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장애인 등 ‘1인 가구 보호자지정 제도’ 시급

북구 김영순 의원, 지난 2일 북구의회 본회의서 발언
가족관계가 불분명한 경우 정리·상속 등 수습 어려워
유언 효력 갖는 문서 작성으로 후견인 지정 가능해야

741
광주 북구에 위치한 두암주공 4단지 아파트. 두암주공은 전체 세대수 대비 공공영구임대주택의 비율이 광주 지역에서 제일 높으며, 전국에서 두번째로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오선우 기자 sunwoo.oh@jnilbo.com
광주 북구에 위치한 두암주공 4단지 아파트. 두암주공은 전체 세대수 대비 공공영구임대주택의 비율이 광주 지역에서 제일 높으며, 전국에서 두번째로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오선우 기자 sunwoo.oh@jnilbo.com

“있는 지도 몰랐던 이복 누나들에게 연락해 상속 관련 문서를 부탁하고, 수십 가지나 되는 서류를 준비하는 게 너무 지치고 힘들어 다 포기해버리고 싶었습니다.”

얼마 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20대 초반 남성 A씨는 사후 정리를 하던 중 곤란한 지경에 처했다.

그의 아버지는 과거 한 차례 이혼했으며, 재혼해 낳은 아들이 A씨였다.

그러던 와중에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A씨는 빚까지 져가며 장례를 치르는 등 뒷수습에 나섰으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아버지가 살던 공공임대주택 보증금 환수가 불가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A씨도 몰랐던 이복 누나가 2명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행법에 따르면 A씨가 상속·정리 등 사후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누나들 명의의 권리의무승계 문서가 필요하다.

아버지와 절연한 지 수십 년이 지나 조문도 오지 않았던 누나들이 서류를 준비해줄 리도 만무하거니와, 서류만 십수 가지에 요건과 내용도 복잡해 보증금 환수가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겨우 20대 초반인 A씨는 수백만원의 초상빚 무게에 눌린 채, 보증금 250만원을 돌려받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사망으로 인한 권리의무승계에 필요한 각종 서류들. 20여가지에 이르는 데다 유의 사항도 까다로워 상속을 포기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오선우 기자 sunwoo.oh@jnilbo.com
사망으로 인한 권리의무승계에 필요한 각종 서류들. 20여가지에 이르는 데다 유의 사항도 까다로워 상속을 포기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오선우 기자 sunwoo.oh@jnilbo.com

광주에서 기초생활수급자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신청할 수 있는 공공영구임대주택제도는 보증금 250만원에 월세와 관리비 포함해 매달 13~14만원을 내고 아파트에서 살 수 있는 제도다.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해 1989년 최초로 적용된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 이들은 장애인·노인 등 1인 가구가 대부분으로, 현재 광주 지역에서 6500세대가 임대주택에서 거주하고 있다.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路)가 실시한 ‘영구임대아파트 입주자 현황과 실태조사’ 연구용역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전체 세대수 대비 공공영구임대주택의 비율은 각화주공이 81%, 두암주공이 79%에 달한다.

특히 북구에 있는 두암동 주공아파트는 3단지를 제외한 1·2·4단지가 전부 공공영구임대주택으로 활용되고 있다.

9일 LH 두암주공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A씨의 아버지도 이곳에서 거주한 사례이며 이와 유사한 경우가 매년 수건씩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법적 후견인이 지정되지 않은 무연고 독거노인들이 사망할 경우, 상속과 공공임대주택 보증금 회수 등 사후 정리가 상속법과 LH 규정에만 의존된 채 복잡한 절차로 인해 불필요한 행정력이 낭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수는 737만2160명으로 이 중 1인 가구는 140만5085명(19.1%)으로 비중이 매년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가 일반화된 지금, 가족 형태 역시 사실혼·동거 등 법적 테두리 안에 들지 않는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지만 관련 법령은 수십 년째 결혼과 대가족이 중심이던 시절에 머물러 있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에 법령의 까다로운 절차를 충족하지 못해 뒷수습을 포기하는 유가족도 수두룩하다.

사망으로 인한 권리의무승계에 필요한 서류만 십수 가지에 이르며, 각각의 문서에 따른 조건 또한 복잡해 준비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고인의 유품이 처리되지 않거나 보증금이 환수되지 않으면, 그만큼 영구임대아파트 반환이 늦어지게 되고 다음 대기자 입주가 지연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

보증금이 환수되지 않을 경우 LH 기타예수금으로 5년간 보관되며, 이 기간 동안 환수되지 않으면 법원에 공탁된다. 이후에도 환수되지 않으면 국가로 귀속되는데, 멀쩡한 돈을 찾아가지 못해 증발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에 지난 2일 제256회 광주 북구의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김영순 의원이 제안한 ‘1인 가구 보호자지정 제도’가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 제도는 가족관계가 불분명한 대상자가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하게 될 경우, 사전에 자신을 돌봐주는 이를 보호자로 지정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행정관청과 LH가 합리적이면서도 간편한 양식의 문서를 만들어 입주자가 계약서와 함께 작성하도록 해서 유품·세대 정리와 보증금 반환 등 복잡한 사후 절차를 지정된 보호자가 순조롭게 대신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이는 법적으로도 생전에 남긴 유언과 동일한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으며, ‘치매어르신을 위한 공공후견인 제도’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김 의원은 “가족 형태가 복잡·다양해진 요즘 상속·사후 절차를 해결하지 못하는 구민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보고 이번 제도를 생각하게 됐다. 북구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역에서 활용 가능한 제도”라면서 “낡은 법령을 변화된 사회 흐름에 맞게 뜯어고쳐, 사랑하는 가족의 뒷수습은 물론 보증금 환수 등 당연한 권리 주장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광주 북구의회 김영순 의원. 광주 북구의회 제공 편집에디터
광주 북구의회 김영순 의원. 광주 북구의회 제공 편집에디터
오선우 기자 sunwoo.oh@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