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신 풍서기(新 風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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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계절 곧 지날 것이다. 필부들 노래했듯, 한 점 부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마음, 모퉁이 돌아드는 작은 바람에도 마음 졸이는 그 두려운 마음 담아 신풍서기(新風棲記)를 삼는다. 편집에디터
바람의 계절 곧 지날 것이다. 필부들 노래했듯, 한 점 부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마음, 모퉁이 돌아드는 작은 바람에도 마음 졸이는 그 두려운 마음 담아 신풍서기(新風棲記)를 삼는다. 편집에디터

“매번 바람이 서남쪽으로부터 불어와서 계곡을 진동시키고 숲을 흔들며 모래와 흙을 날리고 물결을 일으켜서 강을 거슬러 동쪽으로 갔다. 문을 밀치고 문설주를 스치며 책상을 흔들고 방석을 울려서 윗목 아랫목 사이에 항상 웅웅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치 손책(孫策)이나 이존욱(李存勖)이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까마득히 넓은 들판에서 싸움을 벌일 때, 외로운 성과 보루가 그 날랜 선봉 부대를 딱 맞닥뜨린 형세였다. 온 힘을 다해 적의 예봉을 막지 않은 채 군대가 지나가도 베개를 높이 베고 즐겁게 지낼 사람은 아마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 바람 부는 집이라 이름을 붙였다.” 김매순(金邁淳, 1776~1849)이 그의 글 ‘풍서기(風棲記)'(한국산문선9, 신선들의 도서관, 안대회 외 역, 민음사)에서 집을 짓게 된 연유와 집 이름을 붙인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이다. 앞서 그는 또 자신의 집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지는 위로 솟아 높다랗고, 처마는 짧고 나지막하였다. 창호지 바른 창문 하나로 울타리를 대신하였으니, 바라보면 마치 높은 나뭇가지 끝에 새 둥지가 아슬아슬 떨어질 것만 같았다.” 나뭇가지 위의 새둥지 형상이라니. 창호지 사이는 물론 얼기설기 바른 흙벽 틈으로 왕바람이 드나드는 집이다. 가히 백만 대군을 거느린 적군이 멋대로 방안을 휘젓고 다니는 형국 아닌가. 김매순은 어떤 연유로 이러한 ‘바람의 집’을 지었던 것일까.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들

태풍 잦은 여름 다 갔건만 간헐적으로 다시 고기압과 저기압의 소용돌이 소식을 듣는 가을이다. 유난히도 바람 많았던 시절이 어디 태풍뿐이겠는가. 김매순이 집을 지어 이름 붙였듯 시국이 그렇고 정사가 그랬던 모양이다. 원문 해설을 좀 더 본다. 벽파의 지도자였던 김달순이 권력 투쟁에서 밀려 실각하자 일가였던 김매순도 연좌되어 해를 입게 되었다. 양주군 석실 근처로 내려가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집을 정비할 틈도 흙벽을 바를 여유도 갖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니 곧 바람 부는 집이다. 바람은 무엇인가. 중의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 바람을 말한다. 번역자가 해설에서 지적하듯이,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인물들마저도 한번 불어왔다 사라지는 바람일 뿐이라는 것. 권력도 명예도 영광도 모두 한때의 바람 같은 것 아닐까. 화자는 이 풍경을 보다 직접적으로 그려내며 대화를 맺는다. “남도 바람이고, 나도 바람이니 유독 나만 그렇겠는가! 과거도 바람이요, 현재도 바람이니 유독 이 집뿐이겠는가! 다만 바람에 대처하는 것에도 방법이 있네. 광막함에 정신을 집중하고 비어 있음에 몸을 맡겨 두어 바람이 닥쳐와도 어기지 말고 부딪혀도 매이지 않으면 바람인들 나를 어쩌겠는가! 편안하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으며 바람도 없는 듯 집도 없는 듯 한다면 무엇을 모면했다고 좋아할 것이며 무엇을 잃는다고 두려워할 것인가? 자네의 말이 그럴듯하니 아무래도 저 경계를 벗어나지는 않았나보네! 드디어 주고받은 말을 써서 ‘풍서기(風棲記)’로 삼는다.” 마지막 구절을 읽고 나니 비로소 알겠다. 글쓴이의 말처럼 영웅들의 운명이 저 허공에서 일어났다 사라지는 바람과 다른 점이 있던가 말이다. 그가 만약 서남해 인근 섬으로 귀양 왔었다면 아마도 파도 출렁이는 세파(世波)와 살을 후벼 파는 칼바람을 인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을바람에 기대 괴로이 노래 읊조리던 사람들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조리지만/ 세상에 알아주는 이 없네/ 창밖엔 밤 깊도록 비만 내리는데/ 등불 앞 마음은 만리 밖을 달리네.” 저 유명한 최치원의 추야우중(秋夜雨中)이다. 가을비 내리는 밤, 고독한 화자의 풍경을 잘 드러낸 시다. 중국유학을 하면서 고국 신라에 대한 그리움을 읊었다는데, 혹자들은 품은 뜻을 잘 펼치지 못한 심정을 노래한 것이라고도 한다. 귀국한 최치원이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를 상소하고 기울어져 가는 신라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좌절했던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후 가야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것 아닌가. 이 또한 중의적이라기보다는 후자의 풀이가 더 적당해 보인다. 본인이 생각하는 바는 하늘 닿을 듯 높아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으니 허망한 바람이요, 세상을 두부 자르듯 개혁하고 싶지만, 정세가 받아주지 않으니 다만 허욕에 불과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세상은 그러지 아니한데 본인만 혹은 일정한 일당들만 그리 생각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가을바람은 아마도 그런 것인 듯하다. 어찌 김매순이며 최치원 뿐이겠는가. 국가적인 일이며 정치적인 일뿐이겠는가.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고 특별히는 연인과의 관계도 그렇다. 애달픈 심정을 얹어 노래했던 각양의 우리 소리 속에 무수하게 스며들어 있는 바람의 풍경이기도 하다. “추야장 밤도 길더라/ 남도 이리 밤이 긴가/ 밤이야 길까 만은/ 임이 없는 탓이로구나/ 언제나 알뜰한 임을 만나/ 긴 밤 짜룹게 샐(거나 헤).” 남도육자배기의 대표적인 가사 중 하나다. 화자는 가을밤이 긴 이유를, 임을 만나지 못한 혹은 임을 잃어버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육자배기뿐일까. “창밖에 국화를 심고/ 국화 밑에 술을 빚어 놓으니/ 술 익자 국화피자 벗님오자 달이 돋네/ 아이야 거문고 정 쳐라/ 밤새도록 놀아 보리라/ 빗소리도 임의 소리/ 바람소리도 임의 소리/ 아침에 까치가 울어대니/ 행여 임이 오시려나/ 삼경이면 오시려나/ 고운 마음으로 고운임 기다리건만/ 고운님 오지 않고 베갯머리만 적시네/ 아이고 데고 허허 어~흐~성화가 났네 헤에~” 남도 흥타령 중 대표적인 가사다. 최치원만 바람을 탓한 것 아니다. 햇살 따스한 가을 어느 날 툇마루 스치는 바람마저 그리운 이의 발자국소리 같았으리라. 그러지 않고서야 이토록 절절한 노랫말 들어 심경을 노래할 리가 없다.

