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침묵의 카르텔

유순남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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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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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마치고 동료들을 관사로 초대했다. 강화도에서 새우양식을 하는 지인이 보내온 새우를 노릇노릇 굽고, 봄부터 가꾼 늙은 호박으로는 죽을 쑤고, 마을에서 생산된 송화버섯과 유정란으로는 전을 지졌다. 네 명이 각자 잘하는 것을 동시에 하니 금방 한 상이 차려졌다. 맛있게 먹고 과일을 준비하고 있는데, 정경심교수사건 뉴스를 보던 모 직원이 불쑥 “엄마찬스 안 쓴 사람이 어딨어?” 한다. ‘다 쓰는데 좀 쓰면 안되나?’하는 분위기다. 분위기를 깨는 것 같아 좀 미안했지만 “그렇게 단정해서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더니, “아니, 급식소에서 짜장면 먹는 날, 직원아이라고 사리하나 더 주는 것은 엄마찬스 아닌가요?”하며 기세를 이어갔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 입학특혜가 밝혀질 때만해도 그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까지 ‘침묵의 카르텔’로 위장하고 그들을 비난했다. 그러다가 정교수의 딸 입학특혜가 이슈화되면서 정치인들이 상대진영의 ‘찬스’들을 들춰내니 그동안 쉬쉬하던 아빠찬스들까지 불거져 나왔다. 김성태의 딸, 나경원의 아들과 딸, 국정원의 아빠찬스, 전대병원의 아빠찬스…. 이 땅의 수많은 엄마 아빠들이 자식의 대학입학과 취직을 위해서 불공정한 특혜를 누리고, 찬스를 쓰지 못한 자들은 그들을 부러워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도덕 불감증이 만연되어있다.

‘침묵의 카르텔’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오래된 친구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고친구의 아버지는 광주 모 대학병원 원장을 하셨고, 지금은 고인이 되셨다. 필자가 여고생이었을 때 의과대학 교수를 하셨는데, ‘학점 짜게 주는 교수’로 유명했다. 남의 생명을 다루어야 할 사람이 실력이 없으면 큰일을 낼 수 있기 때문이란다. 다른 친구랑 그 친구 집에 가끔씩 놀러갔었는데, 학점을 나쁘게 받은 학생이 대문에 걸린 문패를 빼서 내동댕이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놀러 가면 아버님은 손수 밀가루를 반죽해서 우동을 만들어줄 정도로 다정다감하셨다.

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필자가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뇌에 이상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정년퇴임 후 집에 계시는 친구 아버지를 찾아가서 문의했다. 당장 같이 병원에 가서 재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이튼 날 친구 아버지와 그 대학병원에 갔다. 마주치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모두 인사를 하며 “무슨 일로 오셨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분은 별일 아니라며 필자랑 같이 한 시간 이상을 병원 복도에 있는 대기의자에 앉아 병원 절차에 따랐다. 죄송하고 민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재검결과는 정상이었다. 종합검진기록이 잘못된 것 같았다. 또 필자가 처음 교단에 설 무렵에는 교사가 부족해서 말만하면 대학 산하 중·고등학교에 취직시킬 수 있었는데도, 사범대학을 졸업한 딸이 해남 벽촌학교로 가도록 내버려두신 분이다.

‘침묵의 카르텔’중 가장 심각한 것은 일 년에 몇 억씩 오르는 서울의 집값이다. 직장 때문에 서울에서 살아야만 하는 집 없는 사람들은 절망에 짓눌려 허리도 재대로 펴지 못하는데, 서울에 집을 여러 채 소유한 사람들은 자고나면 오르는 집값 때문에 싱글벙글 이란다. 중앙대 김누리 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 부동산의 95%를 상위 26%가 소유하고, 하위 50%의 국민은 1%미만의 재산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독일은 보수들도 주택과 의료비 그리고 학비(대학까지)는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한다며,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정의당 의원 5명을 제외한 295명이 모두 보수라는 것이다. 집값 잡는 법을 만들어야할 정치인들 대다수가 서울에 집을 여러 채씩 가지고 있어서 집값에 대해서는 대부분 침묵하는 데 문제가 있다.

‘찬스’고발도 ‘미투’처럼 계속해서 확산되어갔으면 좋겠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스스로 ‘침묵의 카르텔’을 깨부수고, 공정한 규칙을 따라서 함께 잘사는 사회로 만들어가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