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비굴

노병하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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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병하 기자 bhno@jnilbo.com
노병하 기자 [email protected]

직장을 제법 오래 다니다보니,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도 월급 받고 다닐 때가 좋아.” 주로 사업(이라 부르고 실상은 자영업)을 하는 친구나 지인들에게 듣는 말이다.

어찌됐던 매달 월급날이 되면 급여는 나오니 그것이면 족하다는 뜻일 게다.

맞다. 어떻게 해서도 한 달은 가고 얄팍하나마 급여가 들어오면 내 가족이 또 한 달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한 달을 살아내기가 버겁다고 느껴진다.

하루는 너무도 빨리 가고 일주일은 그보다 더 빠른데, 정작 한 달이 가는 것은 더딘 것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언론에 종사하는 이라고 다른 직장인과 다른 것은 없다는 점이다. 상사의 눈치를 보는 것도 같고, 때에 따라서는 고개도 과감히 숙여야 한다.

이것이 가족들 앞이라고 다를까.

지난 추석, 갑작스럽게 필자의 집에서 차례를 지내야 했다. 아내는 뭘 어떻게 할지 몰라 당황했고, 필자도 정신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과거처럼 남편이 집에서 큰소리를 치는 세상도 아니고, 지금은 명절만 되면 ‘욕받이 무녀’를 자처하며 딸랑거리는데, 이 역시 작은아버지 댁에서 차례를 지냈을 때가 그 정도였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필자의 작은 집에서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야 하니 아내의 심정이 어떠했으며, 더불어 내 심장은 또 어떠했을까.

어찌어찌해서 둘이서 용케 명절을 마무리하고 나니 온 몸에 전기가 온 듯 아프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이것을 매년 몇 번이나 했을까 하니 마음이 짜르르 해지고 잘 마무리한 아내에게도 눈물이 날 만큼 감사할 따름이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굽신 거려야 할 때가 있다. 누구라고 그게 좋아서 하겠는가. 허나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고생한 주변인들을 위해서, 어떨때는 나의 생존을 위해서 해야 한다.

그러니 지면을 빌어 ‘남자 가장’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아내와 어머니야 TV에서 어디서 ‘고생하셨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터(또 그것이 사실이고)이니, 필자는 틈새시장을 노려 그 명절을 치르기 위해 돈을 마련하고, 그럼에도 넉넉치 못한 용돈을 어른들께 드리는 것이 죄송스러운, 모든 것이 끝난 뒤 아내의 어깨를 주무르는, 그래서 ‘생존을 위한 비굴’을 기꺼이 감당한 당신들에게 ‘고생하셨다’ 말하고 싶다. 애쓰셨다. 다음 설까지 또 버텨 보자.

노병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