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땅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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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땅끝들 편집에디터
남도의 땅끝들 편집에디터

수정문 밖 썩 나서, 고고천변 일륜홍 부상으 둥실 높이 떠, 양곡의 잦은 안개 월봉으로 돌고 돌아, 어장촌 개 짖고 회안봉 구름이 떴다. 노화는 눈 되고, 부평은 물에 둥실. 어룡은 잠자고 잘새 펄펄 날아든다. 동정여천에 파시추 금성추파가 여기라. 앞발로 벽파를 찍어 당겨 뒷발로 창랑을 탕탕. 요리저리 저리요리 앙금 둥실 높이 떠 동정, 사면 바라보니 지광은 칠백리요 파광은 천일색인데, 천외 무산 십이봉은 구름 밖으 가 멀고, 해외 소상의 일천리 눈앞에 경이로다. 오초는 어이허여 동남으로 벌였고, 건곤은 어이하야 일야으 둥실 떠, 남훈전 달 밝은듸 오현금도 끊어지고, 낙포로 둥둥 가는 저 배, 조각달 무관수는 초희왕의 원혼이요~.

단가, 가야금병창으로도 불린 판소리 고고천변(皐皐天邊)

담양사람 박동실의 애제자였던 광주사람 한애순 명창의 수궁가 중 ‘고고천변(皐皐天邊)’ 일부다. 브리태니커 판소리전집에 실려 있는 판본이다. 판소리 <수궁가(水宮歌)> 중에서 별주부가 토끼의 간을 구하려고 육지로 나가는데 눈앞에 펼쳐진 해상과 산천이 너무 아름다워 이를 노래로 읊은 대목이다. 별주부(鼈主簿)는 자라(거북이처럼 생긴 수생동물)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이름이다. <수궁가>를 <별주부전>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고천변일륜홍(皐皐天邊日輪紅)이란 문자 그대로 아침 해가 떠오를 때 동쪽 하늘의 환한 모습을 형상화한 조어다. 본래 판소리 수궁가의 대목이었지만 단가 혹은 가야금 병창 등으로 널리 불린 유행가다. 한자말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설이 우수하고 작창소리 또한 일품이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는 가장 특징적인 이본(異本)으로 이선유 창본을 꼽았다. 여기에는 해상풍경 전에 별주부가 행차를 차리는 모습과 각 고을 수령이 별주부의 행차를 두려워하는 모습들이 첨가되어 있다. 춘향가의 어사또 출현 대목을 연상하게 해준다. 신재효는 사설을 정리하면서 아름다운 명산(名山)을 열거하며 이에 얽힌 고사들을 풀어놓는다. 노래 제목을 <명산가>로 바꾼 이유일 것이다. 일명 판소리소설에서는 <고고천변>의 해상 풍경이 탈락되기도 한다. 처한 상황에 따라 여러 이본들을 만들어냈고 노래 풍경의 변개를 초래했다는 뜻이다. 어쨌든 수궁에서 나온 별주부는 해변 명산을 두루두루 유람하면서 토끼가 사는 육지에 도착한다.

별주부가 토끼 간을 찾아 당도한 포구는 어디일까?

질문 자체가 우습다. 창작판소리에서 읊은 가상의 공간을 현실공간에 비정하는 물음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 판소리 수궁가 고고천변이 읊은 풍경에 가장 흡사한 현실공간은 어디일까라고. 이 노래를 지어 부른 이가 속한 문화권이 있을 것이고 형용의 대상이었을 해변이 있었을 것이다. 가상의 공간일지라도 현실에 빗대어 해석하고픈 욕망이 유효한 이유 아니겠는가. 사설을 다 소개할 수 없지만 대강의 내용들이 이렇다. 올려다보니 천개의 봉우리가 겹겹이 쌓여있는 산이고 내려다보니 넓은 모래해변이 펼쳐진다. 구불구불 틀어진 해송들이 바위를 등지고 몰려있다. 계곡의 물들이 시원하게 흘러내린다. 폭포수는 병풍바위자락으로 흘러내려 마치 산이 울렁거리는 듯하다. 풍경은 이어진다. “어선은 돌아들고 백구는 분비 갈마구 해오리 목파리 원앙새 강산 두루미 수많은 떼 고니 소천자 기관허든 만수 문전의 풍년새 양양창파 점점 사랑 허다 원앙새 칠월칠석 은하수 다리 놓던 오작이 목파리 해오리 노수 진경새 따옥따옥 요리조리 날아들 제, 또 한 경개를 바라봐.” 어선들이 그림처럼 돌아들고 갈매기는 물론 수많은 새들 날아든다. 중국과 우리 고사를 넘나들며 형용한 해변은 사실 그 어디에도 없는 공간이다. 반대로 그 어디에도 있는 공간이다. 자라가 수궁에서 살다가 육지로 건너온다는 문학적 장치는 문자 그대로 경관에 대한 메타포(은유)일 뿐이다. 인문학적 상상력, 오늘날의 용어를 빌려 말하면 해변에 대한 스토리텔링인 셈이다. 아하, 알겠다. 수궁의 별주부가 처음 당도한 곳은 땅이 시작하는 첫 자리임을. 문자로 풀어 말하면 토시(土始)정도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지명이 있기나 할까?

