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갑의 정원 이야기>장흥 송백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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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장흡읍 평화마을 오른 쪽으로 흐르는 개울물을 따라 잠시 걷다보면 100여년이 훌쩍 넘어 보이는 배롱나무 군락에 에워쌓인 송백정(松百井)이 위치하고 있다. 편집에디터
장흥군 장흡읍 평화마을 오른 쪽으로 흐르는 개울물을 따라 잠시 걷다보면 100여년이 훌쩍 넘어 보이는 배롱나무 군락에 에워쌓인 송백정(松百井)이 위치하고 있다. 편집에디터

미완의 정원 송백정(松百庭)을 거닐며

상선약수마을로 일컬어지는 장흥군 장흡읍 평화마을은 청정한 물과 울창한 숲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마을입구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인상적인 이 마을은 우뚝 솟은 억불산 연대봉 아래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마을인근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는 상선약수샘, 서당샘, 중샘, 정자샘 등 다양한 샘들이 마을이름을 대변해주고 있다. 억불산으로 이어지는 삼림욕장에는 대숲, 동백숲, 소나무숲 등 다양한 테마숲이 조성되어 있어 호젓한 분위기 속에서 숲과 물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마을에는 물과 연관된 이야기가 있어 관심을 갖게 한다. 마을 오른 쪽으로 흐르는 개울물을 따라 대나무 향기를 맡으며 잠시 걷다보면 보기 드문 광경을 만나게 되는데 100여년이 훌쩍 넘어 보이는 배롱나무 군락이 눈에 들어온다. 이윽고 그 나무들이 에워싸고 있는 소박한 연못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을 송백정(松百井)이라 부르고 있다. 송백정 주변은 잘 발달된 청년의 팔뚝근육처럼 울퉁불퉁한 가지를 뽐내는 백일홍 50여 그루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꽃이 피는 6월 중순에서 9월 중순까지 100여 일 동안 하얀색, 붉은색, 분홍색, 보라색 등 다양한 색채의 꽃을 볼 수 있어 일부 사진작가들에게 담양 명옥헌 원림과 더불어 배롱나무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송백정은 언뜻 들으면 누구나 소나무와 정자가 있는 정원을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송백정의 정은 정자(亭子)가 아니라 우물(井)을 가리킨다. 사실은 연못으로 조성하기 전에 이곳에는 작은 샘 하나가 있었다고 한다. 그 샘물을 가두어 작은 연못을 만들었고 이후 고영완(高永完, 1914∼1991)이 마을사람들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자신의 땅을 기꺼이 내놓아 연못을 확장한 것이다. 이 연못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일본정원 전문가를 데려올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당시 배롱나무, 영산홍, 대나무 등도 일본에서 들여 온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 송백정의 모습은 연못이 있고 그 연못 안에 작은 섬이 있으며 섬으로 연결하는 목재(木材)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현재 작은 섬에는 소나무, 동백나무, 배롱나무 등 다양한 수목들이 우거져 섬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또한 연못 주위에 오래된 배롱나무가 운치를 더해주고 있고 연못 안에는 어리연과 가시연이 수면을 덮고 있다. 후손 고병선(高秉善)씨에 의하면 이곳 섬에는 한동안 샘물이 유지되었고 그 샘물을 이용하여 분수를 만들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섬에는 물이 연못으로 흘러들어가는 작은 수로(水路)의 흔적을 볼 수 있어 그 사실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이곳 연못은 정원조성을 위한 엄격한 규칙이나 형식에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냥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고영완씨는 집 주변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만큼은 한 그루도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게 했는데 덕분에 고택 주변의 노거수들이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배롱나무와 연못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한 바퀴 돌고나서야 비로소 보일 듯 말 듯 시선을 유혹하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는데 바로 무계 고영완 고택이다. 