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늦깎이들에게

유순남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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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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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딸아이는 유난히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다. 중학교 다닐 때 학교공부와는 담을 쌓고,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3학년 가을이었다. 그 아이는 대뜸”엄마, 나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안 다닐 거니까 납부금 저 주세요! 사업하게요.”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 아이는 어려서부터 자아가 강했다. 세 살 때의 일이다. 어떤 일에 고집을 부려서 혼을 냈더니 “엄마, 미워! 엄마하고 안 놀아, 엄마 딸 안 할 거야!”하며 자기주장을 해서 “그래, 엄마가 잘못했다” 하며 달랜 적이 있었다. 네 살 때는 아이들에게 각자의 방을 줬더니, 여섯 살 아들은 “엄마, 무서워요, 엄마랑 같이 자고 싶어요.”하는데, 그 아이는 “나는 내방에서 자야지!”하며 자기 방으로 갔다. 그래서 “나는 네가 학교를 다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니고 안다니는 것은 네가 결정해라. 그러나 나중에 학교 안 보냈다고 엄마 원망은 하지마라. 그리고 돈은 줄 수 없다. 네가 아직 미성년자라 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 해 12월 쯤 “엄마, 아무래도 고등학교는 다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오빠처럼 날마다 ‘야자’하고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교도소 같은 인문계는 다니고 싶지 않아요.” 그런 후 자기가 원하는 실업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도 다녔으나 자기가 원하는 직장에 취직하기는 쉽지 않았다. 사회적 기업에서 근무한 적도 있지만, 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독립 생활비를 충당하느라 전전긍긍했다. 언젠가는 자기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을 하루 하고는 24시간동안 잠에서 헤어나지 못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 아이는”어려서 부모 말 안 듣고 공부 안했더니 먹고살기 힘드네요.”하며 웃었다.

그러던 중 지난여름 그 아이에게 원하는 일자리가 생겼다. 협력교수들과 함께 사업제안서를 만들고, 해당관청에 가서 그것을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일이다. 창의력은 있는 아이인데다, 수습기간이 있어 일은 차츰 배워서 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근무 전 컴퓨터 작업을 연습하고, 관련 책들을 열심히 공부하며 “엄마, 공부가 재밌어요!” 한다.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걱정도 있었다. 출근한지 3주차 되는 어느 날. 딸아이의 직장상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앞으로 따님 걱정은 하시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일을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있어요. 그리고 나이 드신 어떤 손님이 ‘조백(皁白) 있게 자란아이’같다고 칭찬하시네요.”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어떤 일을 해야 할 나이에 그 일을 해낸 사람들은 무난하게 인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다. 어려서 한눈을 팔고 지내다 나이가 든 후에 철이 들 수도 있고, 딴 짓을 하다가 자신이 잘하는 일을 발견할 수도 있다. 늦게 시작했어도 크게 성공한 사람도 많다. 그랜드마 모지스는 76세에 그림을 시작했지만 미국의 ‘국민화가’ 라는 호칭까지 얻게 되었다. 고구려 고국천왕의 총애를 받았던 을파소는 70세에 국상으로 발탁 되었는데, 당시 시골 농부였다고 한다. 그는 빈민구제법인 ‘진대법’을 만들어 실시했고, 고구려 사회의 새로운 정치질서를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나이에 맞게 자리를 잡지 못하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부모도 애가 탄다. 하지만 패자부활전에서의 승리는 응원만 해도 기쁨이 두 배지 않은가? 살면서 실패도 하고 성공도하면서 ‘기쁨, 성냄, 슬픔, 즐거움, 사랑, 증오, 욕심’의 감정을 모두 맛보는 것은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른다. 인생은 이 칠정(七情)을 체험한 후 ‘인자함, 의로움, 예의로움, 지혜로움’으로 승화시켜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인생이 남과 같지 않을 때, 혹은 일찍 성공하지 못하고 방황을 해본 사람이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딸아! 그리고 세상의 모든 늦깎이들이여! 희망 잃지 말고, 힘내라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