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영의 그림 큐레이션> ‘달’, 신비하고도 상서롭게.

김홍도 (1745~1806년 이후), 성근 숲에 떠오른 밝은 달.
레오니드 티쉬코프 Leonid Tishkov (러시아, 1953~ ), 달과 함께하는 여행.
앙리 루소 Henri Rousseau (프랑스, 1844-1910), 밤의 보름달, 따스함 한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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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신비롭고 상서로운 밤의 빛.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선선함이 느껴지면, 밤하늘도 조금씩 밝아져가는 듯하다. 옛날 옛적 토끼는 정말 방아를 찧었을까. 추석을 기다리는 맘이 밤하늘 달처럼 점점 부풀어 오르던 어린 시절, 달토끼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안겨다 준 주인공이었다. 뉴스에서 달 탐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도, 달에 대한 환상은 쉬이 접어버리기 아쉬웠다. 어린 시절 순수한 마음에 대한 미련이리라. 달은 우리 모두에게 그런 존재가 아닐까. 달토끼는 커녕 돌덩이만 있는 게 사실이래도, 달은 늘 달이다. 신비롭고도 상서롭고, 또 낭만적인 무언가. 저 멀리 서양에선 보름달을 음산하게 본다 해도, 우리에겐 여전히 ‘휘영청 달 밝은 밤…’이란 넉넉한 풍류가 먼저이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려는 즈음, ‘달빛’을 담은 작품을 보며 순수의 마음을 다시 상기시켜보는 건 어떨까.

단원 김홍도, <소림명월도(疏林明月圖)>, 성근 숲에 떠오른 밝은 달.

나뭇잎이 지고 마른 가지가 심드렁하게 뻗어 있다. 아래 잔가지들엔 아직 무성한 잎들이 남아있건만, 그래도 앙상한 가지들에 눈길이 박힌다. 겹겹의 가지 너머 둥근 달 때문이런가. 주위로 옅은 어둠이 깔리고 휘영청 밝은 달이 환하다. 성근 숲에 떠오른 밝은 달에 가슴 한 켠 알싸하다. 그림을 그린 단원의 마음인지, 그림을 보는 우리의 마음인지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고적감은 화면 전체를 맴돈다. <소림명월도>, ‘성근 숲에 밝은 달이 떠오르는 그림’이다. 김홍도가 쉰 두 살이 되던 해 그린 것이다. 쉰 한 살, 단원은 모든 관직에서 내려왔다. 벼슬도 권세도 저 멀리 사라졌고, 오직 붓을 쥔 손만 힘이 남았다. 가을도 아닌 봄날 단원은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그려냈다. 이리도 애절하게 말이다. 환한 봄날 어찌 이렇게 가을이 오롯이 담겨질 수 있었을까. 권세를 내려놓은 앙상한 마음이었을 터, 그래도 그림이 있었기에 성근 숲이라도 환한 달과 함께일 수 있었으리라. 서늘한 바람이 일어도 휘영청 밝은 달빛이 있기에, 우리 삶도 잘 버텨갈 수 있다고 말을 건네는 듯하다.

단원 김홍도 조선 1796, 종이에 수묵 담채, 26.7x31.6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보물 제 782호. 편집에디터
단원 김홍도 조선 1796, 종이에 수묵 담채, 26.7×31.6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보물 제 782호. 편집에디터

레오니드 티쉬코프, , 달과 함께하는 여행.

달과 함께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사진을 남기는 작가 레오니트 티쉬코프. 그에게 달은 가장 친근한 친구가 아닐까. 러시아인인 작가는 모스크바의 한 호수에서 오래된 소나무를 보고 마그리트의 작품을 떠올렸다. 곧장 달 모형을 제작하여 소나무 위에 올려 두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때부터 달과 작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달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고, 에펠탑 앞에서 사진도 찍고, 함께 잠이 들기도 한다.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달은 인류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선물”이란 작가의 말처럼 사진 속 달은 움츠러든 마음을 환하게 녹인다. ‘시’에서 영감을 받고 ‘달’과 함께 여행하며 사람들 마음에 달빛을 비추는 작가. 덕분에 달이 데려가주는 환상의 세계를 노닐고, 가깝고도 깊게 마음을 보듬는 진실한 친구가 늘 곁에 있는 듯하다.

