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갑의 정원 이야기> 숲과 물과 돌이 그려내는 풍경, 화순 유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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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사(維摩寺)는 주변에 흔치 않은 여성승려들이 수행하는 비구니(比丘尼) 사찰로서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유마리 모후산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승보종찰 송광사의 말사이다. 편집에디터
유마사(維摩寺)는 주변에 흔치 않은 여성승려들이 수행하는 비구니(比丘尼) 사찰로서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유마리 모후산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승보종찰 송광사의 말사이다. 편집에디터

숲과 물과 돌이 그려내는 풍경, 화순 유마사

전남 화순에는 여느 지역보다 월등히 많은 세 가지가 있는데 숲과 물과 돌이다. 먼저 숲(林)을 보면 국립공원 무등산(1187m)을 비롯하여 백아산(810m), 만연산(609m), 모후산(919m), 안양산(853m)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산림면적비율이 63.16%, 전남의 산림면적비율이 56.05%인 점을 감안하면 화순군은 71.08%로 아주 높은 비율의 숲을 보유하고 있다. 다음으로 화순군은 물(水)이 깨끗하고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사실 물은 숲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화순은 산맥에 따라 크게 영산강과 섬진강을 구분하는 분수계(分水界)지역으로 크고 작은 하천이 잘 발달되어 있다. 두 물줄기는 모두 상류에 해당하여 깨끗한 수질을 유지하며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의 주요 수원(水源)이 되고 있다. 영산강의 지류인 지석천과 보성강의 지류인 동복천의 유역면적은 꽤 넓은 편이다. 그래서 홍수와 가뭄에 대처할 수 있는 녹색댐 역할을 톡톡히 하며 동복댐, 나주댐, 주암댐 등의 수자원 공급처가 되고 있다. 화순군의 돌(石)은 또 어떤가? 고인돌군은 고창, 강화 등과 더불어 현재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에서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10km 계곡에 형성된 고인돌유적지에는 500여기의 고인돌이 산재되어 있으며 화순군 전체로는 145개 군(群) 1186기에 이른다. 또 갖가지 신비로운 전설에 얽힌 운주사의 천불천탑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현재는 석불 93개, 석탑 21개만 남아 있지만, 운주사는 사찰이 아니라 야외조각공원으로 착각하게 만들 정도이다. 그게 다가 아니다.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보산리, 장학리 일대에 있는 자연이 빚은 천하제일의 절경 화순적벽(和順赤壁,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제112호), 그리고 무등산권 세계지질공원의 일부인 규봉암 등은 그 자체가 하나의 수직정원이자 암석정원이다. 이처럼 화순군은 산천의 조화가 잘 어우러져 있어서인지 운주사, 쌍봉사, 개천사, 유마사, 만연사 등의 유서 깊은 사찰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또 숲, 물, 돌들을 마음껏 조망할 수 있는 물염정, 환산정, 영벽정, 송석정, 임대정 등 멋들어진 정자(亭子)들이 풍광 좋은 곳에 어김없이 세워져 있다. 여기에 비해 다소 지명도는 떨어지지만 역사성이나 이야기의 흥미로움은 절대 뒤지지 않을만한 숨겨진 비경 유마사가 있다. 유마사(維摩寺)는 주변에 흔치 않은 여성승려들이 수행하는 비구니(比丘尼) 사찰로서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유마리 모후산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승보종찰 송광사의 말사이다. 역사적으로는 동복읍지, 유마사향각변건상량문 등에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요약하면 백제 무왕 28년(627년) 중국 당나라의 고관이었던 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마사는 고려 공민왕이 난을 피하여 이곳으로 왔는데 어머니의 품 속 같아 덕스러움이 모후(母后)와 같다고 하여 원래 나복산(蘿葍山)이라는 이름 대신 모후산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임진왜란 때 서하당 김성원(棲霞堂 金成遠, 1525∼1597)이 이곳 동복현감으로 부임했을 때의 이야기다. 김성원이 노모를 구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싸우다가 순절하였다고 하여 나복산을 모호산(母護山)이라 부르고, 마을 이름도 모호촌으로 불렀다고 한다. ‘호남읍지’에 “본래 이름은 나복(蘿葍)으로 현 동쪽 15리에 있다.”고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모후산은 현의 동쪽 10리에 있는 진산(鎭山)이고, 유마사(維摩寺)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마사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한 두가지가 아닌데 듣고 있노라면 그것이 설화인듯 실화인듯 묘한 호기심을 유발한다. 특히 이 사찰의 창건과 관련된 내용은 자못 흥미롭다. 중국 요동(遼東)지역에 보안(普安)이라는 처자가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요동의 태수인 유마운(維摩雲)이었다. 사람들을 죽여가면서까지 많은 재물을 모았는데, 이를 지켜본 딸 보안의 간청으로 깊이 뉘우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전재산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돌려주고 미련 없이 길을 떠나게 되었다. 산 넘고 물 건너 걷고 또 걷다보니 모후산 아래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그곳에 정착하고 나무를 베어 장에 팔아 생계를 이어 나갔다. 보안이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전라도 무진(武珍)고을 원님이 순방을 나왔다가 유마운과 보안의 소문을 듣고 모후산을 찾았다. 그들을 만난 원님은 뭔가 도와주고 싶은 생각으로 그곳에 절을 세워주고 경작할 밭을 마련해 주었다. 이후 절에서 부전스님과 함께 기거하게 되었는데, 그는 염불에 힘쓰기보다 보안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유마운이 돌연 세상을 떠나고 보안과 부전스님만 절에 남게 되었다. 보안은 부전이 자신을 흠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부담을 느낀 나머지 어느 날 밤 부전에게 편지를 썼다. ‘발원(發願)을 등지고 윤회(輪廻)의 강에 탐닉하는 것은 짐짓 불자(佛者)의 바른 행위가 아닌 줄 아오나, 스님께서 정히 그렇게 저를 필요로 하신다면 아까워 드리지 못할 것도 없사오니, 내일저녁 열 두시에 아랫마을 개울가로 나와 주세요.’ 이튿날 약속장소에 나온 부전에게 보안은 뜰채 하나를 건네면서 말하기를 ‘스님, 저 물 속에 둥근 달이 보이시나요? 저 달을 이 뜰채로 건져내는 일입니다. 스님이 달을 건져내고 제가 그 달을 건져도 좋고, 둘다 건지지 못하여도 좋습니다. 그러나 스님께서 건져내지 못하고 제가 건져내게 된다면 우리들의 약속은 멀어지는 것입니다.’ 예상한대로 부전스님은 뜰채로 달을 건져내지 못했고, 보안은 쉽게 건져냈다. 상심한 부전은 상사병이 깊어져 갔는데 그를 낫게 해줄 사람은 보안 뿐이었다. 어느 날 보안이 아파 누워있는 부전을 찾아가 법당 안에 모셔진 탱화를 뚝 떼어 마룻바닥에 깔고 옷을 벗고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부전은 차마 옷을 벗지 못했다. 제아무리 사랑이 깊다한들 스님이 탱화를 깔고 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보안이 격노하며 말했다. ‘그대는 사람이 그린 그림에 불과한 부처는 무섭고, 진짜 살아있는 부처는 무섭지 않느뇨?’ 그런 후 보안은 백의관음보살(白衣觀音菩薩)로 변해 승천했다고 한다. 그저 미신같기도 하고 비과학적인 전설에 불과한 내용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지만 마치 한편의 동화처럼 우리 현대인들이 놓칠 수 있는 삶의 본질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유마사는 그런저런 이야기를 접하고 둘러보면 훨씬 흥미롭고 의미있는 풍경으로 다가온다.

