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욱의 도자이야기 >고려난파선서 해남 청자의 멋과 가치를 발견하다

한성욱(민족문화유산연구원 원장)
박예리(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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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군산 십이동파선 전시 모습-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편집에디터
01-군산 십이동파선 전시 모습-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편집에디터

바람과 흙, 물, 불과 장인들의 정성이 빚은 해남 청자와 이를 운반하였던 바닷길을 소개하는 “고려난파선, 해남청자를 품다”(2019.7.9.-10.13) 특별전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천 년 전 해남지역에서 생산된 청자의 생산에서 바닷길 운송과 유통, 그리고 다양한 소비 양상까지 종합적으로 소개한 첫 전시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특히, 지난 40여 년간 바다와 육지에서 이뤄진 해남 청자에 대한 발굴조사와 연구 성과를 일반 관람객들에게 공유하고 있다. 그동안 강진으로 대표되는 비색청자의 빛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던 해남 청자의 아름다운 멋과 가치, 역사적 의의 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특별전은 ▲ 1부 서남해 바닷길, 해남청자를 품은 고려난파선, ▲ 2부 해남청자의 바닷길 유통, ▲ 3부 고려의 소박한 그릇, 해남청자, ▲ 4부 고려 사람들의 삶에 스며든 해남청자 등 4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1부와 2부에서는 군산 십이동파선과 완도선, 태안 마도 1호선 등을 소개하고, 이 세 척의 고려 난파선에서 출수된 해남 청자 2,500여 점을 선보인다. 이어 3부와 4부에서는 해남지역을 비롯한 시흥과 용인, 인천, 부산 지역의 청자 요장 출토품, 그리고 고려 시대 생활 유적과 무덤, 제사 유적 등 생산지와 소비지 유적에서 출토된 해남 유형의 청자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예로부터 서남해 바닷길은 육로보다 교통과 화물 운송이 편리하고 빨리 이동할 수 있어 많은 선박들이 항해하였다. 특히,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지방에서 거둬들인 세곡과 특산품, 수공예품 등을 조운선(漕運船)으로 운송하여 국가 재정의 중요한 기반으로 삼았다. 그러나 바닷길 항해는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다는 빠른 조류와 안개, 암초, 풍랑 등 해양환경과 기상악화 등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이로 인한 불의의 해난사고로 많은 선박들이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날 그 흔적들은 바다 속에 고스란히 남아 마치 타임캡슐처럼 침몰 당시의 생생한 역사와 문화를 전해준다.

서남해 바닷길에서는 1983년부터 지난해까지 완도 어두리와 군산 십이동파도, 태안 마도, 진도 명량해협, 영광 낙월도 해역 등에서 해남 청자 4만 여점과 이를 선적한 완도선과 십이동파도선, 태안 마도 1호선 등 난파선 3척이 발굴조사되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수중 발굴조사 이후 15년 동안의 보존 복원 과정을 마치고 공개되는 해남 청자 운반선 “군산 십이동파도선”(11~12세기)을 비롯하여 “완도선”(11~12세기)의 실물을 직접 만날 수 있다.

13세기 고려 난파선 “태안 마도 1호선”에서는 청자 320여 점과 곡물류, 젓갈, 지역 특산품 등이 실려 있었다. 수 천점에서 수 만점이 선적된 다른 난파선에 비하면 청자 수량은 매우 적다. 그러나, 마도 1호선에서는 청자의 제작 지역과 시기가 기록된 화물표(목간)가 발견되었다. 제작 시기는 1207년(丁卯)~1208년(戊辰)년, 그리고 회진현(현재 나주시 다시면 일대)과 수령현(현재 장흥군 장흥읍 일대) 등과 함께 죽산현(竹山縣)이 적힌 목간이 함께 확인되었다. 죽산현은 오늘날 진산리 청자 요장이 위치한 해남군 산이면이 속한 지역의 옛 이름이다. 따라서 마도 1호선의 발견은 적어도 13세기 초까지 해남지역에서 청자를 생산하였다는 것을 입증하여 주고 있다.

