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남도인문학’에 대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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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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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인문학’을 주창하고 기획칼럼을 써온 지 4년이 지났다. 100회분을 중심으로 남도정신이란 무엇인가, 광주정신이란 무엇인가 등을 소결로 다뤘다. 왜 이름도 빛도 없는 민중들 그리고 여성의 이름을 표방했는지에 대해. 개펄과 남도산하의 풍광을 들어 이야기와 노래와 몸짓들을 이야기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기왕의 철학론이나 문학론을 고수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무엇이 나로 하여금 아래로부터의 사람 사랑에 대한 휴머니즘을 말하게 했는지를. 권위 있는 인물이나 치적 높은 작품들을 거론하기보다는 촌부 아버지의 구릿빛 피부와 흥그레타령 잘하셨던 어머니의 노래를 사례 삼았는지를 얘기해 왔다. 시대가 그렇게 진보해왔다고 진단했고 그 패러다임에 맞는 처방을 내린 셈이다. 처방의 요체를 보아하니 지위의 높음이나 권위의 서열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상호서사(인터랙티비티)의 시대, 촌사람들이 권위를 가질 수 있는 시대임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 준비 차, 한 포럼에서 발표했던 내 글이 한 소재가 될 수 있겠더라. 그때로부터 나는 얼마나 속절없이 흘러와버렸을까. 남도인문학의 지평은 얼마나 새롭게 구축되었던 것일까. 소크라테스의 변론까지야 되겠는가만 여기 작은 변명을 남겨, 도래할 남도인문학의 융성에 쏘시개 삼으려 한다.

안동이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는데

안동에서는 국학원이 설립되는 전후를 틈타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한국의 유교를 그 중심에 놓는 주장이다. 이에 비하면 남도지역은 한국의 무슨 수도를 표방할 수 있을까? 백가쟁명의 시대, 이론들은 많지만 합의된 것은 없는 듯하다. 아니 그보다 ‘수도’니 ‘중심’이니 하는 언설들이 주는 불편함이 크다. 예컨대 ‘광주문화중심도시’가 표방하는 지향이나 목표는 무엇일까? 노무현 정부 때 지방분권과 관련하여 창안된 이 슬로건들이 사실은 그 지향이나 목표보다 지역 이기주의를 은닉한 용어들이었다는 점에서 진중한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광주뿐만이 아니다. ‘호남학’ 혹은 ‘남도학’이란 용어 혹은 개념 사용에 대한 질문이 새삼 필요하다. 왜 ‘호남학’이어야 하고 ‘남도학’이어야 하는가? ‘호남’은 지역을 중심으로 나눈 용어다. 호남과 호서, 영남과 제주, 관동과 경기 등, 관북, 해서, 관서 등의 북한을 제외한 남한권역의 광역구분이다. 이 구분에 관해서는 이제껏 많은 논의들이 있었기에 리뷰는 불필요하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호남’과 ‘남도’는 유사한 개념 혹은 동질의 장소를 지칭한다. 소박하게는 전남북지역만을 통칭하기도 하고, 통시적으로는 호서, 영남 등과 견주어 제주를 포함한(제주도는 1946년 8월 1일 행정법상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었다) 광역권을 말한다. 호남학이 1908년 ‘호남학보'(호남학회 창립, 1907)의 창간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렇다하더라도 지역학으로서 ‘호남학’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고작 1세기 남짓이다. 무엇이 ‘호남학’ 혹은 ‘남도학’인가.

