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길 60년 걸어보니 조화가 가장 중요하더라”

연진미술원서 만난 의재 허백련 장손 허달재(69) 화백
조부 영향으로 어린시절부터 자연스레 남종화 습득
의재화풍 전수하기보단 수십년간 자신만의 화풍으로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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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헌 허달재 화백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
직헌 허달재 화백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

100, 혹은 ‘백’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다. 신에 도전하는 수로 ‘완성’의 의미를 지닌다. 한자가 의미하는 바는 다르지만, ‘화가’를 높여 부르는 말에 ‘백’자를 사용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화백’이란 화가로서 백수까지 온 힘을 다해 정진하는 사람이다. ‘화백’이라는 칭호가 붙는 화가에게서 그만의 정체성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까닭이다.

의재 허백련 선생의 제자이자 장손으로 한국 남종화의 대를 잇고 있는 직헌 허달재(69) 화백은 60여년 화업에 대한 철학과 소회를 어떻게 정리하고 있을까. 지난 4일, 의재 허백련 선생이 이끌었던 연진회의 흔적이 남아있는 광주 동구 운림동 연진미술원에서 허달재 화백을 만났다.

“세상은 둘로 나누어져 있어요. 하늘과 땅, 남과 녀, 낮과 밤, 시작과 끝, 동양과 서양, 몸과 정신이죠. 중요한 것은 이분법적인 세계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죠. 조화의 극치를 이루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의 가치입니다.”

지난 6월 서울 표 갤러리에서 열렸던 개인전 ‘정중동 동중정’은 수행처럼 지나온 지난 60여년간의 허 화백의 화업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정지해 있는 것을 극복하려면 움직여야 하고, 움직이는 것을 이기려면 정지해야 한다는 의미의 ‘정중동 동중정’은 중용과 조화를 아우르는 삶의 지혜다.

‘중용’과 ‘조화’는 허 화백이 정리한 남종화의 사상이다.

“처음에는 스승 밑에서 기술을 배워요. 많은 고통이 따르는 시간이죠. 그림도 마찬가지에요. 동양화는 테크닉을 안배우면 절대 그릴 수 없어요. 스스로 터득할 수 없기에 스승들이 경험을 통해 지름길을 알려주죠. 그걸 습득하고 나면, 이후엔 자기 것을 찾아 나서야 해요. 처음엔 스승의 그림을 닮았다가 이후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자기도 모르게 습득하게 되죠. 이게 남종화의 사상입니다.”

전통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다.

남종화의 전통 수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감성과 색채를 가미한 작품으로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해온 허달재 화백은 여섯 살 때부터 조부로부터 남종화를 접했다. 사실적인 모습을 화선지에 담은 북종화와 달리 남종화는 사의적인 작품이다. 풍경을 있는 그대로 화선지에 옮기는 것이 북종화라면, 남종화는 풍경에 대한 느낌을 화선지에 옮긴다. 남종화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앞서 그가 조부로부터 배운 것은 그림에 대한 기술이 아닌 사상이었다.

“붓글씨를 먼저 가르쳐주셨어요. 글씨 쓰는 법이 아닌 글 속에 담긴 선인들의 사상과 예절을 먼저 가르쳐주셨죠. 그림에 대한 기술보다 삶에 대한 방법을 알려주신 것은, 살아가는데 있어 근본을 마음에 새기고 현실을 따르라는 의미셨죠.”

눈으로 보는 그림은 손재주로 얼마든지 그릴 수 있지만, 그림이 가지는 느낌은 작가의 정신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좋은 그림이란, 좋은 느낌을 주는 그림이에요. 그 느낌은 작가의 정신이죠. 작가 마음이 안 좋으면 그림도 안 좋아요. 보는 사람도 다 느낄 수 있죠. 좋은 음악을 들으면 엔돌핀이 분비되는 것처럼, 그림도 마찬가지에요. 좋은 그림은 관람객들에게 엔돌핀을 분비하게 하죠. 작가가 맑은 정신을, 선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죠.”

‘좋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일종의 수행’이라는 기자의 말에 허 화백은 어느 정도 공감했다. 그러면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조화를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조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세상엔 보이는 것이 반, 보이지 않는 것이 반이에요. 보이지 않는 것은 정신세계죠.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은 부분이 통해야 한다는 거죠. 중용이란 작가와 보는 사람이 교감을 잘 이루도록 하는 거에요.”

작품을 매개로 작가와 교감을 이루기 위해선 관람자 역시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조부였던 의재 허백련 선생이 연진회를 만든 것에 대해 깊이 공감을 하고 있었다. 남종화 부흥의 구심점이었던 의재 허백련은 1938년 서화 동호인들과 함께 연진회를 발족시켰다. 문필가는 물론 경제인, 독립운동가, 정치인들까지 호응했던 연진회는 글귀처럼 차를 나누며 서화를 즐기며 남화 정신을 계승해오고 있다. 연진회는 남화 정신을 계승하면서 민족사상을 고취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당시 활동으로 인해 지역민들이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토양을 길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70~80년대 광주시민들은 문화예술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수준이었어요. 예술인이 대접받는 시절이기도 했죠. 구두를 닦는 분들도 난초 그림은 누가 좋고, 대나무는 누가 좋다고 동양화를 분석할 수 있는 수준이었죠. 지금은 예전만큼의 여유와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곧 남종화의 위기이기도 하죠.”

남종화가 위기를 겪고 있는 것, 달리 말하면 광주만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서양위주의 사고방식 때문이라고 그는 보고 있다. 전통 묵향을 간직하고 있는 이보다 대학에서 그림을 배운 이가 대접받는 학벌주의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라고 비판했다.

“대학에서 배우는 수묵과 산 속에서 배우는 수묵은 달라요. 근본적으로 산속에서 배운 수묵에 묵향이 더 짙죠. 이게 남도 수묵화거든요. 그런데 전통적인 남도수묵를 잇는 이들은 제자를 양성할 수 없어요. 대학을 안나왔기 때문에요. 학벌주의가 우리 문화예술의 중요한 기운과 흙을 다 빼버렸어요.”

전통 남종화를 유지하면서도 변화를 통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축해 온 허달재 화백은 ‘남종화의 계승’이라는 묵직한 과제를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아직 그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강조한다. 남종화, 나아가 동양화에 대한 토양을 지켜내고 길러내는 일이다.

“미술수업에서도 서양화만 가르치지, 동양화는 가르치지 않아요. 안타까운 현실이죠. 공교육 현실이 이러하니, 의재미술관이나 연진미술원에서라도 우리 토양을 잘 배양시킬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도 최선을 다해볼 계획입니다.”

직헌 허달재 화백의 작업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
직헌 허달재 화백의 작업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
직헌 허달재 화백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
직헌 허달재 화백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

100, 혹은 ‘백’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합니다. 신에 도전하는 수로 ‘완성’의 의미를 지닙니다. 한자가 의미하는 바는 다르지만, ‘화가’를 높여 부르는 말에 ‘백’자를 사용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화백’이란 화가로서 백수까지 온 힘을 다해 정진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화백’이라는 칭호가 붙는 화가에게서 그만의 정체성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까닭입니다. 의재 허백련 선생의 제자이자 장손으로 한국 남종화의 대를 잇고 있는 직헌 허달재(69) 화백은 60여년 화업에 대한 철학과 소회를 어떻게 정리하고 있을까요? 지난 4일, 의재 허백련 선생이 이끌었던 연진회의 흔적이 남아있는 광주 동구 운림동 연진미술원에서 허달재 화백을 만났습니다. *관련기사보기 : https://jnilbo.com/2019/11/10/2019110515200788583/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