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갑의 정원 이야기> 밀레가 사랑한 마을 바르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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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65㎞ 정도 떨어져 있고, 퐁텐블로(Fontainebleau) 숲에서 북서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이 있다. 이곳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이 마을의 전성기는 1830년에서 1860년까지 이어졌는데 당시 80여명의 화가들이 마을에 모여 살았다고 한다. 이들을 일명 ‘바르비종파’라고 불렀는데 화가들 덕분에 마을이 일약 유명해진 것이다. 걸어서 30분 정도면 마을을 두루 산책할 수 있는데 골목길을 걷다 보면 당시 화가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밀레가 그림을 그렸던 바르비종은 원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고, 화가들이 사랑했던 퐁텐블로 숲도 지근거리에 있다.

그곳은 화가들의 고향이었고, 유럽풍경화의 산실과도 같은 곳이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는데 화가들의 그림이 마치 교회 종소리처럼 시각뿐 아니라 청각으로도 느껴질 정도이다.

“만종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린 그림이라네. 밭일을 할 때, 삼종소리가 들리면 할머니는 한 번도 잊지 않고 꼬박꼬박 우리 일손을 멈추게 하고 삼종기도를 올리게 했지, 그러면 우리는 모자를 손에 꼭 쥐고서 아주 경건하게 고인이 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곤 했지…”

밀레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의 일부내용이다. 밀레도 많은 화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려운 청년시절을 지낸 바 있다. 청년 밀레에게 유일한 위안은 파리에 있는 미술관 나들이였다. 그는 좀처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꿈마저 접을 수는 없었다.

첫 번째 부인을 결핵으로 잃은 밀레는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 아홉 명의 자녀를 두며 유복한 가정을 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 속에 유난히 ‘여인과 딸’이 자주 등장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여섯 명의 딸들이 만들어낸 화목한 집안 분위기 덕분이 아니었을까. 가족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마치 고향처럼 늘 푸근하고 정겹다.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했던 화가 밀레는 인간이 주는 따사로운 정감에도 주목했던 것 같다.

그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많은 평화스러운 풍경들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그는 작품 속에서 신성한 노동현장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그림들은 독특한 빛의 세례를 받아 더욱 눈부시게 빛난다. 리얼리즘을 추구한 화가로서는 드물게 마치 인상주의 화가들의 특권이었던 빛의 향연을 그림 속에 반영한다. 그는 오묘한 빛의 흐름을 포착해서 신비스럽게 화폭에 담아냈다. 마치 드라마 조명감독처럼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해 철저하게 빛을 연출한 것이다. 코로, 루소, 모네, 고흐 등도 빛을 연구했었는데 그들만의 독창적인 느낌으로 빛의 흐름을 화면 속에 담아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만의 확연히 다른 풍경화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는 밀레처럼 ‘농민화가’가 되고 싶어 밀레에 대해 주목했는데 그가 농촌풍경뿐만 아니라 농부들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화가들에게 조차 혁명가와도 같았던 밀레는 줄곧 말하곤 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 나는 어떠한 사상도 옹호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다. 나는 농사꾼, 그저 농사꾼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농부들은 늘 그의 그림 속 주인공이었다. 바르비종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전원풍경은 농부들의 신성한 노동을 부각시키는데 적격이었다. 당시 풍경화를 그린 화가 중에 사람을 중심으로 화폭을 구성한 작가는 거의 없었다. 오래전 16세기 플랑드르 미술의 대표적인 풍경•풍속화가로서 ‘눈 속의 사냥꾼’, ‘농민의 춤’ 등 서민의 정경(情景)을 표현하는데 탁월했던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1525?∽1569) 정도가 떠오른다.

한편, 빈센트 반 고흐는 친구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씨 뿌리는 사람’ 의 스케치를 보낸다네. 흙을 온통 파헤친 넓은 밭은 선명한 보랏빛을 띠고 있지. 잘 익은 보리밭은 옅은 진홍색을 띤 황토색이네. 노란색에 보라색을 섞어서 중성적인 톤으로 칠한 대지에는 노란 물감으로 붓질을 많이 했네. 실제로 대지가 어떤 색인가는 별로 관심이 없네. 낡은 달력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거든…” 사실, 고흐는 밀레의 정신과 화풍 등 모든 것을 흠모했고 또 닮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고흐는 밀레의 여러 작품 중 특히 ‘씨 뿌리는 사람’에 주목했고, 이 작품을 판화와 유화재료를 통해 수차례 모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평범한 농민들의 생활을 다채롭게 묘사했던 밀레는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애석하다, 난 그림을 더 그릴 수 있는데…” 그의 건강은 더 이상 생명연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1875년 1월 20일 61세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바르비종의 거장’이 숨을 거둔 곳은 다름 아닌 그를 키워낸 바르비종이었다. 만종의 배경이 된 샤이(Chailly) 숲에 그의 묘지가 마련되었다. 그는 죽어서도 바르비종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밀레 그림의 배경이 되었던 농촌은 단순히 농경지가 아니라 사람 냄새나는 삶의 현장이요

