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교육개혁의 적기를 놓치지 말자

하정호 광산구청 교육협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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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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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속담이 있다. 보통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나쁜 버릇은 어릴 적에 고쳐야 한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부당한 일을 용인하면 더 큰 화를 당하게 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한 톨의 씨앗이 풍성한 결실로 이어지기까지 좋은 땅과 비와 바람, 따스한 햇볕이 필요한 것처럼, 사회문제도 한두 사람의 잘못만으로 생기는 게 아니다. 처벌받는 것은 한두 사람일지라도 결국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사람들의 묵인과 방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모 여학교의 성적 조작 사건에 이어 광주에서 또 다시 시험지 유출 사건이 벌어졌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로 동아리를 구성한 후 수학교사가 그 동아리 학생들에게만 시험문제를 유출했다는 것이다. 교육청은 감사 결과 “시험문제 유출 외에도 최상위권 학생들에 대한 특별관리와 대학입시 중심의 부당한 교육과정 운영, 대입 학교장추천전형 부실 등 그동안 제기됐던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학교는 “교육청은 교육과정 불일치가 고려고만의 문제가 아니라 광주 전체의 문제임을 알면서도 징계했다”고 반발하며 ‘근조 광주교육 사망’이라고 쓴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2016년에 한 사립여고가 학생들의 성적과 생활기록부를 수년간 조작해 온 것이 발각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그 학교가 ‘재수 없어 걸렸을 뿐’이라고 비아냥했다. 정말 광주 전체가 이 지경이라면 광주교육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 교육청인지, 일선 학교인지, 우리 모두의 잘못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시교육청은 감사결과를 발표하며 “본 사안은 어느 한 교직원의 개인적인 일탈이 아니라 학교차원에서 최상위권 학생들의 이른바 명문대 진학을 위해 모든 교육활동과 평가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주면서 일반 학생들은 철저히 소외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고려고가 내건 현수막에는 “교육청이 실시한 교육만족도 최우수학교 고려고! 이것도 조작인가요?”라는 대목이 있다. 결국 일반 학생들은 철저히 소외시키면서 성적 우수자들만 따로 기숙사에 모아 특별관리를 해준 결과 ‘교육만족도 최우수학교’가 되었는데, 그런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교육청이 왜 이제 와서 자신들을 징계하는가 하는 항변이다. 그래서인가. 교육청이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감사결과도 넘기지 않고 추가 고발도 하지 않아 시민단체들이 제기한 불법 찬조금과 부정청탁, 금품수수 의혹을 수사하는 데 경찰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으로 되기까지는 관행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오랜 방관의 시간들이 있어야 한다. 내 자식도 언젠가는 잘난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이, 다수를 철저히 소외시키는 특권 교육을 용인해 왔다. 성적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다 보면 희망을 잃은 절대다수가 교실에서 잠들어가도, 그들을 깨울 수 있는 명분마저 잃게 된다. 그것이 나 하나만의 욕심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의 보루라면 그 성채를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암묵적 연대도 강고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왔다. 성관계를 대가로 여학생의 성적을 조작하고, 체육 특기자에 대한 체벌을 부모가 용인하고, 심지어 입시를 위해 부모가 성을 상납하는 것도 관행처럼 여겨진다. 이런 교육현장의 문제를 개선하려고 나서는 교사들이 오히려 ‘벌떡 교사’니 ‘진지충’이니 놀림을 당하다 명예퇴직으로 내몰리는 경우마저 늘어나고 있다.

바늘 도둑은 몰라도 소 도둑이라면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 드러난 문제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하고 우리 사회에서 용인되고 있는 부정의를 하나씩 개선해가야 한다. 여기서부터 개혁은 시작한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몫까지 짊어지며 고통 받는데 또 다른 이는 타인의 등에 올라타 쉽게 살아가는 사회가 더 이상 용인되기는 힘들 것이다. IMF 이후 우리에게 강요된 부정의와 불평등의 사회구조를 더 늦기 전에 바로잡아야 한다. 교육을 통해 기회의 문을 넓히고 청년들이 사회진입의 문턱에서 주저앉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사법 개혁과 기득권 철폐의 문턱에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자녀의 입시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청년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다 해도 커다란 변화의 문턱에서 다시 걸려 넘어지는 일은 없어야겠다. 분명 우리에게는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