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 문화담론>’사유하지 않는 문화인’과 악의 평범성

최성혁 버틀러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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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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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말 그대로 한 마디 말이 가진 무게와 힘이 얼마나 큰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의 오랜 고질병이던 ‘악성 댓글’, 소위 ‘악플’은 지난달 14일 25세 꽃다운 여가수가 세상을 떠나게 했다. 온라인에 만연한 악성 댓글 문화.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지금까지도 이러한 얼굴없는 살인은 멈추지 않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고소를 한번 해봤어요. 그런데 유명한 대학교에 다니는 동갑내기 학생이더라고요. 동갑내기를 전과자 만들고 싶지 않아 선처해줬어요.”(설리)

하지만 실제로 찾아본 악플러들의 모습은 주변에서 쉽게 만나 볼 수 있는 대학생, 회사직원, 주부와 같은 평범한 모습이 대다수다. 입에 담기도 민망한, 거친 표현들을 가감 없이 써가며 누군가를 난도질해 온 이들의 상당수가 범죄자가 아닌 흔히 마주치는 우리의 이웃, 친구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심지어 악플을 달았던 사람들은 그들이 저지른 일들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아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저지르는 악한 행위에 관해 설명한 대표적인 책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다. 아렌트는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과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며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태도에서부터 평범한 악이 시작된다고 주장했다. 책은 “아이히만은 ‘문맹’으로서 자신의 잘못을 판단하고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일을 수행함에 있어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완전히 하나의 기계 부속품과 같이 생각이 굳어버렸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서 나온 ‘사유의 불능’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은 요즘에도 적용된다. 주변을 돌아보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휴대폰을 손에 들고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최근 휴대폰 사용이 잦아짐에 따라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는 점점 표면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스마트폰에만 의지하다보니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과 기억력, 학습능력이 떨어진다.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는 대부분 짧은 문장으로만 소통해 대화를 하는 능력 역시 떨어뜨린다. 사고능력이 떨어짐에 따라 더욱더 휴대폰에 매달린다. 많은 자료, 수많은 생각들, 그 중 필요하고 맘에 드는 정보만 취하면 될 뿐이다.

이로써 점점 더 일차원적으로 변해간다. 사고 능력을 잃어버린다. 미디어 기술은 우리를 통제하며 감시한다. 이러한 통제는 편향된 언론 및 댓글조작 등에 의해 이뤄지며 조작된 여론에 휩쓸려 조작을 지시한 사람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정보들을 받아들이고 생각하게 된다. 네이버와 다음 등의 댓글을 살펴보면 좌파, 우파, 진보, 보수 등 단어들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익명성이라는 보호아래 몇몇은 단어들이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사용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댓글을 보는 사람들은 역시나 제대로 된 의미파악이 아닌 희미한 지식을 바탕으로 BEST 댓글이나 공감·비공감 숫자를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의 입장에 대해 생각하며 옳고 그름을 가리고 판단하는 능력이 사라져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이 점차 평범해지고 일상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또다른 형태의 문맹이며 생각의 무능이다.

그렇다면 ‘제2의 얼굴없는 살인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생각을 일깨워야 할까. 먼저 ‘무사유’를 하지 않게 해야만 한다. 이를테면 질문에 답하고 다른 사람과 의견을 주고 받으며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을 해야 한다. 하나의 길로 휩쓸리며 무비판적 수용보다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진실과 거짓을 판별해 내고 나의 생각을 장착해야 한다. 비판적 사고를 갖고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자신감. 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야 말로 ‘문화인’으로서 우리가 갖춰야할 태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