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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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병하 기자 bhno@jnilbo.com
노병하 기자 [email protected]

필자는 성장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다. 어딘가 불완전한 10대가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하나의 인간이 되가는 과정은 진행상황부터 결과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10대가 겪을수 없는 수많은 고통들이 있고, 주인공들은 결국 어찌됐던 극복하며 한걸음 더 나간다.

대부분 그런 그들이 향하는 지점은 ‘괜찮은 어른’이라는 곳이다.

대략적으로 표현하자면, 올바른 가치관과 아량, 인간에 대한 배려가 있으면서 그다지 참견하지 않는? 혹은 성숙한 철학을 지닌 참여자 등이다.

그런데 소설을 읽고 나면 늘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성숙한 어른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필자는 격동(?)의 70년대 생이다. 20살 즈음해서 하이텔이라고 불리는 국내 통신망이 탄생하더니, 그때부터 기술이 저멀리 달려가는 것을 숨 가프게 쫓아 달려왔다.

어디 기술 뿐이겠나. 민주화를 열망하던 1980년대에 10대를 보냈고, 온 세계가 더 이상은 민주화를 논하지 않을 것 같던 암흑같은 1990년대도 거쳐 왔다. IMF가 왔었고, 청춘은 나도 모르게 어디선가 져가고 있었다.

즉, 생물학적으로는 남자고 중년이다. 어른에 접어 들었다는 말이다. 사회적 책무도 있고, 지위도 있으며, 자기 발언권도 존재한다.

그런데 나는 제대로 된 어른인가? 아니 도대체 어른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지난 주말 서초동에서 한쪽은 태극기가, 한쪽은 촛불이 자리를 잡았다. 무엇이 옳은지는 나도 알수 없다. 다만, 저들이 무엇을 옳다고 믿는지는 알 수 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두 부류 중 한 부류는 틀렸을 것이라는 것과, 어떤 목적에 의해 나왔거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악을 질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모두를 위한 것은 아닌 듯하다. 아울러 저들의 상당수는 어른일 것이다.

그들을 보며 떠올린다. 저들은 제대로 된 어른인가? 내가 읽었던 성장소설의 과정을 겪고 나온 이들처럼 현명하고도 확신에 찬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날 서초동에 모인 두 부류는 가짜정보를 걸러내고, 진짜 팩트를 알며, 무엇이 우리들을 위해 필요한지 알고 있기에 각자에 자리에 선 것이겠지.

말도 안돼는 혐오나, 누군가의 선동이나, 헌금을 해달라는 말에 화답하려고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들은 그저 나이만 먹은 아직도 한참은 더 성장해야 할 청춘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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