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꽃 무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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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도철 미디어국장 최도철 기자 docheol.choi@jnilbo.com
최도철 미디어국장 최도철 기자 [email protected]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 꽃 /피었네 피었네 우리나라 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 꽃”.

시골살이 5년째인 곡성 친구가 바리바리 챙겨준 열무며, 호박, 풋고추를 한 아름 싸 들고 나오는데, 담장 아래 조르라니 핀 봉숭아가 ‘날 좀 봐 주세요’ 하는 듯 낯을 내민다.

들어갈 땐 못 보았는데 눈을 돌리니 장독대 곁 채송화도 올망졸망 한 무더기 피어있다. 헛간 옆 무너진 흙벽 너머로 백일홍과 함께 한껏 치장을 한 연분홍 무궁화도 눈에 들어왔다. 가만 보니 마당이 온통 꽃천지다.

오랜만에 우리꽃 무궁화를 가까이서 보니 어릴 적 동무들과 함께 불렀던 동요가 떠오른다.

무궁화는 문무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게 왕이 내리는 ‘어사화(御賜花)’에 장식용으로 쓰였다. 혼례 때 입는 활옷(闊衣)에도 풍요와 다산, 변치 않음을 상징하는 무궁화를 수놓았다.

대한민국 수립 직후인 1949년 행정·입법·사법 3부의 휘장을 모두 무궁화로 도안했으며, 태극기의 깃봉도 무궁화 꽃봉오리로 정했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가장 영예로운 훈장이 ‘무궁화 대훈장’이다.

언제부터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불렸을까. 이론이 있지만 1896년 독립문 정초식 때 배재학당 학도들이 부른 애국가 가사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구절이 있는데 이것이 계기가 돼 국화로 자리매김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여름내 여일하게 피어있는 무궁화는 그윽하고 겸손하다. 우리나라를 ‘은자(隱者)의 나라’라 칭한다면, 무궁화는 현란한 색채나 향기가 없는 ‘은일(隱逸)의 꽃’이다.

민족의 꽃 무궁화는 일제 강점기에 많은 수난을 당했다. 독립지사들이 나라꽃으로 무궁화를 내세우자 일제는 무궁화나무를 아예 뽑아버리고 불태웠다. 게다가 근거 없는 얘기들도 퍼뜨렸다. 보기만 해도 눈에 핏발이 서고 닿기만 해도 부스럼이 생긴다며 ‘피꽃’ ‘부스럼꽃’으로 부르면서 멀리 하도록 했다. 생명력이 강한 무궁화가 저항 의지를 상징한다 해서 철저히 배격했던 것이다.

광복 이후 전 국토에 1000만 그루가 넘는 무궁화가 심겨 졌다. 그래서 여름만 되면 마을 초입에, 울타리에 무궁화가 지천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많던 무궁화가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이 화려한 외국 꽃들이 그 자리를 모두 차지했다.

며칠 후면 광복절이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시절 선조들이 목숨 바쳐 지킨 민족의 상징 가운데 하나가 무궁화임을 생각하면 우리꽃 무궁화의 홀대가 못내 아쉽다.

최도철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