 낙원으로 가는 길목, 달빛 개울 위에 걸린 보안교

  유마사 초입에는 설화의 주인공인 보안이 세웠다는 투박한 옛 다리 하나가 있다. 모후산 깊은 숲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계곡 위에는 보안이 만들었다는 보안교(普安橋)가 1400년의 역사를 품은 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계곡 위에는 널따란 바위돌이 통째로 걸려 있고 계곡물은 청아하여 금방이라도 물속에서 바위틈을 비집고 해맑은 달이 솟아오를 것만 같다. 다리바닥 한쪽 편에는 ‘유마동천보안교(維摩洞天普安橋)’라고 새겨져 있는데 눈여겨보지 않으면 쉬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 보안교에 얽힌 이야기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을 만큼 흥미롭다. 모후산 중턱에서 많은 인부들이 바위를 운반하려고 애썼으나 험한 산길이라 작업이 부진하자 보안이 직접 치마폭에 바위를 싸더니 유유히 들고 와서 단번에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이다. 곧이곧대로 믿기야 어렵겠지만 어쨌거나 보안은 여러모로 신통방통한 면모를 지녔었던 것 같다. 유마사는 잘 보존된 노거수들과 이끼 낀 바위 등 시간이 만들어낸 풍경들이 있어 고즈넉하다. 게다가 보안교 건너 사찰 쪽으로 진입하다보면 해련탑(海蓮塔)을 만나게 되는데 오랜 동안 그 자리에 있어서인지 마치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다. 이 탑은 보물 제111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창건자 유마운의 부도로 전해지고 있다. 이밖에도 절 입구에는 높이 1.5m 정도의 경헌대로사리탑(敬軒大老舍利塔)이 있는데, 대석(臺石)의 네 모서리에는 사자, 호랑이, 돼지 등의 동물형상이 새겨져 있다. 보안교 주변에는 물과 숲과 돌이 조화를 이루며 이미 하나의 정원이 되어 있다. 동산의 초목들은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나오는 햇살을 조명삼아 계곡 물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데 마치 정원에서 축제를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유마사에 가면 사찰보다 보안교와 계곡 주변에서 한참을 서성이게 된다. 물가에는 아름드리 고목들이 자라고 있고 그 숲 사이사이에는 예사롭지 않은 바위들이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어 마치 계획된 배치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곳에서 가장 크고 돋보이는 바위에는 ‘미륵불(彌勒佛)’이라고 새겨져 있어 숭배의 대상이었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 정원의 중심을 잡아주는 상징적인 조형물이 아닌가 싶다. 현재 사찰로 가는 진출입로가 따로 있음에도 보안교 바로 옆에 일주문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의미 있는 장소임에 틀림없다. 특히 다리에 새겨진 ‘동천(洞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낙원으로 가는 길목쯤으로 의미부여한 장소가 아닌가 싶다. 도교(道敎)에서 말하는 동천은 ‘하늘과 통하는 신선이 사는 세계’, 요컨대 ‘아름다운 풍경으로 둘러싸인 경치가 가히 신선이 지낼만한 곳’이라는 의미로 낙원(樂園) 혹은 유토피아(Utopia, 理想鄕)를 일컫는다. 현재 우리가 사는 ‘동네’라는 명칭도 동천(洞天), 동내(洞內)에서 유래한 것이다. 낙원을 향한 꿈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숲과 돌과 물이 어우러진 정원은 그나마 우리에게 적지 않은 위안이 된다.

유마사(維摩寺)는 주변에 흔치 않은 여성승려들이 수행하는 비구니(比丘尼) 사찰로서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유마리 모후산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승보종찰 송광사의 말사이다.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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