남도소리라 한다. 사전적 풀이로는 남도잡가 곧 남도민요를 지칭하지만 판소리를 포함하는 통칭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송가인의 노래가 남도소리라도 된단 말인가?

엔카와 트로트 논쟁을 바라보는 시선

트로트에 대한 비하격의 호명, 뽕짝에 대한 비난의 강도를 높였던 시절이 있었다. 뽕짝은 일제 40년 동안 친숙해지도록 강요된 거짓노래였다는 것. 노동은의 주장을 빌려본다. “일본민족은 대체적으로 ‘요나누키’음계와 ‘미야코부시’음계에다 4분의 2박자로 된 ‘밥그릇’을 역사적으로 만들어내고, 여기에다 여러 곡조의 밥을 담았다. 그 밥이 다름 아닌 일본식 유행가나 가곡, 기악곡 등이다. 여기에다 일본 민족의 한과 정서를 의미화 시켰던 것. 그런데 이러한 일본민족의 밥그릇을 우리에게 종용시킨 것이 을사오조약부터였다는 사실에서 우리의 분노는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 없다.” 노동은은 나아가 우리가 어렸을 때 불렀던 동요들 예컨대 ‘학교종이 땡땡땡’이나 ‘퐁당퐁당’, ‘여우야 여우야’ 등도 일본식 음계와 장단을 따른 노래들이라고 비판했다. 재고의 여지는 없을까? 일본노래를 번안한 사례를 들어 한국 트로트 전체의 뿌리를 엔카에 비유하는 것이 온당한 것일까? 하지만 한국트로트를 일제강점기의 엔카와 판소리 특히 남도민요와의 융합으로 설명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위키사전에서도 트로트 혹은 뽕짝을 엔카의 요나누키/미야코부시 음계와 남도민요의 영향을 받아 떠는 창법이 특징인 장르로 설명하고 있다. 왜색의 수입가요, 가장 천한 노래 등으로 폄하했던 그간의 시선들과는 사뭇 다른 평가들이다. 장유정 교수는 지금까지 ‘왜색’과 ‘천박’의 그늘에 가려서 제대로 가치를 받지 못했던 대중가요의 한 양식이라고 성찰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한국 트로트의 정체성에 대한 일고찰, 구비문학연구, 2003). 임의 부재에서 비롯한 ‘동경과 그리움의 정서’가 우리 전통의 계승이라는 것과, 임에 대한 과거 지향성이나 임에 대한 시적 자아의 수동성이 민요에 이어 트로트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고바야시 다카유키(小林孝行)는 그의 글 「일본 ‘엔카’와 한국 ‘트로트’ 비교를 위한 기초적 관점」(아시아문화연구, 2018)을 통해 그간의 엔카와 트로트 논쟁을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다. 1945년 이후 한국에서는 일제잔재 청산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해방 전의 대중가요는 왜색가요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1956년에는 ‘왜색 가요 잔재에 의한 독소를 제거하고 국민 음악을 신흥하자’는 구호 아래 문교부와 국민개창운동 추진회의 공동주최로 ‘왜색풍 가곡 배격, 계몽강연회’가 개최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만들어져 큰 인기를 얻은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 정거장’,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훗날 6.25 3대 트로트로 불리게 된 곡이었지만 금지되지 않았다. 이와는 반대로 1965년 대히트했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왜색가요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엔카와 트로트를 제대로 비교분석해보지 않고 한일간 민족감정 혹은 국제환경 등의 논리가 앞서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주장이다. 지면상 보다 소상한 설명은 따로 준비하겠지만 떠오르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다. 사회적 현상의 하나로 부상한 송가인 증후군, 트로트 신드롬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송가인에 열광하는 베이비부머세대들 모두가 설마 왜색을 추종하거나 찬양하는 것일까 말이다.

