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광복절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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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수 기자 sspark@jnilbo.com
박상수 기자 [email protected]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광복절 노래’에 나오는 것처럼 바닷물도 덩실 춤을 출 정도였다. 친일파들에게는 청천벽력이었겠지만, 대부분의 인민들에게는 이보다 더한 기쁨이 없었다. 당시에는 매스컴이 발달하지 않아 일본의 항복을 사람들이 안 것은 한참 뒤였다. 요즘 우리가 부르는 정인보 작사, 윤용하 작곡의 ‘광복절 노래’가 공모를 통해 확정된 것도 6·25 전쟁을 두 달 앞둔 1950년 4월 26일이었다.

그러나 광복의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일본군이 물러간 자리에 남쪽에는 미군, 북쪽에는 소련군이 점령군처럼 들어왔다. 더욱이 미국과 소련, 영국의 외무장관이 1945년 12월 이른바 ‘모스크바 3상회의’를 갖고 한국의 신탁 통치를 결정했다는 소식에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모스크바 3상회의’는 △조선에 (통일된) 임시 민주 정부를 수립 △이를 위해 미·소 대표자들이 공동 위원회(미·소 공동 위원회)를 구성 △미·소 공동 위원회가 조선 임시 정부와 상의하여 최고 5년간의 신탁 통치안 작성 등을 합의했다. 이후 국내 정치 세력은 반탁과 찬탁으로 갈려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38도선 이남과 이북에서는 미·소에 의해 단독정부 수립 분위기로 흘러갔다. 우리 국토는 결국 외세와 일부 정치인들의 야망에 따라 남북 분단으로 이어졌다.

광복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된 것은 천추의 한이 아닐 수 없다. 남북 분단은 6·25 전쟁으로 이어져 또 한 차례 우리 민족에게 고통을 안겼다. 한반도의 분단은 일본 제국주의의 불법적인 강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지금까지 한반도 강점과 징용·위안부 사건에 대한 반성과 제대로 된 사과가 없었다. 더욱이 최근에는 대법원의 징용 배상 결정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고 수출을 규제하는 적반하장식 대응을 하고 있다. 일본이 과연 글로벌 시대의 문명국가가 맞는지 의심이 간다.

다시 광복절 아침이다. 우리 국민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음흉한 그들의 경제 침탈을 막아내기 어렵다. 지금이야말로 ‘제2의 독립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상수 주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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