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이는 모르는 전쟁터” 명절 연휴 택배 현장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분류작업만… 한밤중까지 배송
우정청도 마찬가지… 평소 비해 우편·택배 물량 47% 증가
“분류와 배송작업 구분 절실…생활물류서비스법 국회 계류”

851
9일 오전 7시 광주 북구 한 택배사의 물류터미널에서 이날 들어온 1만7000여개의 물건을 배송 구역별로 분류해 차에 싣고 있다. 곽지혜 기자 jihye.kwak@jnilbo.com
9일 오전 7시 광주 북구 한 택배사의 물류터미널에서 이날 들어온 1만7000여개의 물건을 배송 구역별로 분류해 차에 싣고 있다. 곽지혜 기자 [email protected]

“점심 먹을 틈이 어디 있어요. 2시부터 배송 시작해서 하루 250여개 돌리고 밤늦게라도 퇴근하려면 1분1초가 아쉬운데…”

새벽부터 비가 쏟아진 9일 오전 7시, 광주 북구에 위치한 한 택배사의 물류 터미널은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100여명이 넘는 택배원이 모여 있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폭증한 택배 분류 작업을 위해서다.

이날 터미널에 도착한 택배 물량은 1만7000여개. 그나마 화요일과 수요일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물량이 적은 날이다.

18년 경력의 안모(44)씨가 이날 하루 동안 배달해야 할 물건은 모두 250개다. 기계가 일차적으로 배송구역을 분류해 주기는 하지만, 물건을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체크해 차에 싣는 일은 사람의 몫이다.

택배원들이 본인의 할당 물량을 모두 싣고 터미널에서 나서는 시간은 평균 오후 2시. 추석 연휴 평소보다 물류 양이 50% 이상, 많게는 2배까지 증가하면서 택배원들 대부분이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무려 7시간을 분류작업으로 보낸다.

안씨는 “그나마 이곳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분류 기계를 통해 어느 정도 구역을 구분할 수 있지만 다른 터미널들은 기계 도움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택배원들이 분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송 건당 수수료를 받는 택배 특성상 분류작업 시간은 임금을 받는 정식 노동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택배 노동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하루 7시간을 ‘무료 봉사’하고 있는 셈이다.

배달 시작 시간이 늦으니 자연히 마무리하는 시간도 늦어진다. 추석을 앞둔 요즘은 밤 11시까지 배달하는 일이 태반이다.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에 안씨는 “명절 연휴에는 몸도 힘들지만 종일 밥도 안 먹고 일해도 오늘 맡은 물건을 모두 배달할 수 있을까하는 압박감이 가장 두렵다”며 “이렇게 비가 오는 날도 참 그렇다. 사람은 비 맞아도 되지만, 물건은 비 맞으면 안 되는 것이 여기 일이다”라며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우체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 2일부터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전남지방우정청에 따르면 오는 17일까지를 추석 우편물 특별 소통 기간으로 정하고 4800여명 인력과 700여대의 운송 차량 등 각종 장비를 추가로 투입했다.

우정청은 올해 추석은 지난해보다 5.6% 증가한 291통의 우편물이 소통될 것으로 내다봤다.

택배사보다는 조금 더 나은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우체국 집배원 역시 추석 연휴 기간 정상 업무 시간 안에 배달을 마치는 일은 없다.

실제로 지난 6일 충남 아산에서는 집배원 박모(57)씨가 배달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국집배노동조합 관계자는 “박씨는 평소보다 4배 많은 추석 택배 물량을 처리하느라 가족의 도움까지 받을 정도였다”며 “사고 당일에도 넘치는 물량 탓에 가족의 도움으로 배달을 마치고 우체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고가 났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택배노조와 집배노동조합 등에서는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택배·집배원 증원과 함께 분류작업과 배송작업을 이원화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국택배노조 광주지부 김인봉 사무처장은 “장시간 노동의 원흉인 분류 작업과 배송 작업을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지금처럼 분류작업과 배송 업무를 동시에 진행한다면 인력을 증원한다고 해도 상황이 개선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의해 택배운전 종사자와 택배분류 종사자를 구분하는 내용을 담은 생활물류서비스법 제정안이 발의됐지만, 20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 폐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곽지혜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