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벼재배 농민들 연이은 태풍에 좌절

태풍 '타파' 피해 함평 벼재배 농가 르포
‘링링’으로 인한 생채기 채 낫기도 전에 ‘설상가상’
수확 목전에 두고 도복 피해… “나락 반도 못 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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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호 태풍 '타파'의 영향으로 광주·전남지역 농작물 피해 등이 잇따른 가운데 23일 함평군 엄다면 화양리 인근 논에서 한 농부가 도복 피해를 입은 벼를 살펴보고 있다. 나건호 기자 gunho.na@jnilbo.com
제17호 태풍 '타파'의 영향으로 광주·전남지역 농작물 피해 등이 잇따른 가운데 23일 함평군 엄다면 화양리 인근 논에서 한 농부가 도복 피해를 입은 벼를 살펴보고 있다. 나건호 기자 [email protected]

 ”(태풍이) 지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와. 우리같이 흙 파먹고 사는 사람들은 올해 어떻게 산당가.”

 23일 찾은 함평군 엄다면에 위치한 50마지기(약 3.3ha) 면적의 드넓은 논. 노란빛과 초록빛이 뒤섞인 들판은 시원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미동조차 없었다.

 지난 21일 전남 지역을 덮친 제17호 태풍 ‘타파’의 영향으로 벼들이 모조리 논바닥에 드러누워 흔들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 모습을 착잡하게 바라보던 정윤연(78)씨도 논두렁에 주저 앉은 채 미동이 없었다.

 곧 팔순이 됨에도 가족들과 함께 벼농사를 지어온 그에게 올해 피해는 특히 뼈아프다. 제13호 태풍 ‘링링’이 휩쓸고 간 뒷수습을 할 겨를도 없이 불과 2주 만에 더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저번에는 피해면적은 적었지만 벼가 익기도 전에 쓰러져 죽은 벼가 많았다. 이번에는 벼는 좀 여물었으나 피해면적이 방대해 눈앞이 캄캄할 지경이다”며 “3주 정도만 더 지나면 추수 때를 가늠하려 했는데, 그걸 비웃듯 태풍이 연이어 논을 뒤엎어버렸다”며 망연자실해 했다.

 특히나 벼들이 태풍에 버틸 시간이 너무 짧았다.

 정씨는 “이번 태풍이 심하기도 했지만, ‘링링’ 때 받은 스트레스를 (벼들이) 극복하기도 전에 재차 강풍이 몰아쳐 약해져 있던 벼가 많이 쓰러졌다”고 설명했다.

 더욱 그를 답답하게 하는 것은 이런 상황이지만 뭘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다. 고령화가 만연해 70세면 젊은 나이라는 소리를 듣는 농촌에서는 쓰러진 벼를 다시 일으켜 세울 사람들이 없다. 고되고 힘든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씨도 그저 누워있는 벼가 조금이나마 익기만을 기도할 따름이다.

 정씨는 “군청에서 피해 신청을 받고 있어 보상이 나오긴 하겠지만, 어차피 거름값도 안 된다”면서 “추수해도 반타작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 태풍에서 벼 피해가 제일 심한 나주시도 마찬가지였다.

 문평면에서 5마지기(약 0.3ha) 벼농사를 짓고 있는 이명순(68·여)씨의 논에는 제대로 서 있는 벼가 없다. 지난번 링링에서는 큰 피해가 없다 싶었는데 이번 태풍에 애지중지 키워온 벼가 모조리 쓰러진 것이다.

 이씨는 “‘링링’ 때 농협에서 피해조사를 나왔는데, 총면적 중 5%의 벼가 쓰러졌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육안으로만 봐도 전부 넘어져 버렸다”고 망연자실했다.

 이어 이씨는 “다 익지도 않았는데 벼가 전부 넘어져서 수확해도 나락을 반도 못 건질 것 같다. 걱정스럽고 답답한 마음에 이틀 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며 쓰러진 벼가 가득한 논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오선우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