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미국 대외정책과 ‘트럼프주의’

최성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前 주 폴란드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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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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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으로 국제정치 및 무역질서를 주도해오고 있다.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시대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보호의 챔피언임을 자처하며, 필요시 ‘세계경찰’의 역할도 수행해 왔다. 자유무역을 선도하면서 세계 경제성장과 발전을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해 왔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양대 정당인 공화당과 민주당의 기본 이념에 근거한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항상 개입과 확장을 추구한 건 아니었다. 1820년대 먼로 대통령은 고립주의를 표방한다. 반면 윌슨 대통령과 루스벨트 대통령은 1·2차 세계대전 직후 국제연맹과 유엔 창설을 각각 주도하면서 다자주의의 산파(産婆)로 인정받는다.

21세기에 들어 미국의 대외정책은 혁명적인 변화를 거친다.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사건 때문이다. 1776년 미국 독립 이후 처음으로 본토가 공격받는다. 미국인들의 충격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당시 駐미 대사관에서 근무 중이던 필자는 9·11테러 이후 미국 사회가 급격히 경직되는 현장을 목격한바 있다. 민간 비행기가 테러공격용 무기로 쓰일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당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앞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think the unthinkable)”고 역설한다. 이처럼 9·11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은 국토안보를 최우선으로 내세운다.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친구 對 적’으로 양분하는 강경정책노선을 걷는다. 모든 국력이 국토안보에 집중된다. 오바마 대통령도 對테러전을 지휘하며 빈 라덴 사살작전을 승인한 바 있다. 공항에서 검문검색도 엄청 강화된다. 워싱턴과 뉴욕 등 동부지역 국제공항의 경우는 더 그러하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등장은 국제사회에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다.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는 경제불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아진 미국 백인들의 상실감과 좌절감에 직접 호소한다.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경제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추구한다. 트럼프의 지지층은 미시간 및 일리노이 등 쇠락한 공업지대(일명 rust belt)의 불우한 백인들이다. 트럼프는 전통적인 군사동맹보다 비용경감을 중시한다. 동맹보다 돈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동맹 군사훈련이 중단되면 돈을 절약해서 좋다는 식이다. 해외주둔 미군 분담금과 국방예산을 대폭 인상하라고 유럽동맹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을 수시로 압박한다.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도 “ICBM이 아닌 단거리 미사일이니까 괜찮다”고 말한다. 미국 본토가 아닌 동맹국 안보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해석된다.

국제기구와 국제협약으로부터 일방적인 탈퇴 결정이 이어진다. 유네스코와 인권이사회 및 파리기후협약 탈퇴가 대표적인 실례다. 다자기구 대신에, 필요시 양자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해 실속을 챙기려 한다. 당연히 자유무역이 아닌 보호무역을 선호한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경제 사안을 정치안보 문제와 결부시킨다. 예를 들어, 국가안보를 이류로 외국 차량의 수입을 규제한다. 트럼프 시대의 국제사회는 뉴노멀(new normal)에 익숙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유엔의 창설을 주도해 온 미국이 이제는 앞장서서 다자주의를 푸대접 한다. 일본 아베 정권이 지난 7월부터 한국에 대해 수출규제를 가하는 것은 ‘경제문제의 정치무기화’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트럼프 흉내 내기’라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는 각국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라는 거다. 각자도생의 국익우선주의 시대다. 그렇지만,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인 우리는 한미동맹을 각별히 잘 관리해야 한다. 이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견고한 한미동맹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친해질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마음을 사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국익을 위한 일이라면 염치나 체면을 떠나, 미국에 납작 엎드릴 줄도 알아야 한다. 비상한 안보환경은 비상한 지도력을 요구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미 간 인식에 간극이 없도록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국의 국가운영 방식에 대한 정확하고 정교한 이해도 중요하다. 미국은 행정부 외에 의회와 언론이 국가 시스템의 중핵(中核)을 이루고 있다.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한미동맹을 운용하는 건 순전히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