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귀촌일기 – 농촌생활(1)

박찬규 진이찬방 식품연구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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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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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4계는 도시에서 생각한 것 보다 바쁜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생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만 40년 넘게 규칙 속에서 살았던 패턴이 시골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농촌생활은 자연과 벗하면서 살아가다 보니 하루 일이 계획대로 되는 것보다는 자연환경이라든지 동네 사람들의 요청에 의하여 변화무쌍한 경우가 많다. 이 곳 전라남도 땅끝 해남은 김장철에 배추를 절임하여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초가을이 되면 너도나도 배추모종을 사다 이식하기에 바쁘다. 필자도 가족이 먹을 만큼은 김장용 배추를 심고 있는데 이도 벌써 7년째 접어들고 있다. 지난 시간만 보면 농사일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작물마다 매년 새로운 품종이 나와 작년에 배웠던 농법을 수정해 가면서 실행해도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곤 한다. 올 봄에는 선택 폭을 줄여 밭작물로 고추, 옥수수, 생강, 감자, 고구마를 심었고 벼농사를 시작했다. 매년 농사일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물을 재배하고 있는데 올해는 유달리 남부지방에 비가 많이 와 잡초 문제로 새롭게 애를 먹고 있다. 잡초는 모든 농작물에 생기는 풀로서 해가 갈수록 왕성해져 봄에는 보름에 한 번 풀매는 것을 여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매지 않으면 농작물이 풀에 덮히기 때문에 만사 제쳐놓고 풀매기를 해야 한다. 사람들이 흔히들 농약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모종을 옮겨심기 전이나 씨앗을 뿌리기 전에 제초제를 쓰는 경우는 있어도 일단 싹이 땅에서 나오고 나면 농약을 쓰는데 주의해야 한다. 이때 농약을 함부로 쓰면 작물도 함께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고추밭은 고랑 사이에 부직포를 깔아 풀이 나는 것이 덜하지만, 생강 같은 경우에는 햇빛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이라 부직포나 비닐을 덮지 않기 때문에 풀매기로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고구마는 처음에 심을 때 흙 위에 비닐을 덥고 심기 때문에 풀이 덜하고 워낙 성장력이 좋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고구마가 풀을 압도하여 풀을 맬 필요가 거의 없다.

요즘은 산밭에 심어놓은 유실수 나무를 칡넝쿨이 휘감아 나무를 힘들게 하기 때문에 칡넝쿨 제거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봄에는 칡순을 따 발효식품을 만들어 건강에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워낙 강한 넝쿨식물이라 밭고랑에 칡순이 나는 순간에 온 밭이 칡넝쿨로 덮혀져 나무나 작물을 힘들게 한다. 귀촌생활은 땅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 건강을 지켜주는 역할이 있지만 잡초를 제거하는 데 너무 불필요한 시간이 요구된다. 요즘은 농약도 친환경 제품이 많이 나와 인체에 해로움이 적다고 하나 직접 풀을 매가면서 농사일을 하다 보니 육체적으로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시골생활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생활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며 내가 노력하는 만큼 수확이 따르는 환경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농사는 사람만이 짓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함께 짓는 것이다’라는 명제 앞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고 묵묵히 지어가다 보면 어느 날 농사꾼으로 달인이 되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올 봄에는 대나무밭에서 죽순을 꺾어 말리기도 하고 좋아하는 죽순 술도 빚어 숙성시키고 있으며 솔방울과 솔잎을 따다가 흐르는 물에 일주일 넘게 씻어 솔잎 발효를 하고 솔방울 술도 담가 두었다. 매년 산밭에서 따는 산매실로 매실 발효를 하고 있으며 올해 첫 수확한 아로니아는 발효시켜 발효식초를 만드는 일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올해 두 차례의 태풍으로 벼가 대부분 쓰러져 벼농사는 거의 망치다시피 했지만 그래도 건강을 잃지 않고 자연이 준 맑은 공기와 신선함으로 하루하루 건강하게 살고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으리라. 귀촌해서 살다보면 경제적 만족은 높지 않지만 정신적 만족이 높아서 농촌생활에 희망이 더해지는 것 같다.

땅에 씨만 뿌리고 물만 주면 다 잘 자라는 줄 알았을 정도로 농사일에 경험도 없이 귀촌했던 필자가 요즘은 작물을 키우는 일에 취미도 붙고 정신적으로 바빠지거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어서 좋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귀촌해서 생활하는 것이 생활비가 적게 들어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서는 농산물을 생산하여 판매할 때만 소득이 생겨 경제적으로 생각보다 여유롭지는 않다. 다만 이제는 쫓기듯이 일하는 느낌은 안 들고, 시간과 몸으로 체득한 이런저런 경험들이 쌓여 스스로 조절하며 일할 수 있고, 일 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다. 농사는 일 년 계획으로 차근차근 하는 일이라 자유롭게 스스로 룰을 정해서 하면 별 탈이 없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다보면 농촌생활이 즐겁고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