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2019 김우진초혼예술제’를 통한 김우진 다시읽기

박관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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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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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1일은 지금으로부터 93년 전에 한국 최초로 일컬어지는 근대연극인이자 문학인이던 김우진과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이 일본의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오는 관부연락선에서 현해탄의 검푸른 물결로 투신했던 기일이다.

마을 안 문필봉으로 불리는 말뫼산 정상에 김우진의 초혼묘를 안고 있는 월선리예술인촌에서는 매년 벌초를 하고 간략한 추모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한국과 일본의 마찰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 갈수록 극심해지는 국가주의에 대한 성찰과 함께 그동안 주로 희곡장르에 국한해 학술적 관점에서만 다뤄지던 김우진의 문화예술세계를 광범위하게 살펴볼 계기를 마련해보자는 목적으로 ‘2019 김우진초혼예술제’를 조촐하게 진행했다.

원래 30여명의 예술인들이 모여 살고 있던 월선리예술인마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전남관광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진행 중인 월선리예술인마을 콜로키움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8월31일부터 일주일 동안 진행됐다.

당시 100만평이 넘는 땅과 더불어 현재의 전남도청 자리에 있던 99칸 한옥은 풍수로 보면 용의 머리이고 현재 임치진 터에 있는 가족묘 터는 용의 꼬리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처럼 무안과 목포를 비롯한 전남 서남권에서는 김우진의 부친인 ‘김성규의 땅을 밟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다’는 속설이 있을 만큼 부유했던 김우진이 현해탄에 몸을 던진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말하듯이 단순한 연인간의 정사나 부자간 갈등으로만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크다는 점은 이미 기정사실화 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사실 별다른 구체적인 답이 찾아진 것도 아니다.

이번 김우진초혼예술제에서 이를 밝히기 위해 김우진의 사상체계와 이의 형성기반이 된 가족상황, 지역 역사와 문화 및 문학적 전거들을 다양하게 찾아보는 ‘김우진 다시읽기’를 주제로 한 문학예술 집담회를 진행했다.

아무래도 딱딱하게 포장돼 일방적인 강의 형식을 벗어나기 어려운 기존의 세미나나 심포지엄 형식이 아니라 한옥 대청마루에서 자유로운 발제와 수평적인 토론으로 진행되는 방담 형식의 문학예술 집담회에서, 오랫동안 한국과 일본의 비교문학을 연구해 온 한성례 문학평론가는 ‘김우진의 사상적 흐름 탐색:아리시마 다께오를 중심으로’ 발제를 했다. 이는 미국과 유럽 등의 다양한 근대사상을 받아들여서 실행에 옮겼던 아리시마 다께오를 사상적 거점으로 형성된 김우진의 문학예술사상을 새롭게 점검하고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사실 김우진보다 철저한 사회주의 사상은 물론 다양한 진보적 문예활동을 펼쳤던 ‘김철진의 호남평론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발제한 이동순 문학평론가는, 그동안 일제 강점기 부의원을 하는 등 친일행위가 지목되기도 했던 김철진이 사실 의열단원으로 감옥생활을 했던 신문기사 등을 발굴해 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실제 자료를 찾는 일에 문학연구의 주안점을 두는 그의 연구태도가 빛을 발하는 것이어서 행사를 더욱 빛나게 한 셈이다.

김우진의 아들로 그의 뜻을 물려 받아서 한국 언어학의 토대를 마련한 서울대 언어학과 김방한 교수와 그의 언어학을 소개한 목포대학교 정성훈 교수의 ‘김방한의 근대 언어학 도입과정’의 발제 문 역시 근대형성기 다양한 역할을 했던 아버지 김성규 등과 어울려 김우진 가문의 문화적 아우라를 충분히 느끼게 한 글이었다.

극예술연구회와 동우회 결성 등을 주도해 최초로 문예운동을 통해 민중들을 깨우치고자 전국을 순회하면서 펼쳤던 현장 예술인이자 자신의 삶을 온전히 문학예술적 실천을 위해 투신한 김우진의 문학세계를 작금의 한국문학에 수용하기 위한 점검도 해봤다. 하지만 큰 주제에 비해 시간도 여유도 별로 없는 형편이이서 필자가 ‘한국 현대문학에 있어 김우진문학의 수용방안’에 대해 졸렬한 필문으로 간략히 발제를 했다. 초기의 김우진문학제를 주관했던 박금남 무안신문 대표가 ‘김우진초혼예술제의 향후 진행 방안 모색’ 등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