무계고택(霧溪古宅)은 대문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압권이다. 언덕 위에 지어진 고택인지라 양쪽에는 오래된 나무들과 대나무 숲이 있어 마치 수문장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수문장에게 허락을 받고 통과하면 아기자기한 돌계단이 자연스럽게 대문을 향하게 한다. 이끼 낀 돌담과 옛 담장의 풍모가 예사롭지 않고 울창한 노거수들과 어우러져 완성도 높은 풍경이 되어 이 공간만으로도 훌륭한 전통정원이 되어 주고 있다. 일명 무계고택으로 일컬어지는 이 가옥은 고영완씨의 조부(祖父)인 고재극(高在克)이 1852년에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전형적인 한국 전통가옥으로 일자형 겹집으로 남부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조 기와집이다.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161호인 이 가옥은 원래 정화사(淨化寺)라는 절터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당엔 불을 밝혔을 법한 석등이 놓여 있고 고택의 뒤꼍으로 돌아가 보니 단아한 앞모습과 달리 바로 숲으로 이어져 있어 일반주택이 아니라 암자에 와 있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경사가 급한 대지에 짓다보니 다소 높은 삼단으로 단차를 두어 공간의 위계를 구성하였다. 가장 아랫단에는 대문과 하인 방, 둘째 단에는 마당, 창고, 관리사 등을 두었으며 맨 위에 본채를 지었다. 본채 옆에는 최근 지은 것으로 보인 양옥건물이 앉혀져 있다. 주변에는 소나무와 느티나무, 배롱나무, 대나무 등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주며 한옥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이 고택은 주변의 숲과 개울이 있는 점도 특이하지만 공간의 위계도 단순하지 않아 제법 흥미롭다. 마당을 양탄자처럼 깔아놓은 푸른 잔디에 샘터, 담장, 장독, 석등, 돌확 등이 정원의 훌륭한 조형물이 되어주고 있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가옥주변과 마당 가장자리에는 빗물이 개울로 흘러갈 수 있도록 도랑을 만들어주는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고 있다. 마당 여기저기에 무심한 듯 놓여 있는 푸른 이끼 옷 입은 오래된 돌들은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고택과 연못을 조성한 고영완은 일제강점기 항일학생운동을 하고 해방 후 장흥군수와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다. 그는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 했는데 특히 기봉 백광홍의 제자로 조선중기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백광훈(白光勳)의 한시집이나 당시선집(唐詩選集) 등을 즐겨 읽은 것으로 전한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 차라리 고매한 선비였고 큰 이익을 남기는 일이라도 옳지 않는 일이라면 절대 야합하지 않았던 강직한 의인(義人)의 품성을 지녔다고 한다. 장흥중학교 부지를 비롯해 다양한 공적 사업에 많은 기부를 했을 뿐 아니라,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도 많이 도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를 닮아서일까 현재 고택을 관리하면서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후손 고병선 역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뒷산을 삼림욕장으로 사용하도록 내어주는 등 선행을 이어가고 있다. 무계 고택사람들은 물이 가르쳐주는 교훈을 잊지 않고 살고 있다. 이제 그의 후손들뿐 아니라 지자체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그 정신에 걸맞은 공간으로 계승 발전시켜가야 할 것이다. 그의 고상한 인품과 손 떼 묻은 고택, 미완으로 남아 있는 연못정자, 그리고 주변의 대숲 등을 아울러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꾸어가는 것은 어떨지. 작은 샘물에서 시작된 ‘송백정(松百井)’이 무계고택에 면면히 내려오는 아름다운 이야기와 따스한 햇살을 머금은 고즈넉한 풍경이 자손만대까지 전해질 수 있는 진정한 ‘송백정(松百庭)’으로 거듭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물이 주는 교훈이 발현되는 작은 샘물의 기적이 멋진 정원(庭園)으로 진화하기를 기대해본다.

