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아시아의 문학예술을 만나는 법

박관서·시인

90
 편집에디터
편집에디터

“엄마가 떠나간 다음에 갑자기 육십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엄마 곁에서 우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사랑이 있습니다.”

시인이자 수필가이면서 중국의 조선족 문예지인 ‘도라지’ 잡지사 대표를 역임한 전경업 시인이, 중국 현지에서 손바닥만 한 형태의 책자로 인기리에 간행되고 있는 문예지 ‘소시계(小詩界)’의 대표이자 회족 출신인 하금(何金) 시인이 필자에게 보낸 즉흥시 ‘엄마’를 통역해 들려준다.

마침 큰 접시에 졸졸 썰어져서 나온 소 천엽요리를 초장에 묻혀 거듭 먹고 있던 때다. 차고 맑은 천엽요리는 아버지가 즐겨 드시던 음식이다. 아버지와 관련된 설명을 하면서 마침 참가한 문인들이 서로 돌아가며 노래를 통해 분위기를 돋우던 무렵 아버지의 십팔번 노래 ‘청춘고백’을 떨리는 목소리로 막 부른 참이었다.

중국 길림성 현지 문인들과 만남에는 조선족 문인을 비롯해 회족, 한족, 만주족 등 6개 민족의 문인들이 만나 얼음 언 어두운 송화강이 보이는 식당에서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필자는 연변과 길림성 등에서 접하기 쉬운 북한 문학작품과 중국 동북방 문학의 경향을 짚어보기 위해서 찾아간 길이었다. 최근 여기 저기에서 무수히 들려오는 통일문학과 예술에 대한 담론들의 거개가 수십 년 전 오래된 문학 텍스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담론을 위한 담론 수준의 하위개념에 머무르고 있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에서 였다. 물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주최로 매년 진행하고 있는 아시아문학 역시 일본, 베트남, 필리핀, 중국의 베이징 중심은 물론 유럽까지를 포괄하는 1세계 중심의 문학권역으로 이뤄지는 한계가 있었다.

사실 아시아 대부분 지역은 근대 유럽의 제국주의 침략을 유·무형으로 겪었다. 문학예술 역시 서구 중심적 가치체계를 따라가고 있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저항과 극복의지는 물론 나름의 민족적 특성을 지닌 본토박이 문학성을 지닌 3세계, 내지는 비주류 문학 역시 큰 맥락을 이루고 있다. 다만 아시아권 내에서 수천 년에 걸쳐 이뤄 온 문학예술의 역사와 전통을 겨우 백여 년의 서구적 가치와 의미망의 추구에 몰두하고 있는 우리의 얄팍한 문화적 상황이 이를 모르거나 모른 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잠시 낮에 비는 시간을 이용해 찾아 본 중국 동북방의 미술은 자못 큰 충격을 느끼게 했다. 오랜 길림의 역사와 문화를 숭상하는 정신과 전통이 담겨있는 길림문묘(吉林文廟) 옆에 딸려있는 길림시미술관에서는 마침 ‘2019 청춘기몽(靑春綺夢)’이라는 제목으로 중국 청년작가들을 초대해 미술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표현에 놀랐다. 우리나라로 들여오면 당장 누드화 정도가 아니라 법적으로 고소 대상이 될 만한 그림들이 여러 점이다. 대담하고 예리한 수묵의 필선도 자유로웠다. 누구에겐가 보이고 인정받기 위해서 펼치는 선이 아니었다. 사람이나 집이 없는 풍경화는 거의 없었지만 강한 추상의지도 함께 읽혀서 흥미로웠다.

문학이나 예술이 사회적 현상을 선도하는 것인가 아니면 따라가는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예술적 화두다. 겨우 예술적 디테일이나 스킬의 우위 여부로 판단하고 인정받는 정도의 문학이나 예술은 사실 학교 안에서나 뜨겁게 운위돼야 한다.

나라와 나라 또는 민족과 민족이 만나는 지점에서 문학예술은 무엇보다 서로를 인정해야 겠지만, 기본적으로 문학이나 예술이 인간을 위해 복무하는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 인간은 물론 예술가 자신을 통해서 만나는 모든 인간이면서 동시에 각기 다른 상황적 존재로서 다양성을 감득하는 일이 될 것이다. 통일문학도 마찬가지 이고 아시아문학도 마찬가지다.

떠나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새로 사귄 이국의 친구에게 보내는 마음으로 바꿔 들려준 하금 시인에게 나는 ‘아빠’라는 즉흥 졸시를 들려줬다.

“언제든 오고 싶던 중국 길림에 와서 아빠가 즐겨먹던 소 천엽요리를 먹습니다. 저도 어느덧 내일 모레면 육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