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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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계속될 것 같던 여름이 며칠 사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독일 시인 릴케는 ‘주여 때가 왔습니다/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지난 여름은 참으로 길고 지난했다. 정치권은 민생을 외면한 정쟁으로 국민을 외면했고 폭염과 장마도 서민의 삶을 옥죄었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이나 미국과의 외교전, 평화를 위한 북한과의 협상도 부침을 거듭했다. 나라안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던 조국 법무장관 임명을 놓고 벌인 찬반 논란도 뜨거웠다.

하지만 ‘차면 기우는 게 자연의 이치’인 것일까.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물러가면서 어느덧 우리 곁에는 가을이 다가왔다. 지난 8일은 첫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였다. 24절기 가운데 15번째에 든 백로는 밤 기온이 내려가고 풀잎에 이슬이 맺혀 완연한 가을이 시작된다는 절기다. 당장 며칠 전부터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온이 느껴지고 한낮 햇살도 눈에 띄게 온순해졌다. 옛 사람들도 백로를 여름의 끝이면서 완연한 가을의 시작으로 여겼다.

이 백로에서 추석까지의 열흘 남짓한 시기가 포도순절(葡萄旬節)이다. 적당한 햇살을 받아 포도에 물이 오르듯 온갖 과일과 곡식이 무르익는 풍성한 시기라는 뜻이다. 고된 농삿일에서 벗어나 잠시 쉬면서 몸을 추스리라는 배려의 의미도 들어있다. 옛날 어른들은 이 무렵 보내는 안부편지에 꼭 포도순절이라는 말을 넣었다. 추석이 오기 전 산골 아낙네들이 1년에 한 번 친정 나들이를 하는 것도 이맘때였다. 모든 게 부족했지만 무언가를 나누고, 서로가 조금씩 넉넉해지는 시기도 백로에서 추석까지 포도순절의 미덕이었다.

백로를 지나 어느덧 포도순절이 찾아왔다. 지난주 13호 태풍 ‘링링’이 예기치않은 생채기를 곳곳에 남긴데 이어 제법 많은 비까지 내리고 있지만 그래도 이 시기는 1년 중 가장 좋은 계절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했던 추석도 눈 앞이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장관을 공식 임명하면서 시끄럽던 국내·외 현안도 풀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1년중 가장 좋다는 포도순절, 누구에게나 소소한 어려움은 있겠지만 행복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주위에 가득한 가을의 풍요를 즐길 일이다. 전남취재본부 부국장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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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