‘장흥정신’의 토대가 되는 ‘물의 교’ 물씬 배어 있는 상선약수마을

사람이나 지역의 경우 이름이 참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름은 그 대상 이미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흥(長興)은 느낌이 참 좋다. 왜냐하면 지명이 ‘길게(長) 흥(興)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장흥은 사람이 살기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다. 억불산, 사자산, 수인산 등 산세가 좋아 풍부한 물이 자랑거리다. 탐진강이 지역을 관통하고 있는 비옥한 땅에서 어려움 없이 살아 왔다. 그래서 농사를 짓기에 좋은 땅이고, 바다를 끼고 있어 굴, 바지락, 김 등 수산물도 풍부하다. 사실 장흥사람들이 가장 긍지를 갖고 있는 것은 따로 있는데 다름 아닌 사람이다. 장흥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삶의 여유를 가지고 살고 있다. 바른 글로 세상을 밝히고자 하는 문학의 고장인 동시에 나라에 대한 충정이 뛰어나 자타가 공인하는 문림의향(文林義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장흥은 가사문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관서별곡의 기봉 백광홍(岐峯 白光弘, 1552-1556)의 고향이다. 그는 장흥문학의 상징이자 국문학사에서 탁월한 문학적 업적을 남긴 장흥의 자랑스러운 문인이다. 그가 평안도 평사(評事)가 되었을 때 그곳을 두루 살피고, 그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한 작품으로 작자의 문집 ‘기봉집(岐峰集)’에 실려 있는 ‘관서별곡(關西別曲)’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관서별곡은 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보다 무려 25년 앞서 지어진 작품으로 우리나라 기행가사문학의 효시로서 후학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외에도 장흥에는 병신과 머저리, 당신들의 천국, 천년학 등을 저술한 1960년대 대표적인 작가 이청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탄 소설가 한강(韓江)의 아버지이자 아제아제 바라아제, 해산 가는 길 등 주옥같은 작품을 저술한 한승원, 녹두장군, 암태도 등으로 민중들의 고통스런 삶에 주목한 작가 송기숙 등 내로라하는 문학가들이 즐비하다. 이처럼 사람이 좋고 환경이 좋아 더 이상 바랄게 없는데 길게 흥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런 장흥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큼 평판 좋은 마을이 바로 상선약수마을로 일컬어지는 평화마을이다. 평화(平和)마을인가 싶었는데 한자를 보니 평화리(平化里)였다. 이 마을도 물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좋은 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을인데 우물에서 나오는 물 자체가 약수로 여겨질 정도였다고 한다. 상선약수(上善若水)는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의 철학자인 노자(老子)의 대표적인 저서 도덕경(道德經) 제8장에 나오는 말로 ‘가장 위대한 선은 물과 같다’라는 뜻이다. 원문에는 ‘상선약수 수선리 만물이부쟁(上善若水 水善利 萬物而不爭)’이라는 대목이 있는데 ‘물은 다투지 않으면서도 만물을 이롭게 한다.’라는 의미이다. 노자의 물 예찬은 계속된다. 물은 낮은 곳으로 임한다(居善地:거선지)/물은 연못처럼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心善淵:심선연)/물은 아낌없이 누구에게나 은혜를 베푼다(與善仁:여선인)/물은 신뢰를 잃지 않는다(言善信:언선신)/물은 세상을 깨끗하게 해 준다(正善治:정선치)/물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事善能:사선능)/물은 얼 때와 녹을 때를 안다(動善時:동선시). 그런 의미에서 평화마을(平化里)은 공평(公平)과 평화(平和)가 지속되기를 염원하는 마을사람들의 의지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억불산에서 시작된 계곡물은 농토를 비옥하게 하고 마을에서 샘물이 되어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고 또 연못에서 잠시 머물며 주민들의 쉼터가 되어주기도 한다. 이어서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면서 만물을 이롭게 하며 장흥을 오래토록 흥하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물의 교훈’을 본받고자 하는 점이 곧 ‘장흥정’의 토대가 아닐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장흥에서는 매년 7월말이나 8월초쯤 되면 ‘정남진 장흥 물축제’를 개최하여 물의 선한 영향력을 널리 전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장흥군 장흡읍 평화마을 오른 쪽으로 흐르는 개울물을 따라 잠시 걷다보면 100여년이 훌쩍 넘어 보이는 배롱나무 군락에 에워쌓인 송백정(松百井)이 위치하고 있다.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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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장흡읍 평화마을 오른 쪽으로 흐르는 개울물을 따라 잠시 걷다보면 100여년이 훌쩍 넘어 보이는 배롱나무 군락에 에워쌓인 송백정(松百井)이 위치하고 있다.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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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장흡읍 평화마을 오른 쪽으로 흐르는 개울물을 따라 잠시 걷다보면 100여년이 훌쩍 넘어 보이는 배롱나무 군락에 에워쌓인 송백정(松百井)이 위치하고 있다.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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