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료들, 트럼프식으로 밀어붙이다 주한미군 철수설에 ‘움찔’

미 국방장관 주한미군 철수설에 "부정확·과장된 기사"
미 국방부 대변인 "조선일보 기사 즉각 취소 요구"
방위비 분담금 이유로 철수 시 타 동맹국들에 선례
주한미군 대신 무역장벽 등 다른 압박 카드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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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이 1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제51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고위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이 1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제51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고위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협상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문제 등에서 자신만만한 태도로 일관하던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설’까지 불거지자 급히 수세로 전환했다.

방위비 분담금을 5배 증액해야 한다며 이른바 트럼프 식 협상전술로 우리 정부를 압박하던 미국이 자국의 세계 전략에 필수적인 주한미군의 철수가 거론되자 급히 진화에 나서는 모양새다.

21일(현지시간) 미 국방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아시아 순방 후 귀국길에 오르기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주한미군 일부 철수 가능성에 대해 “나는 언제나 언론에서 거짓이거나 또는 부정확하거나 과장된 기사를 읽는다”며 “우리는 이 문제로 동맹을 위협하지 않는다. 이건 협상”이라고 강력 부인했다.

에스퍼 장관은 또 방위비 분담금 논의 주체가 미 국무부라는 점을 거듭 밝히며 “그들이 카운터파트들과 앉아 이 문제를 다루도록 하자. 동맹국들이 세부 사항을 다뤄야 한다”고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 같은 태도는 최근 방한 때 에스퍼 장관 자신이 했던 발언과 차이가 있다. 에스퍼 장관은 15일 우리 국방부에서 열린 한미 안보협의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한미 동맹은 매우 강한 동맹이며 대한민국은 부유한 국가이기 때문에 조금 더 부담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있고 조금 더 부담을 해야만 한다”며 노골적으로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이랬던 그가 주한미군 철수설이 불거진 뒤 방어적으로 바뀐 것이다.

미 국방부 대변인의 발언 역시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설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보여준다. 조너선 호프먼 미 국방부 대변인은 21일 “미 국방부가 현재 주한미군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는 조선일보 보도는 전혀 진실을 담고 있지 않다”며 “조선일보에 즉각 기사를 취소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미 정부 부처가 자국이 아닌 타국의 언론사를 직설적으로 거명하며 기사를 취소하라고까지 요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와 지소미아 연장 밀어붙이기로 일관하다 불똥이 주한미군 철수에까지 튀자 미 측은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그간 지속됐던 미 측의 공세 일변도 협상 태도가 바뀌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국을 활용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동북아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으로선 주한미군은 버릴 수 없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방위비 분담금을 올리지 않는다고 해서 미군을 철수시키는 선례가 생기는 것 역시 미국으로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 중 하나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 거부를 이유로 주한미군이 일부 철수하는 사태를 낳으면 이는 미군이 주둔하는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등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된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22일 뉴시스와 통화에서 “만약에 방위비 때문에 미국이 주한미군을 일부 철수하거나 주한미군의 역할을 조정한다면 이는 ‘돈을 안 내면 방위를 해줄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내는 것”이라며 “그러면 미국이 그간 구축한 동맹 네트워크가 붕괴된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미군 주둔국이나 동맹국에 엄청난 도전이 된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주한미군 철수는 한반도 유사 사태 시 한미 연합 작전에 큰 지장을 준다. 주한미군의 주축은 한반도 유사 사태 발생 시 한반도로 투입되는 미군 증원 병력을 지휘하고 통제하는 사령부 병력인데 이를 철수시키면 미국의 한반도 방위공약을 철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주한미군 철수 논란을 계기로 미 측 인사들이 강경 일변도 태도를 바꿀지 주목된다. 그간 미 측 주요 인사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협상 스타일처럼 자국의 요구사항을 일방적으로 제시하고 밀어붙여왔다.

19일 한국에서 열린 제11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3차 회의에서는 제임스 드하트 미 측 수석대표가 80분 만에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의 태도 역시 구설수에 올랐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은 해리스 대사를 지난 7일 만난 사실을 거론하며 “해리스 대사가 관저로 불러 인사 나누는 자리로 알고 가볍게 갔는데 서론도 없이 50억 달러를 내라고 여러 번, 제 느낌에 20번 가량 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해리스 대사의 태도는 한국에서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주한미군 철수설로 일시적으로 수세에 몰리긴 했지만 미국이 이를 이유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을 멈추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미국은 무역 장벽 등을 활용해 우리 정부를 몰아붙일 가능성이 있다.

박원곤 교수는 “트럼프에게는 주한미군 카드 말고도 한국에 명백한 압박을 주면서 다른 방위비 협상 대상국에게도 경고를 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카드가 있다”며 “트럼프가 자주 쓰고 또 활용하기 용이한 것은 무역 관세”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자동차나 철강제품을 활용해 무역 장벽을 세울 수 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미국은 자신에게 익숙한 그 카드를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으로선 무역 장벽이 동맹의 신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을 압박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라고 짚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