인간의 존엄성이 짙게 배어 있는 신성한 노동의 정원이었다. 그의 채취가 물씬 풍기는 바르비종은 집도, 골목길도 그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오래된 정원처럼 정겹다. 건물과 담장, 화분 하나하나가 밀레의 그림을 닮았다. 건물의 벽면과 창틀도 마치 캔버스에 그린 것처럼 하나의 작품이 되고 있다. 특히 만종의 배경이 되었던 농경지는 그림을 그렸던 당시의 원풍경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어 그림을 통해 느꼈던 것 이상의 감동을 전한다. 밀레가 사랑한 바르비종, 이제 마을사람들이 밀레의 정신이 짙게 배어 있는 고즈넉한 풍경을 잘 지켜가고 있다. 참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밀레가 그리고 싶었던 풍경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는 프랑스 화가로 바르비종파(Barbizon School)를 창립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이삭줍기,’ ‘만종,’ ‘씨 뿌리는 사람’ 등 농부들의 일상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하며, 사실주의(Realism) 혹은 자연주의(Naturalism) 화가라 불리었다. 그는 노르망디의 그레빌 아그(Gréville-Hague)에 있는 작은 마을 그뤼시(Gruchy)에서 장 루이 니콜라(Jean-Louis-Nicolas)와 에메 앙리에트 아델라이드 앙리(Aimée-Henriette-Adélaïde Henry)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곳은 농촌지역이었기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농부들의 삶을 관찰하며 자라게 되었다. 밀레는 그 시절 마을교회의 두 개신교 목사들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라틴어와 근대문학 작가들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성인(聖人)들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아 종교적인 장면을 데생기법으로 즐겨 그렸다고 한다.

1849년 6월 파리 근교의 농촌마을 바르비종으로 이주하면서 주위의 가난한 농부들을 소재로 본격적인 농촌, 농민들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그림들을 통해 그는 힘겨웠던 날들을 오히려 숭고한 신앙적 이미지로 승화시키며 화단과 사회로부터 주목받았다. 밀레는 바르비종에 머물면서 있는 그대로의 풍경 속에 일상의 인물들에게 주목함으로써 다른 바르비종의 화가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였다.

너른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 인물들은 당시 아카데미가 선호하는 신화나 종교적 인물 혹은 영웅이 아니라, 그저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가는 농부들이었다. 그 때문에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삶’을 그리는 ‘농민화가’로 불리게 되었다. 1868년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종 도뇌르 훈장(Chevalier de la Legion d’Honneur)을 받기도 했다.

바르비종에는 밀레 아틀리에가 소박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현재 사설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밀레의 화구와 가족사진, 드로잉 등을 전시하고 있어 다소나마 그의 채취를 느낄 수 있다. 바르비종에서 만나는 들녘, 마을, 아틀리에 등은 하나 같이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소박한 풍경들이다. 그러나 밀레의 그림으로 만나는 바르비종의 풍경들은 숭고하고 한 차원 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자연과 사람, 두 대상이 마치 노동이라는 언어를 통해 서로 배려하며 교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저렇게 조화롭고 품위 있게 그릴 수 있을까. 신비스럽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자연은 사람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사람은 자연에 감사하며 나아가 자연과 사람을 창조한 신(神)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밀레의 그림을 통해 그의 자연관, 노동관, 신앙관 등을 엿볼 수 있는데 자연을 신성하게 생각하고 사람을 품격 있게 대하는 화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꾸는 우리가 반드시 지녀야할 마음가짐은 바로 밀레의 그림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파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시골마을이다.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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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가 1850년 살롱전에 출품한- 씨뿌리는 사람들, 보스턴 미술관 편집에디터
밀레가 1850년 살롱전에 출품한- 씨뿌리는 사람들, 보스턴 미술관 편집에디터
밀레의 만종, 1857~1859년 제작, 오르세 미술관 편집에디터
밀레의 만종, 1857~1859년 제작, 오르세 미술관 편집에디터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1857년 제작, 오르세 미술관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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