호남학일까 남도학일까

용례가 중요하다. 호남학은 역사 중심의 용례가 많고 남도학은 문화 중심의 용례가 많다. 특히 남도(南道, 南島 등)라는 개념은 범칭 ‘남쪽’이라는 방위적 맥락에서 거론되기 일쑤다. 단순히 장소로만 본다면 ‘호남’보다 더 넓은 권역을 포괄한다. 영남의 서쪽은 물론 금강을 넘어 남북 대칭 개념(남한 전체를 남도로 기표하는)으로까지 확장해서 사용할 수 있다. 전남대학교 인문학장을 역임했던 지춘상은 남도문화에 대해 섬진강 이서, 금강 이남의 권역을 설정하고 그 안의 민속문화적 특질들을 규명한 바 있다. 선험적 의미를 들어 말한다면 ‘호남학’의 의미는 일정한 권역(제주를 포함하고 있지만, 일반의 인식으로는 사실상의 전남북을 벗어나기 어렵다)을 중심으로 하는 장소적 성격이 강하다. ‘남도학’의 의미는 어떤 특질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적 성격이 강하다. 호남학은 역사적 입장이나 호국 정신사적 맥락을 드러내는 듯하고, 남도학은 서민문화, 민중문화 혹은 평민문화(일본의 ‘상민’의 개념과 유사)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학적 맥락이 강해 보인다. 말장난 같지만 이름이 함의하는 정체성의 비중을 생각한다면 흘려 넘겨버리기엔 아까운 주제다. ‘호남학’보다는 ‘남도학’이 그 용례상 더 넓은 의미의 ‘한국학’을 포섭하면서도 호남을 기반으로 삼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의 연구 용례들을 보면, 남도학은 종합학문으로서의 민속학적 범주를 주요 대상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민속학은 분과학문의 작은 단위로 이해되는 경향이 많다. 용어 사용에 한계가 크다는 뜻이다. 무형의 유산 전체를 아우르는, 그러면서도 역사학, 인류학, 사회학 등의 제 분과들을 통섭시키는 개념설정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네스코에서 말하는 무형유산(정신문화)의 정체

정신문화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딱히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물질과 정신으로 나누어 설명 가능하다. 물질은 유형적 유산이요 정신은 무형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무형문화유산을 정신문화유산으로 치환해도 큰 무리가 없다. 유네스코 협약 제2조 1항에는 무형문화유산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첫째, 공동체, 집단 및 개인이 자신의 문화유산의 일부분으로 인식하는 관습, 표현, 지식 및 기술, 둘째, 이와 관련된 전달 도구, 사물, 공예품, 셋째, 문화공간이다. 협약 제2조 2항의 무형문화유산의 범위로는 첫째,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체로서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둘째, 공연예술(전통음악, 무용 및 연극 등), 셋째, 자연 및 우주에 관한 지식 및 관습, 넷째, 전통기술이다. 협약 제2조 1항의 무형문화유산의 특징은 첫째, 세대와 세대를 거쳐 전승, 둘째, 인간과 주변 환경, 자연의 교류 및 역사 변천 과정에서 공동체 및 집단을 통해 끊임없이 재창조, 셋째, 공동체 및 집단에 정체성 및 지속성 부여, 넷째, 문화다양성 및 인류의 창조성 증진, 다섯째, 공동체간 상호 존중 및 지속가능발전에 부합, 관련 규범과 양립 등이다. 문학, 역사, 사회, 철학(사상), 예술, 민속 등 다양한 분야의 분과들이 포함된다. 연구자의 시각이나 상황에 따라 큰 범주들이 다루어지기도 하고 작은 단위들이 다루어지기도 한다. 세분하자면 끝이 없다. 음악(노래, 춤, 연극 등), 미술(기술 등), 문학(구비문학, 고전문학, 현대문학), 언어(특히 방언 등), 철학(유학, 실학 등), 종교(불교, 기독교, 원불교, 천도교 등), 축제, 민속(인류, 민족 등)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역사, 지리, 사회(경제 포함), 정치, 환경(생태 등), 건축(기술 등) 등도 포함된다. 유형문화로 분류될지라도 그것을 다루는 기술이나 감상하는 심미안은 무형분야인 까닭이다. 근자에는 독립운동, 민주화운동(5.18등), 해외동포, 어민 생애사 등의 구술사들이 중요한 정신문화유산으로 속속 등장하고 있다.

