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3당 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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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정치부장 편집에디터
박성원 정치부장 편집에디터

지금으로부터 꼭 30년전, 1990년 1월 22일 청와대에서 생중계된 뉴스속보를 본 기억이 생생하다. TV 화면에는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약칭 민정당) 총재 노태우 대통령을 가운데 두고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양 옆에 자리했다. 이들은 이날 민정·민주·공화 ‘3당 합당’을 선언했다. 원내의석 3분의 2(200석)를 크게 웃도는 221석을 가진 ‘공룡여당’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후일 신당의 이름은 ‘민주자유당’이 됐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정당들의 이합집산은 수없이 많았지만, 90년의 ‘3당 합당’은 유례를 찾기 힘든 대사건이었다. 집권여당과 2개 야당의 통합인 데다, 1988년 13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어준 국민의 뜻을 정면으로 뒤집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직전 총선에서 여당인 민정당은 과반수(150석)에 한참 못 미치는 125석을 얻는데 그쳤다. 반면 김대중 총재가 이끌던 평화민주당(약칭 평민당)은 호남지역 37개 선거구를 석권하고, 서울 등 수도권에서의 선전에 힘입어 71석을 차지함으로써 원내 제2당, 제1야당으로 부상하며 민주·공화당과 함께 야당 주도의 ‘야대(野大)정국’을 주도하고 있었다.

합당의 변으로 노 대통령과 두 야당 총재는 정쟁을 멈추고 정치 안정을 추구하기 위함이라고 밝혔지만, 호남을 기반으로 한 평민당은 정치적으로 고립됐다. 더욱이 정치권을 비호남대 호남으로 이분화 함으로써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심화시켰다.

3당 합당은 ‘광주’에도 씻지 못할 아픔을 안겼다. 여소야대 정국 속에 전두환을 5공청문회에 세우는 등 속도를 내던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움직임이 거대 여당의 등장으로 동력을 잃고 말았다.

4·15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당 간 통합이나 신당 창당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정치는 현실이고 정치인들이 현실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정당이 공당(公黨)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기본조건을 갖추는 것이 국민을 향한 예의다. 정치적 이념이나 지향점이 다른 이질적 정당이 오로지 정권 획득이나 국회의석 수 확보를 위해 한 데 모이는 건 용납될 수 없다. 정치인들은 1990년 3당 합당이 ‘연합’이 아닌 ‘야합’으로 지탄받는 이유를 되새겨봐야 한다.

박성원 정치부장

박성원 기자 sw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