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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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
양가람 기자 [email protected]

“지체, 말 그대로 뒤처지는 걸 의미합니다. 그들은 본인 만의 속도로 가고 있는데, 정신 지체라는 표현이 맞는 걸까요?”

지난 24일 산수문화마당에서 동구 인문강좌가 열렸다. 김예원 장애인 인권 전문 변호사가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사는 법’을 주제로 의미있는 강연을 했다.

한 시간 남짓한 강연 동안 여러 번 충격에 빠졌다. 사회적 소수자들 앞에 놓인 벽의 두께에, 그 벽이 혐오라는 벽돌로 층층이 쌓여 쉽게 허물어지지 못할 것 같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인권 감수성이 이렇게 무뎠던가’ 하는 자괴감이 크게 다가왔다.

이날 김예원 변호사는 ‘공감’을 강조했고, 그 시작은 ‘차별의 언어’ 사용을 지양하는 것이었다.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차별은 그들을 침묵하게 만들고 사회에서 배제시킨다는 점에서 폭력이다. 그런 점에서 차별의 언어는 ‘혐오’의 뿌리나 다름없다.

강연을 들으면서 그 동안 썼던 기사에 차별의 언어가 담겨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단어, 표현 하나하나가 누군가를 공격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감이 급하다는 이유로, 혹은 부실한 취재로 깊은 고민 없이 쓴 기사의 무게를 실감했다. 문화부에 짧게 몸담던 시절, 나름대로 언어에 대한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멋드러진 표현을 위한 것이었지, 누군가를 배려하는 언어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장 폴 사르트르는 가장 낮은 사람의 눈으로 봐야 그 사회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애,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은 법과 사회의 성긴 테두리 안에서 규정되고 낙인 찍히는 경우가 많다. 기자는 법망에 갇혀 잘잘못을 헤아리는 데 멈춰선 안된다. 약자의 관점으로, 혹시 그 법망이 잘못 설정돼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진 않은지 살피는 게 기자의 의무다.

사건의 현장에 서게 된 지금, ‘발로 쓰는 언어’, ‘몸으로 쓰는 언어’에 대해 고민하려 한다. 한 템포 쉬어 가더라도 기자의 언어를 구사하고 싶다.

양가람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