송가인의 시김새, 남도 트로트의 탄생

이구동성 송가인의 노래는 특별하다고 한다. 트로트의 특징 중 꺾는 테크닉 이른바 ‘꺾기’의 명인이라는 것. 우리나라 트로트의 시작이라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에 꺾는 테크닉이 많이 나온다. 음악으로만 보면, 목포사람 이난영이 토대하고 있던 것도 남도소리라는 뜻이다. 꺾기는 무엇인가? 판소리를 포함한 남도소리 이른바 3음계 음악에서는 이를 ‘꺾는음’이라 호명해왔다. 나는 일찍이 이를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반음계(크로마티크)에 빗대어 설명해오곤 했다. 브라질 인디언이 무지개에 고통과 죽음을 연계시키는 것처럼 서구인들 역시 반음계 장르는 슬픔과 고뇌를 표현하기에 훌륭하다고 생각했다는 것. 강화된 반음계가 고조되면 영혼을 할퀸다. 저하되더라도 힘이 없어지는 것 아니다. 사람들은 진정한 비탄의 소리를 듣는다. 미분화음을 떠는 방식으로 조율하는 기법을 통해서 장식하는 남도소리의 기술들이 있다. 윗음은 꺾고 가운데 음은 평으로 흘려내며 아랫음은 심하게 떤다. 특히 윗음을 꺾는 다양한 방식을 ‘다루친다’ 혹은 ‘타루친다’고 한다. 이를 반복해서 꺾는 기교를 ‘거드렁제’라고 한다. 일반적인 바이브레이션과는 결이 다르다. 진도무악 명인 박병천의 구음이나 송가인의 첫 스승 강송대의 민요 및 트로트에서 드러나는 특징들이 모두 이 기교다. 이를 거듭 반복해 발성하거나 연주하는 프렉탈 구조가 황해로부터 남도에 이르는 황해문화권 혹은 한반도 전반을 관통해온 시김새 곧 삭임의 방식이다. 시김새가 삭힘에서 왔다는 정보는 여러 차례 이 지면을 통해 말해두었으므로 지난 내 글들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판소리나 남도민요를 전공한 이들이 ‘꺾기’를 특징 삼는 트로트에 강할 수밖에 없다. 감성을 가장 잘 전달해주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더군다나 송가인은 수리성 창법까지 곁들였다. 목청이 곰삭아서 조금 쉰듯하면서도 청아한 목소리, 판소리에서도 제일로 치는 소리목 말이다. 그래서다. 트로트의 근원에 엔카보다는 사실 남도소리가 있다는 점, 다시 분석해볼 수는 없을까? 장유정이 말했든 트로트의 정서가 우리의 민요와 시적 정서를 계승하고 담보하고 있다는 점 불문가지다. 그렇다면 이난영으로부터 온 국민이 사랑했던 국민가수 이미자를 거쳐 송가인에 이른 트로트의 제 몫을 어떻게 찾아주어야 할까? 그 대답으로 나는 ‘남도트로트’를 제안한다. 판소리와 남도민요를 통칭하는 남도소리의 ‘남도’와 그 음양의 세례를 받아 지속된 ‘트로트’를 통칭하는 방법이다. 송가인이 새삼스럽게 그 문을 열어주었다. 내 주장에 동의한다면, 이 땅의 베이비부머세대가 열광하는 트로트의 세계가 선대로부터 이어진 남도소리의 토대로부터 계승된 것이라는 점 인정한다면, 이후 오랫동안 남도트로트의 시대가 지속될 것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남도인문학 팁

송가인의 시김새, 음악의 맛을 내는 전통적인 남도소리의 기술

시김새를 맛에 비교해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다. 나는 이를 젓갈, 김치와 비교해 오랫동안 고찰해왔다. 시김새는 악기로 말하면 농현(弄絃)이다. 성악에서 시김새로 소리를 장식하듯이 기악에서 음을 흔들거나 꺾어 장식함을 말한다. 앞선 칼럼에서 술을 삭힌다는 데서 마음을 삭인다는 뜻으로 치환되는 흔적을 추적한 적이 있다. 이른바 남도의 씻김굿 의례 중 ‘이슬털이’가 그것이다. 그 음악적 총체는 겨루기와 끼어 넣기 방식이 만들어낸 시나위에 들어 있음도 살펴본 바 있다. 예컨대 남도의 씻김굿 시김새 중 최다출현 빈도를 보이는 것이 꺾는 음인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꺾는 음 즉 <꺾는 목>은 통상 단2도 정도를 미끄러지듯 하강시키는 기술이다. 이를 겹겹이 이어서 발성하는 방식을 남도소리의 ‘거드렁제’라 한다. 시김새의 꺾는 음은 일정한 유형을 가진 판형 즉 템플릿(template)이다. 시김새는 음식을 삭히는 기능과 연결되어 있고 마음을 삭이는 기능과 연결되어 있다. 시대적 배경을 신드롬이라는 이름으로 살펴보았지만, 이 발성 기능 또한 그러하니 송가인의 노래를 애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특정한 시기에 발달한 시대적 특성이기도 하다. 나는 항용 판소리와 민요를 통해 이를 설명해왔는데 송가인이 힌트를 주었다. 이 기술의 반복과 프렉탈 구조, 나아가 시대적 배경들을 설명하기 위해 나는 다시 송가인의 트로트를 주목한다.

이난영-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편집에디터
이난영-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편집에디터
이미자. 뉴시스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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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인. 뉴시스 편집에디터
송가인. 뉴시스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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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인. 뉴시스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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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전남 목포시 용해동 목포문화예술회관에서 목포출신 가수 이난영 탄생 100주기를 맞아 '이난영 가요제'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편집에디터
지난 2016년 전남 목포시 용해동 목포문화예술회관에서 목포출신 가수 이난영 탄생 100주기를 맞아 ‘이난영 가요제’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