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2019 우리를 슬프게 한 것들

김선기 문학박사·시문학파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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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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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이 저물어간다. 올 한해는 정말 다사다난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또 무슨 슬픈 소식이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또 눈물을 흘려야 할까. 아무 문제가 없는 날이 오히려 불안한 우리의 일상이 돼버렸다.

안톤 슈낙은 그 유명한 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 숱한 세월이 흐른 후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동물원 우리 안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 마리 범의 모습,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회색의 빛깔들, 이런 것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갈파했다.

고교 시절 수십번 쯤은 읊고, 들었을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수필가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수필이다. 인간의 가슴 저 깊숙한 곳에 숨은 작은 아픔들을 담아 낸 글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그려낸 인간의 아픔들이 어디 그뿐이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아픈 모습들이 많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는 슬퍼한다.

올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참 많았다. 그 슬픔은 때로는 연민의 정을 느끼게도 했다. 연민에 관한 바이런의 표현은 매우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연민의 이슬은 눈물이다(The dew of compassion is a tear)’. 어떤 연민이든지 그 연민은 우리를 눈물짓게 만든다. 우리 조상들은 이웃이 슬픔을 당하면 함께 슬퍼하고, 이웃이 아파하면 그 아픔을 나누며 서로 위로하며 살았다.

그런데 요즘 그 미덕을 찾기란 힘들다. 정치권이 더욱 그렇다. 오늘 남의 불행이 내일 나의 불행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다.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여야가 서로를 폄훼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로 극과 극을 달리는 정치인들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적훼소골(積毁銷骨)’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의미는 이렇다. 험담이나 비방을 자꾸 하면 뼈도 녹는다는 뜻이다. 남들이 헐뜯는 말의 무서움을 비유적으로 이른 것이다. 이 말은 춘추전국시대 장의가 위나라 왕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생긴 사자성어다. 장의가 위나라 왕을 설득한 말을 보면 우리들이 사용하는 말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다.

특히 정치인들은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 말이 국민들에게 희망이 되고 위로가 되고 감동을 주는 말이어야 한다. 그러나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아픔을 당한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 주는 정치인들의 저속한 언어가 우리를 한없이 슬프게 한다. 정작 국민들을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정쟁(政爭)만을 일삼는 정치꾼들이다. 국회의원들의 시위와 농성은 이제 국민들에게 익숙한 모습이다.

총선이 몇 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기다렸다. 그동안 우리를 슬프게 한 정치인들의 면면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을 터다. 이제 판단은 공을 넘겨받은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