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막눈’ 주부들 배움의 한 풀어주는 ‘광주학당’

29년째 이어져 내려오는 '주부 한글교실'
서방시장서 시작… 2500여명 넘게 다녀가
"희망을 전하는 곳으로 기억 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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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 풍향동에 위치한 '꿈을 돕는 사람들 광주학당'은 29년째 한글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2500여명이 넘는 학생들이 이곳에서 글 읽는 법을 깨쳤다. 광주학당 제공 김진영 기자 jinyoung.kim@jnilbo.com
광주 북구 풍향동에 위치한 '꿈을 돕는 사람들 광주학당'은 29년째 한글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2500여명이 넘는 학생들이 이곳에서 글 읽는 법을 깨쳤다. 광주학당 제공 김진영 기자 [email protected]

시작은 소박했다. 주변에 한글 공부를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이들이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속앓이 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들의 아픔을 보듬고자하는 마음이 시작이었다.

올해로 29년째 이어져 오는 ‘꿈을 돕는 사람들 광주학당’이다. 지금까지 2500여명이 넘는 이들이 광주학당을 다녀갔다.

한글날 573돌을 맞이한 9일 이정자(75) 교장을 만나 광주학당의 ‘꿈’을 들어봤다. 광주학당의 역사이기도 한 그는 지금도 학당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 교실과 교무실 하나로 시작

시작은 1990년 10월10일 서방시장이다. 6·25전쟁으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해 좁은 부엌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글공부를 하던 동네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본 것이 계기였다.

평소 여성들의 인권에 관심이 많았던 이정자 교장은 ‘나라도 이들에게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러나 광주학당의 문을 여는 것은 순탄치 않았다.

이 교장은 “한글교실의 문을 열겠다는 생각을 말하니 남편이 반대했다”며 “응원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이 반대하니 3일 밤낮을 잠도 못자고 고민했다”고 했다.

당시 학생이었던 자녀들 역시 “우리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참아달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그의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나중에는 지금과 같은 마음이 들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끈질긴 설득 끝에 가족들도 결국 그의 뜻에 힘을 보탰다. 당시 돈으로 3500만원을 들고 서방시장을 찾아갔다. 서방시장 2층에 마련한 작은 교실하나와 교무실 하나. 30여년 한글공부의 터전이 된 ‘광주학당’의 시작이다.

● 한문방과 청소년 공부방까지

1990년.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조차도 없던 시절 시작된 한글교실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한글을 배우지 못해 평생 설움을 품어왔던 주부들이 광주학당을 찾았다. 14살 소녀부터 45세 아주머니들까지 80여명이 몰렸다.

혼자서 한글수업을 하기 버거웠던 이 교장은 대학교를 찾았다.

이 교장은 “당시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회장을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며 “봉사에 관심이 많은 학생 선생님들이 도움을 주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대학생들과 광주학당의 인연은 2003년까지 이어진다.

제법 기틀이 갖춰지자 한문반과 청소년 공부방도 마련했다.

이 교장은 “당시에는 서방시장이 큰 규모였는데 부모들이 장사하느라 바빠 시장에서 노는 아이들이 있었다”며 “시장으로 가면 열댓명의 아이들이 줄서서 따라다니곤 했다. 아이들이 방학 때 공부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주고 싶었다”고 회상한다.

한글을 깨우치기 위해 광주학당에 들어온 이들 중에는 초·중·고등의 과정을 마치고 검정고시를 통해 당당히 대학에 입학한 이도 있다.

● 희망을 전하는 울타리 되고파

3년 전 북구 풍향동으로 이사한 광주학당은 지금도 40여명의 학생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

90년대에는 젊은 주부들이 많이 찾았다면 지금은 60대에서 80대까지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주축이다. 선생님들도 달라졌다. 교편을 잡다가 은퇴한 교사 12명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90년대에는 대학교 축제가 열리는 날마다 선생님들의 결석이 잦았다면, 지금은 노인일자리사업이 있는 날 학생들의 결석이 잦다.

광주학당의 문을 열고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았다고 회상하는 이 교장. 그는 “단 한명의 학생이라도 한글 배우기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꿈을 돕는 사람들’ 광주학당의 수업은 계속될 것”이라며 “사람들에게 희망은 전하는 곳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꿈처럼 광주학당은 여전히 필요한 현실이다.

2017년 기준 성인 960만명(22.4%)이 일상생활 또는 공공·경제생활에서 문해력이 떨어져 어려움을 겪는 실질 문맹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성인문해교육 현황’ 자료다.

여전히 한글교육이 필요한 현실, 광주학당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