토말(土末)은 땅의 끝일까 땅의 시작일까

수궁의 별주부가 처음 도착했던 땅의 시작, 그곳을 어디로 상상해볼 수 있을까? 지명 중에 땅의 시작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내륙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관점을 갖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바다로 나가는 땅의 기점, 포구 혹은 항구가 연상된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땅의 끝자락, 고고천변의 노랫말처럼 별주부가 내륙에 도착하는 곳, 어선 돌아들어 갈매기 날아다니는 그곳 말이다. 뒤집어 봐도 그곳은 역시 포구를 포함한 땅끝이다. 바다에서 내륙을 보건 내륙에서 바다를 보건 겹치는 접점이기 때문이다. 땅끝으로 호명되는 곳은 ‘곶’이란 이름을 가졌다. ‘~곶’, ‘~구지’, ‘~구미’, ‘~기미’, ‘~말’ 등이 그것이다. 모두 곶(串)에서 파생된 이름들이다. 국어사전에서는 ‘바다 쪽으로 부리모양으로 뾰족하게 뻗은 육지’라고 설명한다. 지역별로 부르는 이름이 조금씩 다르고 특히 한자말로 바뀌면서 끝이라는 뜻의 ‘~말(末)’ 등으로 호명된다. 포항의 호미곶, 황해의 장산곶, 해남의 땅끝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지명총람 등을 살피면 땅끝과 관련된 지명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특히 해안을 끼고 있는 고을이나 섬에서는 각각의 땅끝이 있기 때문이다. 뱃길이 중요한 곳에서는 이곳에 등대를 세우기도 하고,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서는 일출과 일몰에 대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두기도 한다. 지금은 북한 땅이어서 가볼 수 없지만 개성, 의주 등지에도 땅끝으로 호명되는 지역들이 많다. 비유컨대 수궁의 별주부는 이곳 땅끝을 통해서 내륙의 토끼를 찾아 나왔을 것이다.

별주부의 시선, 땅끝에서 시작을 말하다

토끼에게는 수궁으로 가는 땅끝이었을 기점이 별주부에게는 땅의 시작이었다. 여기서 토생원의 시각과 별주부의 시각을 대별해보는 안목이 생긴다. 별주부의 시선대로라면 바다에서 내륙을 보니 응당 땅의 시작일 수밖에 없었던 것. 해양에서 내륙을 조망하는 관점을 별주부를 통해서 읽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해남군수실에 가면 한해륙(한반도)의 지도를 거꾸로 걸어두었더라. 왜일까? 그간의 토생원적 시각을 불식하고 별주부식 시각을 강조하는 뜻 아니겠는가? 굳이 내륙적인 관점과 해양적인 관점으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또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일종의 패러다임의 변화라고나 할까. 해남땅끝마 전망대에 왔다가 낙서를 남기고 간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전체 내용을 분석해보지 않았지만, 바닥을 치고 오르는 희망의 메시지들이 주류다. 연애에 실패하고 온 사람, 직업을 잃고 좌절하여 온 사람, 질병을 얻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온 사람, 천차만별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땅끝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컨대 땅끝은 내 삶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것 아닐까.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 막바지에 다다라 더 이상 내달릴 수 없는 사람들이, 그저 벼랑에서 뛰어내릴 요량으로 찾는 곳 아니었을까? 하지만 땅끝전망대에 남긴 낙서들은 하나같이 극복을 말하고 있다. 예컨대 땅끝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이는 아직 한명도 없다. 이유가 뭘까? 인생의 바닥을 치니, 이전의 것들 모두 내던지고 가장 마지막 순간에 서게 되니 비로소 다른 세상이 보였기 때문 아닐까? 내가 지난 칼럼에서 구구절절 아리랑고개를 말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질병과 환란의 아리랑고개를 넘어 또 한 번의 도약을 기약했기 때문이다. 포항의 호미곶도 진도의 세방낙조도 모두 그런 곳일 것이다. 땅끝이지만 땅의 시작인 곳, 바다의 끝이지만 바다의 시작인 곳, 아리랑 고개를 넘어 마지막에 이른 끝자락, 행여 인생사 갖가지 일로 쓰러진 이 있다면, 땅 끝에 가보기를 권면한다. 해가 뜨고 지는 땅끝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고, 온전히 다 내려놓은 사람들, 절망에서 희망을 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남도인문학팁

