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홍승의 클래식 이야기>세계의 도시, 극장, 오케스트라

런던 로열 앨버트 홀 (Royal Albert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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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앨버트 홀 편집에디터
로열 앨버트 홀 편집에디터

런던 로열 앨버트 홀 (Royal Albert Hall)

1853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의 남편인 앨버트(Albert) 공(公)은 유럽에 남아 있는 로마시대의 원형극장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런던 남서부에 위치한 켄싱턴에 큰 공연장을 건립하려는 계획을 가지게 되었다. 1851년 앨버트 공이 주도하여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Great Exhibition of the Works of Industry of all Nations)는 대성공을 거두며 18만 6436파운드의 수익금을 남기게 되는데 이에 앨버트 공은 박람회의 정신을 후손 대대로 이어갈 수 있는 ‘산업, 문화, 과학을 위한 건물’을 지을 것을 제안했던 것이다. 1861년 앨버트 공이 장티푸스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남편을 깊이 사랑했던 빅토리아 여왕은 켄싱턴 가든 (Kensington Gardens)에 앨버트 기념비를 세우는 것과 함께 근처에 공공(公共) 콘서트홀을 짓기 위한 계획을 즉각 수립하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박람회 수익금은 앨버트 기념관 건립과 공연장 부지 매입만으로도 금세 바닥을 드러내고 마는데 이때 공연장 건축비 20만 파운드를 마련하기 위해 새롭게 나온 아이디어는 객석을 100 파운드씩을 받고 파는 것이었다. 객석 주인과는 매년 사용료를 내고 999년간 임대하는 조건의 계약을 맺었는데 형식적으로는 임대이지만 사실상 헌금이나 다름없는 형태로서 객석의 주인들이 공연장을 찾지 않는 날에는 그 좌석들이 일반 시민들에게 판매되었다. 지금도 명목상으로는 345명의 개인과 법인이 1290석의 주인으로 되어 있으며 빅토리아 여왕은 가장 큰 박스석인 퀸즈 박스(Queens Box)를 샀는데 그 박스의 좌석은 20석이다. 공연이 있는 날은 여왕과 왕실 가족들이 왕실 전용 통로를 통해 입장하여 퀸즈 박스에서 공연을 관람하지만 여왕이 공연관람을 하지 않는 날은 이 좌석들도 일반인들에게 판매되고 있다. 이 공연장의 규모에 대한 당초 계획은 3만석 규모의 원형극장이었으나 예산의 부족으로 그 규모는 7000석으로 줄어들었으며 오늘날 이 회관의 수용 인원은 5222석의 객석과 입석 500석을 합쳐서 약 6천 여 명으로 지금까지 영국 최대 규모의 콘서트홀이다. 지붕이 주철(鑄鐵)과 유리로 뒤덮여 있는 이 건물의 원래 명칭은 ‘예술과 과학의 중앙 홀’ (The Central Hall of Arts and Sciences)이었으나 1867년 5월 20일 정초식(定礎式)에 참석한 빅토리아 여왕이 남편 앨버트 공에 대한 추모의 뜻을 담아 ‘로열 앨버트 홀’로 이름을 바꿨으며 앨버트 공 추모비는 로열 앨버트 홀 북쪽 하이드 파크에 세워졌다. 앨버트 공의 동상은 순금(純金)으로 제작된 것이며 이 순금 동상의 제작을 위해 지출된 막대한 경비로 인해 재정난을 겪게 되면서 한때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1871년 3월 29일 빅토리아 여왕과 영국 50개 도시에서 온 시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 기념식이 열렸고 런던 대주교가 기도를 인도하였다. 웨일스 공 에드워드 왕자의 환영사가 끝난 후 빅토리아 여왕이 개관 선언을 할 예정이었으나 1861년 작고한 남편 생각에 감정이 북받쳐 목이 메어 진행하지 못하자 아들 에드워드는 “여왕께서 이 홀이 개관되었음을 선포하노라”라고 대신 말했다고 한다. 로열 앨버트 홀의 파이프오르간은 파이프 숫자가 9999개로 영국 최대 규모이며 음악이 퍼져나가는 연주 홀 공간의 부피는 8만 6650㎥으로 비엔나의 ‘뮤직페라인’,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 등 세계적으로 음향이 뛰어난 여러 콘서트홀에 비해 무려 4~5배 이상 크다. 로열 앨버트 홀은 매년 7월초부터 9월 중순까지 75일간 계속되는 세계 최대의 클래식 음악 축제인 ‘BBC 프롬스’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로열 앨버트 홀이 다른 여러 콘서트홀에 비해 아주 특별한 것은 장르의 구분 없이 매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클래식 음악회를 비롯하여 오페라, 록 콘서트, 강연, 서커스, 자동차 전시회, 복싱, 레슬링 경기, 육상 경기, 스모 경기, 연회, 아이스 쇼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성을 가지고 런던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1872년 모르스 부호 시연회, 1879년 전기 조명 시연회, 1833년 자전거 전시회, 1874년 음식과 와인 박람회, 1908년 런던 올림픽 때는 권투 경기가 열렸고, 1909년 12월엔 영국 최초이자 마지막인 실내 마라톤이 열렸으며 선수들은 두터운 코코넛 매트 위에서 524 바퀴를 뛰었다. 1912년 4월 14일 타이타닉 호가 침몰할 때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 연주를 그치지 않았던 타이타닉 밴드의 유족을 돕기 위해 500명의 연합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추모 음악회가 열렸으며 1963년 9월 15일 ‘비틀스와 롤링 스톤즈’의 합동 공연, 1977년 그룹’아바(ABBA)’의 유럽 투어 피날레 공연, 1969년부터 88년까지는 미스 월드 선발대회가 열렸고, 1971년 무하마드 알리의 프로 권투 경기, 1995년 스티븐 호킹 박사 강연회, 2003년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출판 기념회, 2006년 ‘비욘세’의 공연 등이 개최되었다. 한편 로열 앨버트 홀은 현재까지도 음향에 관한 문제로 인해 고심하고 있는데 사실 이 문제는 개관 전 음향 테스트에서부터 이미 발견된 것이었다. 그러나 여왕은 고인이 된 남편에게 민망하다는 이유로 보수공사를 허락하지 않았고 여왕이 사망한 후에야 비로소 앨버트 홀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원해 음향을 개선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1969년에는 메아리를 흡수하고자 강화유리 섬유로 만든 원형의 판을 천정에 매달게 되는데 이번에는 이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사운드가 빈약해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이 원형의 판은 ‘버섯’ 또는 ‘비행접시’라는 별명으로 로열 앨버트 홀의 또 다른 명물이 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이 앨버트홀의 음향 문제를 무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공연장이 클래식 음악 전용 홀로 건립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산업 및 문화, 교육을 위한 공간이라는 앨버트 공의 유지가 있었기에 콘서트 이외에도 다양한 행사가 치러질 수 있는 명분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세계 여러 유명 클래식 전용 홀들도 늘 음향에 관한 불만들이 끊이지 않는 곳들은 많다. 그러나 이런 불만들은 지역의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잔향 1.4초), 소극장(잔향 0.9초)이 가지고 있는 음향적 문제점들에 비하면 호사스러운 투정이다. 광주문화예술회관뿐만이 아니라 지역 대부분의 공연장의 음향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물론 다목적 공연장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만 앉은 좌석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소리가 들리는 사각지대마저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향후 반드시 개선 방법과 대책들이 고민되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여기를 대한민국의 ‘문화수도’니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고 부르면서 콘서트 전용 홀 하나가 없다는 것도 실은 낯부끄러운 일이다.