고려 난파선의 청자는 대부분 3∼4단으로 적재되어 있었다. 포장 재료는 소나무와 새끼줄, 볏짚, 갈대 등이다. 소나무는 원통형 나뭇가지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거칠게 깎아 도자기 꾸러미의 지지대로 이용하였다. 군산 십이동파도선의 소나무 지지대는 양쪽 끝에 홈이 있는데, 새끼줄이 단단하게 엮이도록 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포장 방법은 그릇의 형태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일상생활용 그릇은 꾸러미를 엮어 선적하였는데, 접시는 50∼60개, 대접은 30∼40개 단위로 포개었다. 도자기 꾸러미 사이에는 짚이나 갈대를 넣고 종과 횡 단위로 3∼4단씩 쌓아올렸다. 청자유병은 나무막대를 가운데 두고, 병 2개씩 목 부분을 교차하여 묶어 포장하였다.

우리나라 최남단 땅끝 ‘해남’은 서해와 남해로 바닷길이 열려있는 천혜의 땅이다. 고려 시대에는 강진과 버금가는 많은 청자 가마가 운영되었던 최대 규모의 청자 생산지였으며, 10세기부터 13세기까지 명맥을 유지한 고려의 대표적 청자 생산지로 생산품은 고려 각지에 유통되었다. 소박한 멋의 녹갈색 빛을 머금은 해남 생산의 그릇들은 당시 고려에서 크게 유행하였으며, 바닷길을 통해 각지의 소비지로 유통되었다. 해남 청자 요장에서는 1992년과 2017~2018년에 이뤄진 발굴조사로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역사적 문화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사적 제310호(해남 진산리 청자요지)와 전라남도 기념물 제220호(해남 화원면 청자요지)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하고 있다.

해남지역의 초기 청자는 한국식 ‘해무리굽 청자완’을 중심으로 음다문화(飮茶文化)와 일상생활에 필요한 그릇들이 주로 생산되었다. 그러다가 11세기 후반에 이르면서 종류도 다양해지고 형태와 색상, 무늬, 제작 기법 등이 고려만의 독창적인 기술로 새롭게 변화하고 발전하였다. 12∼13세기 청자는 종류와 장식 기법, 무늬가 더욱 다양해져 고려 문화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뒷받침하였다. 해남 청자는 고려 청자의 다양한 색 중에서 녹갈색을 띠는 특징이 있어 녹청자로도 불린다. 고려 장인들은 철분이 많은 바탕흙(胎土) 위에 나무재로 만든 잿물 유약(회유灰釉)을 발라 구워, 자연스러운 흙빛과 녹갈색이 감도는 독특한 색을 만들어냈다. 해남 청자에도 색깔 있는 안료를 사용하여 장식하였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철화기법이다. 해남의 철화청자는 고려 사람들의 미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강진의 고품격 비색 청자와 화려한 상감청자와 달리 녹갈색이나 황갈색을 띠지만, 철화무늬의 자유로운 선과 강렬한 색상의 대비는 해남 청자만의 색체와 매력을 대표한다. 철화청자는 철사(鐵砂) 안료로 무늬를 그린 것으로 11세기 중후반부터 12세기 무렵에 크게 유행하였다. 주로 활짝 핀 모란과 국화, 풀잎, 넝쿨무늬 등을 자유롭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여 녹갈색 청자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해남청자는 단순한 그릇을 넘어 고려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담아내고 있다. 식생활 그릇에서부터 차와 술, 제사, 종교, 의례, 그리고 무덤의 부장품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적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흔적은 월출산 제사유적과 영암 성풍사지, 장흥 대리 생활유적, 장흥 신월리 무덤 등에서 출토되었다. 그리고 1208년 고려 수도 개경으로 항해하던 ‘태안 마도 1호선’에는 해남산의 청자 정병과 화분, 항아리 등이 실려 있었다. 해남청자의 소비 지역과 계층은 매우 폭넓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출토품 가운데 가장 주목 받는 유물 가운데 하나인 장고는 두 개의 울림통이 달린 타악기로, 주로 한 면은 손으로 치고 한 면은 채로 친다. 고려시대에는 아악과 당앙, 향악 등에서 중요한 악기로 사용되었다. 고려 초기부터 청자와 백자로 만들어졌으며, 다른 기종과 달리 장고 전체 면에 무늬를 가득 장식하였다. 특히, 청자 장고는 해남 진산리와 신덕리를 비롯하여 초기 청자를 생산한 경기 시흥 방산동과 용인 서리, 중기 청자를 생산한 강진과 경기도 여주 부평리, 경상도 부산 녹산동 요장까지 폭 넓게 확인되었다. 서남해 해저유적에서는 완도 어두리와 진도 명량해협, 태안 마도 등에서 여러 점 출수되었다. 영암 월출산과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 남원 실상사와 경주 불국사, 장흥 대리 생활유적 등에서도 출토되어 고려시대 다양한 의례에서 장고를 활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편, 해남은 강진, 부안과 함께 고려시대 대표적인 청자 요장으로 최근 이들 지역에서는 2022년 열리는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에 “한국의 청자 도요지”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해남 청자’를 주제로 특별전이 개최됨에 따라, 1994년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등록된 이후 답보 상태에 있던 청자 도요지 유네스크 세계유산 등재 범위가 해남 청자까지 확대되어 전문가들과 지역 주민들의 관심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해남과 강진, 부안이 함께 추진하고 있는 “한국의 청자 요지”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은 청자의 아름다움과 이를 생산하였던 요장을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관리하는데 매우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으리라 사료된다. 또한, 이를 운반하였던 바닷길을 함께 조명할 수 있어 학문적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생각된다. 세계문화유산은 국제연합(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의 세계유산협약에 의해 규정된 문화와 자연, 기록, 무형, 복합 유산 가운데 하나로 선조로부터 물려받아 후손들에게 넘겨주어야 할 우리들의 삶과 영감의 원천을 간직한 소중한 문화자원을 말한다. 이들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함과 다양성을 지니고 있으며, 소재지와 상관없이 역사와 예술, 학문적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세계유산의 등재는 총회에서 선출한 위원국으로 구성된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전문기구의 평가를 근거로 결정하지만, 정부간 위원회라는 특성상 국가별 외교력과 정치력에 의해 지정되기도 한다. 이는 균형 잡힌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기존의 제한된 개념을 넘어 자연과 인간의 공존, 문명간의 조화와 교류, 인류의 창의성이 담긴 유산들의 가치를 폭넓게 인정하기 위해서 이다. 한편, 새로운 유산을 발굴하고 기존 유산의 충실한 보존을 위해 회원국들의 신청 수량을 제한하고 있으며, 검토하는 전체 수량 역시 한정하고 있다. 또한, 신청을 위해서는 회원국들이 작성한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의 절차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등재 이후에는 보존 상태와 보호 활동 등을 세계유산위원회에 정기적으로 보고하여야 하며, 이를 토대로 유적들의 상태를 평가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조치를 결정한다.