세계의 이름난 땅끝

박상일 대표가 조사했던 자료를 중심으로 세계의 이름난 땅끝들을 열거해본다. 이들 땅끝은 대부분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긴 하지만, 땅끝에서 삶을 다시 상상하는 인문학적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벤치마킹이 필요한 곳들이다.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야는 1520년 마젤란에 의해 ‘불의 당’이라 이름 붙여진 곳으로 남극 가는 크루즈항이다. 인도 깐야꾸마라는 마하트마 간디 등 민족지도자 유해가 뿌려진 곳으로 인도의 대표적인 순례지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은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으로서 유럽과 인도의 무역 중계지이기도 하다. 포르투칼 까보다로까 호카곶은 시인 케모잉스가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라 쓴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이다. 미국 플로리다주 키이웨스트는 쿠바가 건너보이는 곳으로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의 현장이기도 하다. 노르웨이 노드캅은 지구 최북단이자 유라시아 북쪽 땅끝이다. 칠레 쿤타아레나스는 마젤란에 의해 발견된 곳으로 팽귄 서식지다. 영국 랜드앤드는 한해륙과 흡사한 모양의 남단 끝자락에 있다. 베트남 하티엔은 은둔의 상징인 동굴사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일본 가고시마 사츠마는 법성포처럼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곳으로 유명하다. 말레이시아 탄중피아이는 아시아 대륙의 최남단이다. 스웨덴 피니스테레곶은 유라시아 서쪽 끝으로 산디아고 순례길의 종점이다. 덴마크 스카겐은 율란드 반도 북쪽 끝이다. 스페인 피스테라는 유럽과 아프리를 잇는 관문이기도 하다. 그리스 수리온곶은 포세이돈 신전이 있는 곳이다. 터키 카시는 지중해의 사파이어란 별명이 있는 휴양지다. 프랑스 캅씨장은 여름 미술제로 유명한 곳인데 작은 마을들이 모두 미술전시장으로 활용된다. 모르코 탕헤르는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해협에 있다. 싱가폴 센토시는 유라시아 대륙 남쪽끝이라 할 수 있다. 대만 컨딩은 대만의 대표적 휴양지로 이름나 있다. 멕시코 로스카보스는 멕시코의 대표적인 휴양지로서 G-20 정상회의를 한 곳이기도 하다. 쿠바 푼타데미이시는 대서양과 카리브해가 만나는 곳이다. 러시아 데즈네프곶은 유라시아 동쪽끝자락에 있다. 러시아 첼류스킨곶은 유라시아 북쪽 끝에 있다. 뉴질랜드 케이프데잉가는 북섬의 최북단에 있다. 이탈리아의 레우카, 독일의 힙리츠, 호주의 바이런 베이 등 무수한 땅끝들이 있다. 이들 땅끝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전하고자 한다. 내가 세운 세계의 땅끝 순례에 동참할 이들을 기다린다.

진도군 세방낙조(이윤선 촬영) 편집에디터
진도군 세방낙조(이윤선 촬영) 편집에디터
진도군 지산면 땅끝마을 편집에디터
진도군 지산면 땅끝마을 편집에디터
해남 땅끝 '맴섬 일출'. 해남군 제공 편집에디터
해남 땅끝 '맴섬 일출'. 해남군 제공 편집에디터
해남 땅끝마을 전경. 해남군 제공 편집에디터
해남 땅끝마을 전경. 해남군 제공 편집에디터
해남군 땅끝마을 전망대 모노레일 안의 낙서들-박상일 촬영 편집에디터
해남군 땅끝마을 전망대 모노레일 안의 낙서들-박상일 촬영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