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에 홀로 떠난 ‘인생 만리’

본보 '길 위의 인생' 의 저자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40세에 900㎞ 산티아고 순례길 홀로 걸는 진정한 독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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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중 포도주 생산지로 유명한 라 리오하의 길. 차노휘가 불혹의 나이에 순례자의 길을 여행한 인생 에세이인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을 출간했다. 편집에디터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중 포도주 생산지로 유명한 라 리오하의 길. 차노휘가 불혹의 나이에 순례자의 길을 여행한 인생 에세이인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을 출간했다. 편집에디터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 차노휘 | 지식과감성 | 1만6000원

전남일보에 ‘길 위의 인생’이란 기획연재물을 연재하고 있는 차노휘씨가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직접 걷고 고생하며 느낀 인생 에세이를 출간 했다.

저자는 이집트를 떠나기 전, 그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던 지난 2016년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 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혹이라고도 일컫는 ‘마흔’이었다. ‘마흔’은 공자가 바라보기에 세상 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로 뚝심 있고, 제 자리를 굳건히 지킬 줄 아는 그런 나이다. 저자에게도 마흔은 “적당히 이루었고, 적당히 포기한 채 살아갈 나이, 책임져야 할 것과 책임에서 벗어나고픈 것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칠 나이”라고 했다.

무기력과 삶의 열망, 그 사이의 경계에 선 저자도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누군가 평안과 안정을 누릴 때라고 생각할 ‘마흔’에 저자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마흔’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인가를 움켜쥔 채 흔들리지 않기를 갈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혼자서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 찮은 일이다. 당장 국내여행을 간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혼자 사람들이 북적댈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을지, 함께 하는 이들 없이 지나쳐가는 풍경 속에서 홀로 무슨 사색에 잠길 것인지 조차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혼자 모든 것을 해낸다는 것은 혼자가 되는 일이다. 혼자가 되는 일은 진정한 ‘독립’을 이루는 일이다.

“늘 그렇다. 힘든 일이든 기쁜 일이든 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새로 시작할 수가 없다”

이렇게 말한 저자는 계속해서 살아가기 위해 저자는 900㎞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낯선 땅에서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과 걷는 길은 때론 매우 고독한 일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게 된 데에는 극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걷고 싶었을 뿐이다. 뭔가를 더 바라는 솔직한 마음도 있을 수 있다. 나를 추동하는 그 힘이, 내가 내보이기 싫은 그 무엇이 무의식에 있을 거라고. 걷다 보면, 그러니까 걸으면서 내가 ‘나’와 대화를 하다보면 그 윤곽이 잡히겠지 싶었다. 그 막연함이 좋았다”

저자에게 여행은 ‘자아를 찾는 일’이었다. 그러나 낯선 이들은 저자에게 정확한 이유를 물었다. 저자가 론세스바예스에서 저녁 식사를 할 때는 누군가에게 “왜 한국 사람들은 이 길을 많이 걷죠? 가톨릭 국가도 아니잖아요?”라는 질문에 외로움을 느낀다.

“순례자라고 해서 다 종교적인 이유로 걷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현대 사회의 욕구에 맞게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이 카미노(길) 위에 선다”는 생각도 낯선 이들에게 발설하지 못했다. 길에서 만난 낯선 이들은 때론 저자에게 ‘공포’, ‘두려움’이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많게는 하루 10시간씩 무거운 짐을 들고 길을 걷는 일에는 몸살, 물집, 근육통 등에 매일 시달리는 일이 따라온다.

그러나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연상되는 황금색의 밀밭과 어느새 동행인이 돼 만날 수 있는 양떼 등은 저자의 고독한 여행길에 힐링이 되는 환상적인 배경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풍경과 내 발의 고통이 겹쳐지며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마력. 저자는 이를 “나는 ‘지금 당장 내 몸의 고통’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지나온 일도 앞으로의 일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이상하게 그것이 고마웠다”고 적었다.

함께 가던 동행인과 멀어지기도 하고, 뒤쳐지기도 하다 겨우 나만의 보폭을 찾을 무렵은 ‘혼자가 되기’를 자처하는 순간이다. 저자는 “혼자 걸으면 혼자 쉬고 싶을 때 쉬고 내 발걸음 속도에 맞춰서 갈 수 있잖아. 시간이 다소 지체되더라도 목적지에는 도착하기 마련이야. 그래서 나는 혼자 걷기로 했어”라고 깨닫는다.

여행을 끝난 뒤 저자는 이제 길 위에 서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극적인 변화는 얻을 수 없을지 몰라도 굳은 심지를 얻을 수 있었고, 자존감을 한층 더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발 한 발 내딛으면서 자신 전부를 쏟아부을 수 있었던 든든한 아군, 용기를 확보한 저자의 발걸음이 책에 가득 담겼다.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편집에디터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편집에디터
최황지 기자 orchid@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