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일의 ‘색채 인문학'(22) 빨간색과 시대-1

서구의 종교에서 빨간색은 ‘신앙의 순교’로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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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미술교육학자인 그레이브스(Graves, Maitland E.)는 그의 저서(The Art of Color and Design, 1941.)에서 “고전 예술과 원시 예술은 본질적으로 야외 예술이다. 빨강은 주로 건물의 전면을 장식하는 입상(立像), 북아메리카 흑인들이 집 앞에 숭배하는 토템 폴(totem pole),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전함이나 전차에 칠했던 색”이라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빨강에 대한 배경으로는 파란 하늘에 녹색의 초목이었기 때문에, 난색의 사용은 이 같은 이유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대조를 이룬다.

고대 그리스인들이나 에트루리아(Etruria, 옛 이탈리아 중부에 있던 나라이며, 영토는 지금의 토스카나 주, 라치오 주, 움브리아 주에 해당됨)인들은 전쟁터에 나가기 전 온몸을 빨간색으로 물들여 공격성과 용기를 자극하였다.

고대 유럽인들은 불의 색인 붉은색이 악마나 악령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마케도니아(Macedonia, 이 공화국은 유럽 발칸반도 한가운데에 있는 내륙국이다. 북쪽으로 세르비아, 동쪽으로 불가리아, 남쪽으로 그리스, 서쪽으로 알바니아와 접함)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악마를 묶어두기 위해서 침실의 문에 붉은 실을 꼬아 매두었다.

진짜 퍼플레드(purple red)는 자수정과 같은 보라색이었다. 이 보랏빛 퍼플레드는 고대에서 가장 비싼 색으로 비잔틴 제국의 황제 직영 염색공장만이 제조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비잔틴이 몰락하면서 퍼플레드의 제조 비밀도 사라졌다. 그때부터 가장 값진 직물은 빨강이 되었으며, 이 색으로 염색하게 되었다.

색채와 신앙

서구의 종교에서는 빨간색이 신앙의 순교로 상징된다. 배빗(Babbitt)은 그의 저서(Principles of Light and Color, published by the author, East Orange, N. J., 1896.)에서 빅토리아 왕조(1837년∼1901년, 영국의 전성기를 말함)시대에 빨간색 창유리를 사용했다고 주장하였다. “빛은 바깥 세상의 찬란함을 드러내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찬란하다. 빛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므로 진리를 말하는 자이며, 폭로하는 자이다.”

빨간 창유리. 편집에디터
빨간 창유리. 편집에디터

로마 제정 초기의 자연과학자인 플리니(Pliny the Elder, AD 23년~AD 79년, 플리니우스(Plinius)에 의하면, 스코틀랜드(Scotland)에서는 갓 태어난 아기를 악마의 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목에 빨간 리본을 매주었다.

목에 빨간 리본 . 편집에디터
목에 빨간 리본 . 편집에디터

브라질의 카야포 인디언들은 빨간색을 힘과 건강 그리고 민첩성을 상징했기 때문에 신체의 말단 부분이나 얼굴에 칠했다.

색채와 정치

과거 제정러시아에서는 8가지 이념을 색으로 나누었다. “공산주의나 볼셰비키(Bolshevik) 혁명주의자들은 빨강으로, 과거 제정 러시아의 정통성을 인정하면서 입헌군주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하양으로, 개혁을 지지하는 과거의 공산주의자들은 핑크색으로, 반유태주의 경향이 심한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은 검정으로, 파시스트와 무정부주의자들은 갈색으로, 러시아의 입헌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노랑으로, 환경주의자들은 녹색으로, 별다른 사상적 경향이 없는 사람들은 회색으로 각각 분류되었다.”

밝은 빨간색은 자극적이며, 일반적으로 유쾌한 것이지만 광범위하게 혹은 너무나 많은 양을 사용하면 피로감을 준다. 또한 ‘빨간 지대’와 ‘홍등가의 여인’과 같은 단어는 색채의 성적인 면을 암시하고 있다.

문화예술 기획자/ 박현일(철학박사 미학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