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광장>유니클로? 일본소설 범람이 더 문제다!

천세진(문화비평가, 시인)

214
 편집에디터
편집에디터

한·일 갈등이 첨예화하면서 국내 출판사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 도서관과 서점에 가보면 이유를 금방 알 수 있다. 국내 주요 출판사들이 번역 출간한 일본 작가들의 작품들이 가득 꽂혀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소설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할 것이다. 맞다. 다른 나라의 책들도 많다. 하지만 비율을 따져보면 면죄부를 주기 어렵다.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출판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정치적 갈등과 문학은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세계화의 지독한 폐해 중 하나가 ‘문화적 동조화'(同調化 : 서로 다른 일정한 주기를 갖는 진동계에 약간 다른 주기의 신호가 가해질 때, 진동 주기가 서로 일치하게 되는 현상.)다. 경제 현상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이용하여 ‘문화적 커플링’으로 불러도 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사회적 진행방향이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일본에 비해 20년, 30년이 늦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듣기 불편하지만 일정 부분 사실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소확행’의 출처가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랑게르한스 섬의 오후’는 하루키가 1980년대 후반 출간한 ‘코끼리 공장의 해피 엔드’에 실린 작품이다. ‘소확행’은 정점을 향해 치달았던 일본의 경기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나타난 사회적 현상 중 하나였다. 그 모습이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사회적 정서가 30년 뒤에 한국에서 재연된 것이라고 말한다면 자존심 상하겠지만,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문제는 경제적 과정상의 보편적 유사성은 어쩔 수 없지만, 의도적인 이유들로 인해 닮아가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 현재의 일본식 동조화는 단순히 옆 나라이기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다. 식민의 유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적 연원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은 문화가 다른 나라다. 현재의 일본식 문화적 동조화는 이익을 얻기 위한 기업들과 출판사들의 무비판적 수용에서 심화된 측면이 분명히 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고, 문민정부를 주창하면서 한국 문학은 1980년대를 주도했던 투쟁의 열기가 가득했던 시(詩)중심의 경향에서, 회고적이고 개인적인 심상을 드러낸 신경숙, 윤대녕 등의 소설가들이 인기를 얻는 경향으로 방향을 틀었고,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감성의 동조화가 시작된 시간적 지점이고, 그 동조화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오이시’, ‘가와이’를 연발하는 소소한 개인 감성의 시대라는 점은 닮았지만, 뼈대의 배경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동조화가 진행되는 바로 그 점이 우려되는 것이다. 잦은 일본 여행과 일본 작품으로 취향화 된 감성은 겉으로는 일본을 거부하지만 체질적으로는 일본을 거부하기 어려운 상태로 만들지도 모른다.

경제사회적 측면에서 일본은 한국을 선행했다. 당연히 일본 작가들의 작품은 한국이 현재 맞고 있는 상황들을 이미 체감하고 탄생한 것들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이 매력을 느낄만하다. 그걸 탓할 수는 없다. 독자들이 모든 것을 계산하고 책을 읽지는 않으니까. 문제는 출판사들이다. 현재의 문화적 현상을 진단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감성적, 지성적 작품들이 탄생하도록 유도하지 않고 앞 다투어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여 출간하는 모습은 문화를 만들어가는 책임 있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고, 한국 출판사라는 자기정체성이 약한 것이다.

작가들도 질타를 피해갈 수 없다. 대중의 입맛에만 맞추어 지성적 언어가 아니라, 기술적 언어에 집중한 책이 100만부 이상이 팔리는 세태, 청년세대의 고통이 사회적인 원인에서 발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청춘은 원래 아픈 것이라고 말하는 책이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현실을 지켜보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일본은 이번에 우리에게 좋은 기회를 주었다. 산업적으로도 문화적, 지성적으로도 스스로 서지 않으면 진정한 자유와 정체성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통렬하게 깨닫는 계기를 주었다. 솔직히 아베에게 고맙다. 고통은 잠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국내에서 모든 것이 조달되도록 산업을 키우면 앞으로 외풍에 의해 흔들리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베끼기를 중단하고, 문화 창출에 나서야 할 의무의 얼굴을 출판사들이 거울 앞에 서서 직시했으면 좋겠다.

천세진〈문화평론가, 시인〉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