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남 여성독립운동가들 기억하며 기록할 때

안경주 전남여성가족재단 원장

104
안경주 전남여성가족재단 원장 최동환 기자 cdstone@jnilbo.com
안경주 전남여성가족재단 원장 최동환 기자 [email protected]

2019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한 세기를 맞는 해이다. 일본제국주의의 강점하에서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자주독립국가임을 천명한 이래 100년이 되는 2019년 8월, 우리는 일본의 경제침략에 대응한 NO아베운동 및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다시 전개하고 있다.

광복 74돌을 맞는 동안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명확한 심판 없이 흘러온 결과가 일본 신군국주의세력의 난동을 또다시 보게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 처벌을 위한 1946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12명의 나치 지도자에게 사형이 선고됐고, 이후 독일은 세대에 세대를 이어 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하며 사죄하는 의식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역사를 기억하며 진실을 기록하는 민족에게는 반성과 성찰이라는 인류를 널리 이롭게 할 지혜를 부여한다.

1919년 만세 운동 이래 당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여성들은 2000여 명이 넘으나 독립운동가 서훈을 받은 사람은 434명에 불과하다. 독립운동가 서훈을 받은 전체인원 1만5511명 중 여성은 3%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들 중 광주를 제외한 전남 22개 시·군에 본적지를 둔 분은 32명이다.

전남도민들에게 전남의 여성독립운동가를 꼽으라고 하면 사실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할 정도로 잘 기억되지도, 잘 기록되지도 않았다. 역사가 허락한 성찰의 기회를 우리가 잘 수행하고 있는지, 전남지역 여성독립운동을 통해 반추해본다.

전남·광주의 여성독립운동은 여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에 의해 주도됐다. 수피아여고와 정명여학교의 만세운동, 비밀결사 소녀회, 광주여고보의 백지동맹, 수피아 여학생들의 백청단 등의 활동이 그것이다. 이로인해 서훈을 받은 전남여성독립운동가들은 목포 출신 강지성, 김귀남, 박복술, 박애순, 박음전, 이남순, 여수 출신 곽희주, 윤형숙, 보성 출신 김귀선, 한보심, 순천 출신 김나열, 박우말례(박영자) 이봉금, 이태옥, 임진실, 나주 출신 김안순, 신정완, 이광춘, 임소녀, 조아라, 강진 출신 김옥실, 윤오례, 김화순, 해남출신 문복금, 주유금, 화순출신 박계월, 고흥출신 박성순, 영광 출신 신애숙, 영암 출신 양방매, 곡성 출신 조옥희, 광양 출신 진신애, 장성 출신 하영자 등 32명이다. 이들 중 의병출신인 양방매,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신정완, 광복군 임소녀 등을 제외하고는, 수피아여학교, 정명학교, 광주여고보를 중심으로 한 여학생들과 박신애와 같은 교사들이었다.

1919년과 1921년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목포 만세운동은 정명여학교가 참여하고, 교장 김아각(Daniel. J. Cumming) 목사에게서 독립선언서와 2·8 독립선언서 사본, 결의문 등을 전달받아 비밀스럽고 조직적으로 만세운동을 준비한다.

태극기는 당시 한문교사였던 곽우영 선생이 그려준 원형을 본떠 여학생들이 교내기숙사와 지하실에서 만들어 거사를 치뤘다.

항일만세운동, 항일의병과 광복군 활동에 여성들의 참여 역시 활발했으나 한국 근현대사의 대부분이 남성의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이들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규명은 최근까지도 미흡했다.

이는 구한말에서 근대에 이르는 시기에 사회적 존재로서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채 형성되지 못한데 기인하며, 더불어 역사기술의 남성 중심성에도 그 요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주류에서 비껴간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발굴 및 재조명 활동이 최근 전남지역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일고 있는 점은 기억과 기록을 통한 총체적 역사기술을 가능하게 한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의 기여와 공헌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합당한 예우야말로 성평등 구현과 신군국주의를 이겨내는 역사적 지혜와 통찰력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