“달은 서로 다른 나라와 문화권에서도 똑같이 볼 수 있어요. 달은 우리 인류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선물이에요. 늘 궤도를 잃지 않고 같은 주기로 기울기를 반복하며 우리 각자에게 삶의 교훈을 전해주죠.”-레오니드 티쉬코프.

Private Moon. 2003. Photo by Leonid Tishkov & Boris Bendikov (이미지 출처 ; https://www.leonidtishkov.com/Private-Moon) 편집에디터
Private Moon. 2003. Photo by Leonid Tishkov & Boris Bendikov (이미지 출처 ; https://www.leonidtishkov.com/Private-Moon) 편집에디터
Private Moon in Paris. Homage to Brassai. From Private Moon series, 2010. Photo by Leonid Tishkov & Tim Parchikov(이미지 출처 ; https://www.leonidtishkov.com/Private-Moon) 편집에디터
Private Moon in Paris. Homage to Brassai. From Private Moon series, 2010. Photo by Leonid Tishkov & Tim Parchikov(이미지 출처 ; https://www.leonidtishkov.com/Private-Moon) 편집에디터

앙리 루소 , 밤의 보름달, 따스함 한조각.

앙상한 나무들, 높은 나뭇가지 너머 구름이 걸렸고, 뒤로 보이는 들판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스산함을 뒤로 하고 다정하게 팔짱을 꼭 끼고 앞으로 걸어 나온 두 사람. 그리고 저 멀리 하늘 높이 떠 있는 밤의 보름달. 하얀 옷과 하얀 달은 그림 전체의 어둠을 가뿐하게 물리치고 따스함 한 조각 띄운다. 당시 미술계에서 외톨이같았던 루소, 세관원이었던 그는 정식으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고, 주변 작가들에게 인정받지도 못했다. 그에게 그림이란 하나의 이상향이었을 터, 그래서인지 현실을 넘어선 세계가 주로 그려졌다. 정글과 숲을 많이 그렸지만 루소는 그 곳을 가본 적이 없다. 말도 안되는 장면이란 조롱과 비난에도 꿋꿋하게 그림을 그려갔고,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완성했다. ‘사육제 저녁’의 그림에선 이탈리아 길거리 유랑극단에 등장하는 두 남녀와 환한 달이 함께 주인공이다. 인간은 누구나 유랑의 운명을 타고난 존재라고 조용히 이야기를 건넨다. 유랑의 운명일지라도 환한 달빛의 기운으로 사랑하는 이와 함께 가는 길이라면 외롭고도 쓸쓸한 이 밤의 기운을 물리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얀 보름달 한 조각에 동화 속 풍경이 마음에 일렁이고 따뜻한 기운이 스며든다.

앙리루소 1886 캔버스에 유채, 106.9&times;89.3cm, 필라델피아 미술관 편집에디터
앙리루소 1886 캔버스에 유채, 106.9&times;89.3cm, 필라델피아 미술관 편집에디터

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선물.

까만 밤, 도심의 아파트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달을 만나면 괜스레 기분이 좋다. 낮게 깔린 네온사인의 반짝이는 불빛과 달리 저 높은 곳에서 희미하지만 온 세상을 공평하게 비추는 달빛. 어린 시절 달토끼의 즐거운 상상은 사라졌지만, 까만 밤 하얗게 빛나는 달빛을 마주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레오니드 티쉬코프의 말처럼, 저 높이 늘 그 자리를 지키는 달빛은 정말 인류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선물이지 않은가. 여름의 끝자락, 조금씩 둥글게 차오르는 환한 달에 괜스레 소원 하나 슬쩍 빌고 싶은 날, 그림 속 환한 달빛이 건네는 소박한 마음을 맘껏 누려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