호남학을 넘어 남도인문학으로

‘호남학’이라는 호명이 단순히 일개 지역의 학문이란 뜻만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호서학, 영남학, 관동학, 경기학, 제주학 등의 호명들도 각 지역의 정체를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도학’에 비해 문화적 정체성의 비중보다는 지역이나 권역 분할의 의미가 강하다는 점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문화적 맥락에서 접근하는 용례(지춘상의 남도권역 구분의 예)를 따라 ‘남도인문학’ 혹은 ‘남도학’이라는 맥락으로 호남 광역권을 전제하는 호명을 선호해왔다. 육자배기토리권, 모정권, 흘림장단권 등 수 십 가지 특징들이 거론된다. 이 현상이 교집합 되는 권역들 예컨대 영남의 일부, 충청의 일부도 아우른다. 마찬가지로 호서나 영남 광역권에서는 남도권역 일부를 교집합으로 공유한다. 굳이 따지자면 광의의 남도인문학, 협의의 남도인문학 정도일 것이다. 호남지역 무형문화유산의 대부분은 선사시대로부터 역사시대까지, 마한 혹은 백제 나아가 현재까지, 고대철학에서 현대철학까지 아우르고 있다. 광의의 예술과 생활문화가 강조되고 있다. 이런 분석을 할 수 있는 것은 무형문화 분야 관련 연구들이 대부분 호남지역의 서민문화 곧 민족학(민속학)적 범주를 다루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남도지역을 자타가 인정하는 예향의 고장이라 호명하는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증거들이다. 나는 이것을 ‘안동의 유학’에 견주어 ‘호남의 생활예술학’으로 그 중심을 삼아야 한다고 제안해왔다. 그래서다. 지금 호남의 인문학은 무엇을 요구하고 있을까? 아마도 지역학을 넘어서는, 한해륙 전체를 아우르는 강령(아젠다)이지 않을까? 그래서다.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 가신 이 땅의 민중들, 그들이 남겼거나 그 후세들이 이어가는 생활문화를 주목한다. 행간을 읽고 여백을 읽어온 이유다. 크고 숭고하다고 칭송되는 것에 비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다. 작고 하찮은 것들 속에서 의미를 톺아내는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믿어왔다. 예컨대 안동이 조선 유교의 주류를 들어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고 말해왔다면 남도는 여성을 포함한 민중들의 생활문화를 토대 삼는 생활문화의 수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말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남도 정신문화의 요체다.

남도인문학팁

남도인문학 연구의 질적 양적 축적을 기대하며

바야흐로 시대는 서민의 인권과 역량이 증대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왔다. 흔히 진보라고 표현한다. 근대 이후의 경향만 보더라도 선거권의 쟁취, 여권의 신장, 지배세력에 대한 항거 등 피지배 계급의 역량이 강화되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가히 상호서사의 시대다. 왕후장상이 씨가 따로 있는 것 아니다. 권력과 권위가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것 아니다. 이 시대는 가장 낮은 자들이라 호명되는 이들을 부상시켰다. 인권 없던 여성들을 역사에 전면에 내세웠다. 이것을 시대정신이라 부른다면 오늘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될 것은 단연코 서민의 문화다. 오명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민중문화라는 호명도 가하다. 내용상으로는 유교문화진흥원인 안동의 한국학진흥원에 대칭되는 개념의 남도학진흥원과 남도문화유산학의 주창이 필요하다. 왜 안동을 사례 삼는가?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 주장하기 때문이다. 한국학호남진흥원이 몇 해 전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지만 방향설정을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한국정신문화의 요체를 서민의 말과 몸짓과 풍속에서 길어 올려야 시대정신에 부합하다. ‘서민학’이라는 용어나 개념이 따로 정립된 것은 없다. 민속학이나 인류학, 철학, 사회학 등에서 이 분야를 지칭해 온 용례를 따올 뿐이다. 어느 지역이고 민족학적 기반이 없을까만 그 상징적이고 유형적인 특징들을 남도지역을 기반 삼는 ‘남도인문학’으로 호명할 수는 없는 것일까? 마치 안동이 유교를 내세워 한국정신문화의 본향을 주장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