고려는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청자를 생산한 세계 도자사에서 기념비적 업적을 이루었으며, 비색의 완성과 상감청자의 독보적 발전을 이루어 인류 도자문화을 풍성하게 하였다. 이처럼 세계 도자사의 기린아였던 고려청자의 대표적 생산지인 해남과 강진, 부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데 손색이 없다고 생각된다. 이런 이유로 우리 정부는 ‘강진 고려청자 요지(사적 제68호)’를 세계문화유산 신청에 앞서 반드시 필요한 절차인 잠정목록 등재를 1994년 완료하였다. 그러나 강진만의 등재보다는 해남과 부안을 함께 등재하는 것이 고려 청자문화의 우수성과 다양성, 독창성 등을 더욱 뚜렷하게 부각시킬 수 있다는 강진군의 판단으로 세 군이 함께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문화유산의 등재는 문화 자원적 효과가 엄청나 고려 청자 요장을 세계적 명소로 알려 지역 발전에 기폭제가 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가을은 알찬 결실을 맺는 풍요의 계절이며 사람들이 활동하기에 좋은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조건은 사람들로 하여금 문화적 향유를 만끽할 수 있도록 재촉하여 가을에는 특히 많은 문화 행사가 집중되어 문화의 계절로도 불린다. 문화의 계절, 그리고 다가오는 추석 연휴에 가족과 함께 조상의 얼이 담겨 있는 “고려난파선, 해남청자를 품다”를 관람하시고 “한국의 청자 요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응원하여 주었으면 한다.

02-해남 청자 전시 모습-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편집에디터
02-해남 청자 전시 모습-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편집에디터
03-완도선 출수 청자철화매병-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편집에디터
03-완도선 출수 청자철화매병-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편집에디터
04-완도선 출수 청자철화장고-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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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태안 마도 1호선 출수 청자-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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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청자 포장 꾸러미 재현-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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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해남 신덕리 20호 요장 흑유병-민족문화유산연구원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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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해남 진산리 17호 요장 출토품-목포대학교박물관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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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해남 진산리 74호 요장 출토 청자와 흑자-민족문화유산연구원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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