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공간

유순남 수필가

43
 편집에디터
편집에디터

지난달 학생들과 2박 3일 스키캠프를 다녀왔다. 필자도 아이들 덕분에 모처럼 스키복을 입었다. 눈밭으로 나가 스키신고 걷기, 미끄러지다 멈추기 등 스키의 기초를 배우고 기초반 코스로 가서 리프트카를 기다리는데, 잘 가던 리프트카가 멈춰 섰다. 아쉽지만 첫날은 경사가 거의 없는 평지에서 연습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취침지도를 마치고, 30~40대 여교사 네 명과 한방에 모였다. 얼굴 마주하는 것도 잠시. 요가 매트를 펴고 요가를 하는 사람, 한쪽 귀퉁이에서 스쿼트를 하는 사람, 휴대폰에 열중인 사람. 요즘 젊은이들은 한 공간 안에서도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중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자 방 한쪽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 들어가는 모습은 좀 당황스러웠다.

공간. 그것은 적당히 비어 있을 때 이용 가치가 있다. 공간이 너무 좁거나 그 공간에 무언가를 가득 채우는 순간 공간이라는 본연의 기능은 사라지고 만다. 마음 또한 공간이 없으면 삶이 여유롭지 못하다. 채움은 공간을 소멸시키는 괴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음에도 공간에도 무언가를 채우지 못해 안달이다.

수년 전 중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아 가정방문을 했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어머니, 여동생과 셋이 사는 남학생이었다. 공장에 다니는 어머니와는 통화가 어렵고, 통화가 되어도 대화가 어려웠다. 녀석이 대문 앞에서 “선생님 우리 집에 들어가서 놀라지 마세요!”하고는 담을 넘어 들어갔다. 필자는 순간 ‘혹시 무서운 개나 파충류를 기르나?’하고 상상했다. 대문으로 들어가 보니 마당에 쓰레기가 가득했다. 현관 안에도 살림살이들이 쓰레기와 뒤섞여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놀라는 기색을 감추고 아이 방으로 들어갔다. 방바닥에는 책들이 몇 겹으로 흩어져있었다. “잠은 어떻게 자니?”하고 물으니, 머쓱하게 웃으며 “그냥 이 책들 위에 누워서 잡니다.”한다.

주방 바닥에는 술병이 나뒹굴고, 가스레인지위에는 거미줄이 보였다. 아이는 마른 편이었지만, 키가 반에서 가장 컸고 공부도 상위권이었다. “밥은?”하고 물으니 “사먹어요”한다. 매월 아버지가 아이들 통장에 돈을 충분히 넣어준단다. 어머니는 자기를 통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직접 송금하는 남편과 송금된 돈을 자기들 마음대로 쓰는 아이들에 대한 불만을 집이라는 공간에 표출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혼자 산책하고 혼자만의 텐트 속으로 들어가는 그 선생님의 아픈 마음을 달랠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쉽게 접근할 일도 아니었다.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멀리 하얀 스키장에 서너 명이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야간스키를 즐기고 있었다. 넓은 공간은 마음을 넓히고, 자유로움에서 오는 감정의 정화는 산 위에서 느끼는 호연지기와는 또 다른 느낌일 것 같았다. 그들이 부러워서 한참을 서서 그 광경을 즐겼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병수 원장은 『마흔, 마음공부를 시작했다』라는 책에서 ‘공간은 인간의 삶을 투영합니다.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속한 자리에 대한 묘사를 잘 들어봐야 합니다.’라며, 40~50대에 가장 많다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공감할 수 있게 얘기해주고, 힘이 되는 심리 조언들을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스키캠프 때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텐트까지 가지고 다녀야하는 40대 선생님도 언젠가는 마음의 벽을 허물고 열린 공간으로 나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얼마 전 이사를 했다. 요즘 새 아파트는 AI(인공지능)시스템일 뿐만 아니라 각 방마다 옷 방이나 옷장이 달려있고, 수납공간도 많아 공간이 무척 넓게 느껴진다. 8년 전 책을 깔고 자던 그 아이는 이제 대학 졸업반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 아이도 지금쯤은 여자 친구를 초대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방을 깨끗한 공간으로 만들어 살고 있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