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흥그레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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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마을로 이름 난 진도군 소포리 민속전수관에서 노래하는 아주머니들 편집에디터
민속마을로 이름 난 진도군 소포리 민속전수관에서 노래하는 아주머니들 편집에디터

혼자 부르는 노래와 여럿이 부르는 노래에 주목하는 이유

중장년층에게는 노래방 풍경이 낯익다. 술이라도 한잔 걸친 상태라면 더욱 흥겹다. 마이크를 서로 차지하려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일종의 겨루기다. 봄, 가을에 연행하는 야유회, 소풍놀이 등도 포함된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풍경은 더욱 선명해진다. 노래 경쟁은 인류 보편이다. 경쟁은 경쟁이지만 싸움하고는 다르다. 이 상황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기술이 ‘겨루기’와 ‘끼어넣기’다. 이 논의는 혼자 부르는 노래와 여럿이 부르는 노래의 같음과 다름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진다. 내가 연구한 바로는 중국의 일부 소수민족 등에 이 노래겨루기를 통해서 혼인에 이르는 풍속이 잔존한다. 베트남 북부에도 일정한 날을 정해 연인들이 함께 만나 노래하고 춤추는 풍속이 남아 있었다. 우리나라 신안, 진도, 해남지역의 강강술래도 본래 짝짓기 메커니즘을 갖고 있었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졸고, ?민요의 혼자 부르기와 여럿이 부르기에 대하여?(한국민요학 제26집, 2009)를 참고하면 좋다. 왜 여기 주목하는가? 노래와 소리의 갈래별 접근, 노래 지층의 본원적 맥락들에 대한 사유를 논거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흥요는 물론 노동요, 의례요 등의 현 단계적 문제 제기를 포함한다. 왜 노래하는가, 어떻게 노래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일 수 있다. 그렇다면 ‘겨루기’와 ‘끼어넣기’가 발생하기 이전의 노래는 무엇일까?

놀면서 부르는 노래, 유희요일까 유흥요일까

혼잣말로 주워섬기는 노래, 흥얼흥얼 노래하는 경우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여럿이 떼 지어 부르는 노래도 알고 있다. 범칭 ‘놀면서 부르는 노래’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한국민요를 집대성했던 최상일 PD는 MBC민요대전에서 ‘유흥요’로 분류한 바 있다. 그런데 유흥주점, 유흥거리 등의 용어들이 떠오른다. 딱히 그렇지는 않지만 퇴폐나 오락을 전제하는 용어로 오해받을 수 있겠다. 예컨대 ‘놀면서 부르는 노래’는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도 포함한다. 동요를 유흥요라고 호명하기에는 어쩐지 어색해 보인다. 유희(遊戱)는 ‘즐겁게 놀며 장난함 또는 그런 행위’다. 유흥(遊興)은 ‘흥겹게 놂’이라고 풀이된다. 사전풀이만으로는 두 용어의 변별을 말하기 어렵다. 용례에 따라 동요와의 친연성을 고려하여 ‘유희요’로 호명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갈래적 지점과 분화과정까지 설명해내려면 한층 복잡해진다. 아동유희요, 조작유희요, 모방유희요, 동물유희요, 자연유희요 등의 개념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심도 깊은 논의들은 논문을 참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그 대강만을 소개해둔다. 내가 분석해봤던 노래들은 흥그레타령(흥글소리), 산아지타령, 둥당애타령, 육자배기, 강강술래 등의 남도지역 토속민요들이다. 이중 혼자 부르는 노래 흥그레 소리에 주목해야 될 이유가 있다.