오케스트라

런던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섯 개의 오케스트라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오케스트라는 바로 사이먼 래틀 경(Sir Simon Rattle)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ondon Symphony Orchestra)다. 이 밖에도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Philharmonia Orchestra), ‘왕립(Royal)’ 호칭이 붙어 있지만 왕립 악단은 아닌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Royal Philharmonic Orchestra), 매년 ‘더 프롬스(The Proms)’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BBC Symphony Orchestra)가 있다. 이들은 로열 앨버트 홀을 비롯하여 로열 페스티벌 홀(Royal Festival Hall), 바비칸 홀 (Barbican Hall)등을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런던의 5개 오케스트라 중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제외한 4개의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특이한 운영체계를 가지고 있다. 영국 전체에서도 오로지 런던에 있는 오케스트라들만의 운영방식으로 이 4개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오케스트라에 고용되어있는 단원들이 아니다. 따라서 당연히 정년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모두 프리랜서(freelancer)의 지위에 있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운영에 관해서는 해당 오케스트라 사무국이 전적인 권리와 책임을 갖는다. 물론 요즘은 유사한 운영형태가 미국, 일본, 동유럽 등지의 여러 오케스트라에서 나타나고 있기는 하다. 어쨌든 계약서(contract)가 아닌 편지(letter)로 고용여부와 조건들을 전달한다는 것도 생소하고 특별하지만 이 단원들에게 각 오케스트라의 명성에 걸 맞는 고액의 출연료를 지급하기 위해 이들에게 요구되는 연주활동의 범위는 상당히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업무 강도도 매우 센 편이다. 이 오케스트라들은 정기연주회 등의 연주활동도 하고 있지만 악단의 유지를 위해서는 수익 창출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될 수밖에 없으므로 연간 150~200여회 이상의 여러 가지 공연들을 진행하고 있다. 정기적인 해외투어, 각종 행사 및 페스티벌에의 출연을 포함하여 주 수입원인 녹음 활동은 팝, 영화음악, 게임음악 등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추진된다. 얼마 전 만났던 영국 오케스트라연맹 회장 마크 펨버튼 (Mark Pemberton)은 영국을 포함한 유럽지역 클래식 팬들의 노령화를 심각하게 걱정하면서 그 유일한 대안으로 구매력을 갖춘 젊은 팬들이 많은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로열 앨버트 홀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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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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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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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심포니오케스트라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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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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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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