도리(桃李)숲 ‘우실’ 어부림(魚付林)의 꿈

김매순의 ‘바람의 집’은 정치적 현실을 빗댄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세상물정 어두운 내게는 이 바람에 기대기가 난망하다. 나는 그저 추야장 긴긴 밤 괴로이 지새며 다만 잃어버린 임 탓하는 속인일 뿐이다. 창밖에 국화심고 국화 밑에 술을 빚어 자원방래 벗님 기다리는 땔나무꾼일 뿐이다. 바람이 닥쳐오면 어길 수 없고 부딪히면 매일 수밖에 없는 검부러기 같은 존재다. 무엇을 모면하면 쌍수를 들어 좋아하고 무엇을 잃으면 그것이 두려워 가슴 졸이는 필부일 뿐이다. 그래서다. 유독 바람 많던 한 해를 보내며 또 그것을 나라의 기운과 정세에 비유해보니 풍서기가 떠오르고 그에 견주어 어부림 우실이 떠오른다.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어도 그 아래 저절로 길이 난다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인용하는 고사다. 기원전 설화집 설원(說苑)의 우화 한토막이다. 노나라의 권신이었던 양호가 위나라에서 죄를 짓고 진나라로 도망간다. 은혜 베풀어준 사람들에게 오히려 핍박받은 하소연을 한다. 대부 조앙(趙鞅)이 말한다. “복숭아와 오얏을 심은 사람은 여름에는 휴식을 얻고 가을에는 열매를 얻는다. 남가새를 심은 사람은 여름에도 휴식을 얻지 못하고 가을에는 가시를 얻는다.” 남가새(蒺藜)를 심은 모양으로 인재양성을 잘못했음을 꾸짖는 풍경이다. 그에 비해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를 심은 사람은 우수한 인재를 가꾼 셈이니 아무리 바람 많은 시절이라 할지라도 도리숲 아래 안전하지 않겠는가. 나무도 이처럼 가려심어야 하거늘 하물며 사람임에랴. 바람이 거처하는 집에 머물며 풍서기를 쓴 김매순은 흔들리지도 않고 두려워할 일 없다 했다. 정녕 그럴까? 올해 잦은 태풍을 묵상하다보니 나라의 정세나 정치 열풍이 그야말로 풍서기다. 바람의 집에 앉아있는 듯 격렬하다. 이편과 저편으로 나뉜 사람들은 바람 탓하는 데만 목청을 높인다. 생각해본다. 한로삭풍 일어 시절 바뀔 줄 몰랐다면 무능이요, 그저 동남풍 불기만을 바랐다면 만용이다. 영웅으로 호명되었던 이들 누군가. 마치 바람 한조각일 뿐인 것을. 제갈량이라도 된 듯 우줄거렸을지 모르지만 정작 바람의 집에 내몰린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은 베개를 높이 베고 잠을 청하기조차 어렵다. 시국이 무섭다. 특히나 어려울 때마다 시류를 견인해가던 남도정신이 걱정이다. 조조의 백만 군사 들판을 내달리듯 가로지르는 칼바람 앞에 나는 다만 남가새 아닌 도리숲 가꾸어 우실 삼을 지혜 상고할 뿐이다. 바람의 계절 곧 지날 것이다. 필부들 노래했듯, 한 점 부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마음, 모퉁이 돌아드는 작은 바람에도 마음 졸이는 그 두려운 마음 담아 신풍서기(新風棲記)를 삼는다.

