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진압 거부는 헌정질서 파괴 저지한 정당행위”

유혈사태 막은 이준규 전 목포서장 39년만 명예회복
재심 재판부 “5·18 당시 포고령 위반 판결은 잘못” 유가족
“상처 딛고 나아가기 위해 가해자 사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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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 운동 당시 목포 유혈사태를 막은 이준규 서장이 11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진영 기자 jinyoung.kim@jnilbo.com
5‧18민주화 운동 당시 목포 유혈사태를 막은 이준규 서장이 11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진영 기자 [email protected]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강경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파면당한 고(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이 39년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광주지법 목포지원 형사2단독 임효미 판사는 11일 80년 5·18 당시 포고령 위반 혐의로 선고유예를 판결 받은 이서장에 대한 재심청구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헌정질서 파괴범죄를 저지하거나 반대하는 ‘정당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는 그 시기나 동기, 목적, 대상, 사용수단,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헌정질서 파괴범죄를 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며 “형법 20조 소정의 정당행위에 해당돼 범죄가 성립되지 않고, 형사소송법 325조 전단에 의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유가족들 끝내 눈시울

 이날 법정은 엄숙했다. 무죄 선고에도 유가족의 오열은 없었다. 39년의 세월, 유가족들의 눈물을 이미 말라버린 듯했다. 하지만 법정을 나선 유가족들은 ‘늘 딸의 약국 문 셔터를 내려주셨던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40여년간 꾹꾹 억눌러왔던 슬픔은 봇물이 터지듯 한번 새어 나오자 주체할 수 없었다.

 이 서장의 둘째 딸 이향진(60)씨는 “1980년 5월에 멈춰 있었던 시계가 마침내 흘러가는 것 같다. 이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는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어 포기했었지만, 이제라도 원하던 결과를 얻게 돼 감사하다”며 “아버지 혼자 겪었을 외로움과 저희가 어려서 이해하지 못했던 미안함을 이제 조금은 덜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 유혈사태 방해로 신군부 파면

 이 서장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목포 경찰서 책임자였다. 5·18 민주화운동으로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징계를 받은 70여명의 간부 경찰공무원 중 유일하게 파면된 인물이기도 하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를 완전 포위했던 계엄군은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는 모든 길목을 차단하면서도 목포로 가는 길만은 열어뒀고, 1980년 5월21일 오후 2시 120여명의 시민군이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목포로 들어왔다.

 총기로 무장한 흥분한 시위대와 경찰이 언제 부딪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오후 8시가 되자 흥분한 시위대는 경찰서까지 난입했다.

 당시 이 서장은 목포경찰서 구내방송을 통해 “절대 시민을 향해 발포를 금지한다”고 명령한다. 또 이날 오후 3시 경찰서 내 모든 총기를 116 전경대로 옮긴다. 경찰병력을 철수시키고 재야인사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유혈사태 막았다.

 결국 목포에서 집회는 광주가 계엄군에 의해 완전히 진압된 27일까지도 계속됐지만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그런데 신군부는 그를 ‘외곽저지선 보호 및 자위권 행사 소홀 등 혐의’로 구속·파면시켰다. 강제진압 명령을 어겼다는 것이다.

 곧이어 보안사에 끌려가 3개월간 모진 고문을 당하고 군사재판에서 징역 1년 선고유예 처분을 받았다.

 고문 후유증으로 항상 “속이 거북하다”는 말을 했던 이 서장은 고문 후 5년 만에 위암으로 사망했다.

 왜 계엄군은 일부러 목포로 가는 길목을 열어뒀을까. 또 평화롭게 시위를 해산한 이유로 그를 고문하고 파면한 이유는 뭘까.

 이 서장의 사위 윤성식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 사건의 핵심은 ‘김대중 내란음모’에 있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에서 피가 흘러야 5·18민주화운동의 배후로 김대중을 지목할 수 있는데, 이 서장의 조치로 목포 시위가 평화적으로 끝나버리면서 불만을 품었다는 의미다.

 ● 무죄 판결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유가족들은 이날의 판결이 새로운 시작이라고 믿었다.

 이향진씨는 “이제야 제사 때 아버지를 뵐 수 있는 면목이 서는 것 같다”며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홀로 재심을 준비하는 아버지가 얼마나 외롭고 억울했는지 알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또 “그동안 우리 가족들은 40여년 전 그때 그날에 멈춰 있는 것만 같았는데 이제야 아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아버지가 원통한 마음을 풀고 유가족들이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해자들의 진심 어린 사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가족들은 이 서장의 명예회복을 위해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윤성식 명예교수는 “재심은 아버님의 명예 회복과 진실 규명을 위한 시작이다”며 “경찰이 직권으로 파면 처분을 취소하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다. 이 조치가 어렵다면 파면 무효 소송 등을 통해 순직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영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