남도지역 유희요에 대한 갈래 인식의 역사

남도민요를 포함한 한국의 민요는 대개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 놀면서 부르는 유희요, 의식을 치루면서 행하는 의례요, 여기도 저기도 포함되지 않는 기타노래 등으로 나눈다. 일종의 연구 관행이다. 고위민은 1941년’춘추지’에 ‘조선민요의 분류’라는 글을 기고했다. 고정옥은 1949년 ‘조선민요연구’를 통해 민요를 11항목 71형으로 분류한 바 있다. 이외 여러 학자들이 민요의 갈래를 연구했다. 1992년 제주도를 시작으로 1976편의 전국민요 음원을 수록한 MBC민요대전의 분류가 가장 주목할 만하다. 최상일의 업적이다. 노동요, 의례요, 유흥요, 기타요로 분류해두었다. 소모는 소리나 말 모는 소리를 비롯해 애기 어르는 소리 등 음영가요까지 민요의 범주에 포함시켜두었다. 나는 이를 민요의 일생사 혹은 연령층별 민요 부르기로 재편하여 논의한 바 있다(졸고 <연령층별 민요 부르기의 일생 의례적 성격: 민요의 교육과 활용을 위한 생태민요학적 시론>, 비교민속학, 2009 참고). 일생 의례적 불가역성에 대응하는 즉, 한번 죽으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인생에 대응하여, 민요의 적층순환성을 드러내보고자 하는 취지로 쓴 글이다. 민요를 포함한 노래는 수많은 분화과정을 거쳐 다양한 장르와 분야로 특화되어 왔다. 트로트니 힙합이니 하는 장르 이름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민속놀이니 여흥놀이니 따위로 호명되는 통칭 ‘놀이’는 노래 이전의 정보 즉, 노래와 놀이가 분화하기 이전의 정보들을 다고 있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하(1872~ 1945)가 일찍이 인간을 ‘호모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으로 규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심지어 종교와 전쟁까지도 놀이로 해석했다. 궁극적으로 이 놀이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이익관계 중심으로 재편되어버린 인류사의 질곡을 헤쳐 나갈 방편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겨루기’와 ‘끼어 넣기’ 기술이라 함은 이런 맥락에서 내가 제안한 노래 이론 중 하나다. 오늘은 그 이전의 노래 흥그레소리를 톺아본다.

행위 대칭성 민요와 행위 비대칭성 민요

나는 행위대칭성 민요를 ‘단위요’라는 이름으로, 행위 비대칭성민요를 ‘개체요’라는 이름으로 호명해왔다. 이 둘의 교집합이 이른바 모의행위성 민요인 ‘놀이요’다. 행위 대칭성 노래는 노동요를 포함해 놀이요 전반이 해당된다. 예컨대 노동을 직접 매개하는 놋소리 등의 노동요라든지 다리세기민요 등의 놀이 행위를 추동하는 노래다. 비대칭성 민요는 소재 자체를 가지고 노래하는 유희요나 가창의 목적이 드러나지 않는 노래들이다. 개타령, 도라지타령, 새타령, 거무타령, 장꼬방타령 등이다. 도라지타령은 도라지를 캐면서 부르는 노동요가 아니다. 새타령을 새를 잡거나 새사냥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라고 말할 수 없다. 강강술래의 단위 놀이 중 하나인 고사리꺾기나 청어엮기 등의 놀이요는 어떠한가? 이 또한 고사리를 채집하거나 청어를 엮으면서 부르는 노동요가 아니다. ‘지와볿자놀이’나 ‘덕석몰기’, ‘남생아 놀아라’ 등의 놀이요가 모두 그렇다. 나는 이를 ‘행위대칭’과 ‘비대칭’의 교집합으로 풀이했고 이를 놀이요의 중심으로 해석했다. 그것이 노동이든 놀이든 행위에 대한 대칭성은 노래의 말하기 기능과 놀이하기 기능, 노동하기 기능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를 혼자 부르기와 여럿이 부르기라는 범주로 묶어 논의한 것이 내 주장의 요지다. 풀어 설명해도 좀 어렵긴 한데, 간단히 말하면 노래를 혼자 부르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노래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고, 노래를 여럿이 부르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노래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를 논의했다고 이해하면 보다 간명하다. 구체적인 내용은 지면상 생략한다.

