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의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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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봉 기자 gbkim@jnilbo.com
김기봉 기자 [email protected]

최고 경지의 정치는 그 존재감이 없어야 한다. 노자(老子)는 이를 ‘무위지치(無爲之治)’라고 했다. 애써 통치를 하지 않아도 나라가 저절로 잘 다스려지는 경지를 말한다. 요즘 대한민국은 어떤가. 모든 국민이 정치를 말하고 논쟁도 치열하다. 정치의 존재가 확연하게 느껴진다. 무위지치와는 정반대인 최악의 정치판이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최악의 정치는 분열을 낳는다. 분열은 갈등을 심화시키고 사회에는 화(火)가 쌓인다. 그런데 좋은 지도자도 뜻하지 않게 분열의 정치를 할 때가 많다. 선의를 갖고 개혁을 하는 과정에서 기득권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면 그런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위정자가 사회통합을 위해 잠시 자신의 신념을 접어야 하는 이유다. 고(故)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지지 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연정을 제안한 것도 자신의 신념보다는 분열의 정치를 끝내겠다는 의지가 앞섰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통하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최근 직원들에게 신념을 언급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틴 루터가 여론조사를 했다면 종교개혁이 가능했을까?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의 여론조사나 여론이 아니라 옳고 그름에 대한 결단력”이라는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했다.

양 원장이 인용한 것처럼 마틴 루터는 부패한 로마 가톨릭을 개혁해야 한다는 투철한 신념으로 종교개혁에 나섰다. 마틴 루터는 성서가 어려운 라틴어로 쓰여 성직자 등 소수만이 그 내용을 독점하고 왜곡해 대중을 호도하자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다. 독일어만 겨우 읽을 수 있었던 평민들도 루터 덕분에 성직자를 거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읽을 수 있게 됐다. 이후 ‘정보의 독점’으로 권력을 꿰찼던 중세 성직자들은 하나 둘씩 무너졌다. 루터의 강한 신념이 있었기에 유럽은 중세 암흑기를 끝내고 새로운 불빛을 향해 나갈 수 있었다.

루터와 같은 선각자의 신념은 역사를 바꿨다. 다만 모든 신념이 역사의 발전으로 이어진 건 아니다. 전제조건이 있다. 그 신념은 반드시 대중의 요구와 부합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대중이 원하는 것은 뭘까. 어떤 변혁을 요구하고 있을까.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여론은 더욱 극단으로 치닫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양 원장의 ‘신념’, 공허하게 느껴진다.

김기봉 디지털뉴스국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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