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김강 호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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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 교수 편집에디터
김강 교수 편집에디터

어니스트 헤밍웨이. 인간실존에 대한 글쓰기로 20세기 세계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했다고 인정받은 미국의 소설가다. 그는 1952년에 발표한 ‘노인과 바다’라는 중편소설로 미국 예술문화 분야 최고의 명예인 퓰리처상을 받은 데 이어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거대하고 무례한 자연에 분연히 맞서나 결국 빈손으로 주저앉는 인간의 고독한 삶의 투쟁과 의지를 매우 담담한 문체로 묘사한다. 산티아고라는 노인 어부는 84일 동안 매일 바다에 나갔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다.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채 바다를 헤매다 마침내 거대한 청새치를 잡는다. 길이가 5.5미터에 무게는 거의 700킬로에 이르는 엄청난 대어다.

노인은 이틀 밤낮을 싸우며 버틴다. 겨우 잡은 물고기를 조각배에 묶고 귀항하던 중 이제는 먹잇감에 굶주린 상어들과 대적한다. 산티아고는 자신의 전리품을 지키려 홀로 사투를 벌이지만 항구에 도착 후 남은 것은 물고기의 대가리와 앙상한 뼈대뿐이다.

그는 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치열했을까. 주린 배를 기름지게 채워줄 생선 덩어리일까 아니면 인생의 대어를 잡았다는 명예욕일까. 승리는 너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포기하기 않는 것”이라는 노인의 말과 요새 ‘조국 논란’이 중첩되어 장엄하기보다는 부질없다는 느낌이다.

헤밍웨이의 또 다른 대표작은 “For Whom the Bell Tolls,” 우리말로 번역하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다. 1937년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공화파에 가담해 게릴라가 된 한 미국인 청년의 ‘만인을 위한 투쟁’에 관한 이야기다. 1943년 잉그리드 버그만과 게리 쿠퍼가 주연한 영화로 만들어졌고,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최우수작품상, 최우수 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하여 원작보다 화려한 갈채를 받았다. 우리에게는 소설보다 영화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이 표현의 주인은 따로 있다.

존 단. 17세기 영국 문단에 유행했던 형이상학파 시 그룹의 대표적 작가다. 그는 또한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던 글로브극장과 템스 강 건너편에 우뚝 서있는 성 베드로 성당의 주임사제였다. 욕정의 하룻밤을 보내려 처녀애인을 설득하는 남자의 논리적이며 현학적인 비유를 다룬 ‘벼룩’과 같은 불후의 작품을 남긴 시인이자 성직자였지만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의 설교였다. 당시 국왕 제임스 1세가 그의 강론을 듣기위해 궁정으로 빈번하게 초대할 정도였다. 그의 설교는 명상록으로 출판됐고, 이 중 ‘시급한 일들에 대한 기도문’의 명상시 17번에 위의 구절이 등장한다.

“인간은 그 자체가 완전한 섬은 아니다 /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부분이며, 대양의 일부이다 /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은 그만큼 작아지며 / 어떤 높은 곶이 바다에 잠겨도 마찬가지 / 그대의 친구들 혹은 그대 자신 소유의 땅이 물에 잠겨도 마찬가지다 /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 그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엊그제 의혹이 증폭되는 와중에 마침내 법무부 장관이 임명됐다. 국가개혁을 향한 대통령의 고집스런 결단이다. 야당과 검찰은 자신들의 권한과 명분을 무적의 방패로 삼아 후보자 가족 개개인의 신상 털기와 재산 축적의 과정까지 들추었다. 그 누가 정치적 음해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2030 청년세대를 ‘헬조선’의 이데올로기로 매장한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근거와 증거에 충실해야할 언론은 불구경에 모자라 씻김굿까지 벌인 듯하다. 혹시 이 모든 메조키스트적 광기가 적폐청산과 권력개혁을 두려워하는 세력들의 ‘도원결의’는 아닌지.

존 단의 시처럼, 우리는 모두 한데 묶여있다. 너는 나고 나는 너다. 너의 오만은 나의 태만에서 잉태하고, 나의 출세는 너의 희생에 기생한다. 모두의 세상을 위한 대의를 바르게 찾아야한다.

황교안의 아들, 나경원의 딸, 조국의 딸, 그리고 장제원의 아들, 억울하고 괴로운 자식들이 비단 이들 뿐일까. 대체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의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