남도민요의 토대가 된 혼자 부르는 노래 흥그레 소리

혼자 부르기의 전형성을 가지고 있는 노래는 남도의 ‘흥그레’ 소리다. 이 노래는 행위 대칭이 없다. 누워서도 부르고 자면서도 부르고 일하면서도 부른다. ‘겨루기’와 ‘끼어넣기’도 없다. 가장 본질적인 노래라고 내가 얘기하는 이유다. 오랫동안 남도지역 민중들 특히 여성들에게 가창되어 왔다. 그 역사가 얼마나 되었는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다. 신세타령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아마도 인류의 역사가 생긴 이래 존속된 노래이지 않을까싶다. 물론 지역의 언어로 노래하기 때문에 각 지역별 편차가 있다. 강원도의 아라리 황해도의 수심가 정도에 해당될 것이다. 민속음악의 대가로 알려진 이보형은 일찍이 논문을 통해 남도의 육자배기가 흥그레소리에서 왔다고 분석한 바 있다. 전국의 민요권을 나눌 때 남도지역을 육자배기토리권으로 나눈다. 흥그레소리가 이 지역의 토대가 되는 소리라는 뜻이다. 이 노래는 혼자 부른다. 흥얼흥얼 자신만의 신세타령을 한다. 장단도 없고 선율에도 큰 굴곡이 없다. 하지만 내재율이 있다. 진도군 임회면 십일시에서 고 장성천을 중심으로 창작하여 불렀던 흥그레타령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육자배기 소리와 거의 유사하다. 여러 연구자들이 연구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흥그레에서 육자배기 노래로 진화했다는 명백한 사례라는 점에서 내가 줄곧 주목해왔다. 진양조의 노래를 육자배기 노래라 하는 이유가 뭘까? 내재율을 분석해보면 답이 보인다. 일정하게 4박 형식의 말하기와 2박 형식의 호흡하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럿이 부르는 노래는 다르다. 예컨대 둥덩애타령은 혼자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3소박의 4박+4박 형식을 취하고 있다. 흥그레소리에서 보이는 호흡자리가 없다. 왜일까? 그것은 호흡자리를 대신할 창자가 따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여럿이 부르는 노래의 리듬형태다. 무엇이 다른가? 혼자 부르는 노래는,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하고 숨 쉴 자리를 찾아 호흡을 하는 구조인데, 여럿이 부르는 노래는,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하고 숨을 쉴 동안 상대방이 자기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구조다. 민요연구자들은 후자를 돌림노래, 선후창 노래 등으로 이야기한다. 혼자 부르기와 여럿이 부르기의 기능이 다르기 때문에 노래의 구성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남도를 대표한다고 하는 육자배기는 어떤 구성을 갖고 있을까? 알기 쉽게 말하면, 혼자 부르는 흥그레소리와 여럿이 부르는 둥덩애타령의 교집합이다. 후렴구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고나 ~헤”라는 전형구는 돌아가면서 자신의 설움을 이야기하는 ‘말하기 기능’ 중 권유하기에 해당된다. 나의 설움을 내 노래로 말했으니 이제 너도 너의 설움을 한번 이야기해보라는 청유의 전형구로 자리매김 되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을 나는 호흡이라고 보는데 이는 따로 지면을 만들어 소개하겠다.

남도인문학팁

심호흡을 할 수 있는 노래 흥그레 소리

말하기 기능이 강조되는 흥그레 소리의 형식은 말하고 나서 숨 쉴 자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해명이 가능하다. 4박 말하기와 2박 숨자리를 통해 6박 형식의 내재율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4박+4박 형식의 여럿이 부르기는, 놀이 기능이나 노동 기능 혹은 춤을 추는 기능 등 의례 기능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숨자리를 표면화시키지 않는다. 선창자가 노래하고 숨을 쉴 동안 후창자가 노래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노래들은 여럿이 부르지 않으면 구연하기 힘든 리듬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혹은 노래가 목적이 아닌, 춤이나 의례, 아니면 또 다른 기능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혼자 부르기는 말하기 기능을, 여럿이 부르기는 노동 혹은 놀이 기능을 주로 충족하는 노래다. 나는 이 둘의 교집합을 육자배기라고 본다. ‘혼자+여럿이 부르기’다. 육자자배기가 이 구조의 전형을 이룬다. 혼자 부르기+여럿이 부르기가 느린 리듬으로부터 빠른 리듬으로 배치된 것이 현재의 강강술래나 기타 메들리 형식의 묶음 놀이노래다. ‘느리게’에서 ‘빠르게’로 진행하는 것 또한 남도의 노래 나아가 한국전통음악의 전형적인 구조다.

어느 농가의 홀테질(이토아비토 촬영, 1972) 이처럼 홀로하는 노동의 경우 혼자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편집에디터
어느 농가의 홀테질(이토아비토 촬영, 1972) 이처럼 홀로하는 노동의 경우 혼자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편집에디터
도구통(절구독)에 떡 치는 여인들(이토아비토 촬영, 1972)두세사람이 모여 노동을 하는 경우에도 혼잣말로 노래하거나 주고받으며 노래하기도 한다 편집에디터
도구통(절구독)에 떡 치는 여인들(이토아비토 촬영, 1972)두세사람이 모여 노동을 하는 경우에도 혼잣말로 노래하거나 주고받으며 노래하기도 한다 편집에디터
남도민요를 잘불렀던 고 조공례 명인과 고김항규 명인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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