남도인문학팁

칼바람 부는 서북풍 맞서거나 동남풍을 기다리거나

남도뿐만 아니라 바람을 막는 숲은 전국 어디에나 있다. 모래와 자갈 날리는 바닷바람을 막고 심지어는 조상의 산소까지 방풍을 한다. 어부림, 방풍림, 관방림 등 처한 환경에 따라 달리 불렀던 이 숲을 남도사람들은 ‘우실’로 통칭해 왔다. 나는 이 숲의 바람막이 기능을 들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숲’이라는 카피를 뽑아내 설명하곤 했다. 연전 이 지면을 통해 따로 새겨두었으니 참고 가능하다. 김매순이나 최치원의 독해처럼 중의적인 뜻으로 읽는다면 응당 우실은 정치적인 바람과 시절의 폭풍을 막는 방풍림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더 새겨두어야 할 것은 어부림이다. 방조어부림(防潮魚付林)이라고도 한다. 경남 남해 삼동면 물건리의 어부림이 가장 유명하다. 바닷물의 침범을 막고 물고기 떼를 끌어들이기 위해 조수간만의 차가 적은 바닷가, 강가, 호숫가 등지에 나무를 심어 조성한 숲을 말한다. 우실이 바람만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태풍이나 해일 등 범람하는 파도를 막고 물고기가 산란하거나 자라는 것을 도모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바람 막는 우실과 김매순의 바람의 집을 상고해보니 두 가지를 알 수 있겠다. 하나는 수용과 체념이요, 또 하나는 대비와 극복이다. 김매순의 언설처럼 광막함에 정신을 집중하고 비어 있음에 몸을 맡겨둘 수 있을까. 바람이 닥쳐와도 어기지 않고 부딪혀도 매이지 않을 수 있을까. 편안하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으며 바람도 없는 듯 집도 없는 듯 할 수 있을까. 나 같은 속인들에겐 언감생심이다. 세상풍정이 그러하여 어쩔 수 없이 비탈에 오두막을 지었을지라도 해탈하지 않으면 생각해볼 수 없는 마음가짐 아닌가. 오히려 한탄하며 울부짖는 것이 날 세워 부는 세파에 대응하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이와는 반대로 순풍에 돛단 듯 순항하는 세파를 비유한 것이 동남풍이다. ‘제갈공명이 칠성단에서 동남풍 기다리듯 한다’는 속담이 그래서 나왔다. 저 유명한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이 남병산에 삼층단을 쌓고 동남풍이 불기를 기원한데서 유래한 고사다. 바람은 같은 바람이되, 그 향방을 돌릴 수 있는 곧, 세파의 반전을 꾀할 수 있는 바람이라는 뜻으로 자주 인용된다. 그래서다. 정치는 요동치고 민심은 흉흉해졌다. 급기야 북풍한설 몰아칠 계절마저 다가왔다. 어찌해야 하는가. 제갈공명이 칠성단에서 동남풍 기다리듯 그저 남도를 휘돌아 나갈 바람 불기를 기도해야 할까. 더디 가더라도 도리숲에 인재 심어, 북풍한설 막아줄 우실 가꿔야 할까.

바람의 계절 곧 지날 것이다. 필부들 노래했듯, 한 점 부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마음, 모퉁이 돌아드는 작은 바람에도 마음 졸이는 그 두려운 마음 담아 신풍서기(新風棲記)를 삼는다. 편집에디터
바람의 계절 곧 지날 것이다. 필부들 노래했듯, 한 점 부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마음, 모퉁이 돌아드는 작은 바람에도 마음 졸이는 그 두려운 마음 담아 신풍서기(新風棲記)를 삼는다. 편집에디터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방조어부림. 뉴시스 편집에디터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방조어부림. 뉴시스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