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갇힌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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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고 말했다. 니체에게 ‘고독 속을 걷는 존재’는 타인의 시선, 관계에서 벗어나 자기 내면을 바라볼 줄 아는 고귀한 인간이었다.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고독'(solitude)이란 단어에 실존적이고 다소 낭만적인 의미를 부여해왔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고독은 무자비한 단어로 독해된다. 철학적 의미보다는 ‘외로움'(loneliness)에 차라리 더 가깝다.

고독사는 혼자 임종을 맞고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이다. 생의 마지막을 홀로 맞기에 ‘고독사’라 불리지만, 사회적 관계의 단절로 인한 죽음이라는 점에서는 ‘고립사’가 더 적확한 표현이다.

몇 년 째 고독사 현장을 청소해 온 A씨는 “고독사는 고독생의 다른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년 고독사 현장에서 ‘고독으로 내몰린’ 이들의 마지막 순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청년들은 유서 대신 이력서를 남겼다. 구직을 위해 몸부림치던 청년들은 자존감 추락과 함께 자기만의 섬에 갇혔다. 명문대를 졸업한 어떤 청년은 죽은 지 두 달 만에 발견됐다. 딸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끝내 딸의 방을 찾지 않았다.

자기 앞만 바라보느라 삶의 끝자락에 위태롭게 서 있는 주변인들을 우리는 쉽게 발견하지 못한다. 안타까운 사연에 눈물 훔치지만 현실은 다시 제자리다.

원인을 들여다보는 대신에 고독사를 그저 소수에게 일어나는 사건 정도로 치부해 버린다. 잊을 만하면 고독사 뉴스가 들려오는 까닭이다.

최근 세워진 고독사 예방 대책은 다양하다. 광주시 뿐 아니라 5개 자치구 모두 고독사 예방 조례안을 제정했다.

하지만 대다수가 노인, 중장년층을 겨냥한 것으로, 청년들은 조례안에서조차 소외돼 있다. 청년 실업의 근본적 대책과 지속적인 관심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고독사 예방’은 공허한 울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두 줄 짜리 짧은 시에서 ‘섬’은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단절된 인간관계를 이어줄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다. 시에 대한 해석은 자유로울 수 있지만, 시인 본인은 ‘무척 외로울 때 이 시를 썼다’고 회상한다.

이력서가 유서가 되는 현실에서 고독은 실존적 의미를 잃는다. 자기만의 섬에 외롭게 갇힌 청년들은 언제쯤 ‘그 섬’에 가닿을 수 있을까.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