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홍승의 클래식 이야기>김대중 서거10주기 추모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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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생전의 모습. 뉴시스 편집에디터
김대중 대통령 생전의 모습. 뉴시스 편집에디터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 모습. 뉴시스 편집에디터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 모습. 뉴시스 편집에디터

인연(因緣)

광주 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김홍재는 가끔 고(故) 김대중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일본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재일교포들을 초청하여 만찬을 하는 자리에 초대된 지휘자 김홍재는 처음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다. 이 운명적인 만남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의 톱 클래스 교향악단들을 지휘하며 큰 활약을 펼치고 있는 그를 매우 높게 평가했으며 이날의 일은 2년 후 김홍재 지휘자의 한국행의 계기가 된다. 김홍재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내 무국적자(無國籍者)로 지내면서 단 한 번도 한국을 찾지 못하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2000년 아셈(ASEM)개최 축하공연 “한국을 빛낸 해외동포 연주가 시리즈”의 개막공연에 KBS 교향악단의 지휘를 맡아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게 된다. 당시 김홍재는 조선적(朝鮮籍) 무국적자의 신분으로 세계 여러 나라 여행에 제약이 많은 시기였다. 그 후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한 배려로 정부로부터 임시여권을 발급받아 국내 여러 교향악단들을 두루 객원 지휘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윽고 2005년 대한민국 국적 취득과 함께 2007년 울산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영입되어 9년여 간 지휘봉을 잡았으며 2016년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김대중 서거10주기 추모 음악회

8월17일 저녁 7시 광주 김대중 컨벤션 센터 1층 다목적 홀에서는 김대중 서거10주기 추모 음악회가 열린다. 추모 음악회의 전반부는 광주시립교향악단이 출연하여 김홍재 상임지휘자의 지휘로 총 3곡을 연주한다. 연주곡목은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S. Barber : Adagio for Strings, Op.11)와 최성환의 ‘아리랑 환상곡’ (Choi Seonghwan : Arirang Fantasy), 그리고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5번 4악장 (P. I. Tchaikovsky : Symphony No. 5 in E minor op.64 – Ⅳ)을 연주할 예정이다. 지난 5월쯤 갑자기 ‘김대중 서거 10주기 광주행사위원회’로부터 연락이 있었다. 김대중 추모 음악회를 열고 싶은데 협조해 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으며 특별한 주문은 김대중 대통령과 인연이 있었던 김홍재 지휘자가 지휘를 맡아 줬으면 하는 것이었다. 지역에서 열리는 뜻깊은 김대중 대통령 추모 행사에 적극 참여한다는 차원에서 광주문화예술회관(관장 성현출) 관장 이하 관계자들은 가능한 모든 협조를 제공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사실 그 당시 우리는 경남 봉하 마을에서 열렸던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행사를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많던 차였다. 김홍재 지휘자는 8월중 겹치는 여러 스케쥴을 무리하게 조정하면서까지 기꺼이 지휘자로서 출연하고자 했다. 또 이날 연주될 세 곡의 연주곡을 모두 그가 직접 선곡(選曲)한 것으로 보아 이 추모 음악회는 김홍재 지휘자에게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매우 각별한 회고의 의미를 갖는 듯 했다. 음악회 당일 가장 먼저 연주되는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비감스러운 멜로디와 중후한 현악기의 앙상블로서 온전히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의미를 갖는다. 다음 ‘아리랑 환상곡’은 북한 작곡가 최성환이 작곡한 명곡(名曲)으로 지금도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되는 한국적인 정서와 선율이 넘치는 곡으로서 남북 화해의 시대를 이끌었던 김대중 대통령을 직접 상징하는 곡이다. 마지막으로 연주되는 ‘차이코프스키 5번’의 제4악장은 인생의 온갖 고난과 역경, 부조리와 불합리에 저항하여 끝내 승리하는 내용으로서 김대중 대통령의 삶과 광주시민들의 승리를 상징한다는 의미에서 선곡되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홍재 지휘자

김대중 대통령과 김홍재 지휘자, 이들은 서로 다른 분야에 있었으면서도 어쩐지 닮은 구석이 많다. 예를 들면 숱한 고난의 시절을 끝내 이겨내고 승리하였다는 점에서 그렇고 불굴의 신념(信念)의 소유자들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나는 그들의 신념을 성(聖)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빌려 정의(定義)하고 높이 평가하고자 한다. “신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신념에 대한 보상은 믿던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선명히 기억하고 있듯이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 지역민들 대부분이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호남 출신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1973년 중앙정보부의 이른바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고초를 겪었고 1976~1978년에는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투옥되었으며 1980년에는 비극적인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에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는 등 극한 고난과 투쟁의 삶을 살아야했던 정치가다. 말 그대로 ‘인동초'(忍冬草)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삶이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로는 1997년 시작된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의 외환위기를 극복하였으며 2000년 6월 13~15일은 평양을 방문하여 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내면서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기여했다는 부분까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다. 김홍재 지휘자는 가끔씩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심을 가지고 추억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을 상당한 나이가 들었음에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박식하고 머리가 좋은 사람 그리고 대단히 지혜로운 지도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이휘호 여사의 소식을 듣고는 또 매우 안타까워했었다.

김홍재는 일본 효고현에서 민족학교 교원인 부모아래서 태어나 일본학교를 다니지 않고 민족학교를 다니면서 성장했다. 일본에서 정식 학교로 인정받지 못하는 민족학교를 졸업한 그가 들어갈 수 있는 음대는 일본에서 한 군데 밖에 없었다. 일본 최고의 명문 사립 음대인 도호학원 음악대학(桐朋学園大學音楽部)이었다. 도쿄에서 부잣집 아이들이 가장 많이 다닌다는 학교에서 제일 가난했던 조선적(朝鮮籍)학생 김홍재는 그곳에서 세계적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를 만나 공부한다. 혈통주의 일본사회에서 아무런 배경이나 주변의 어떠한 도움도 없이 그는 1979년 세계적 권위의 제5회 도쿄 국제 지휘자 콩쿨에서 2위와 ‘사이토 히데오’ 특별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일본 클래식계를 경악케 한다. 김홍재는 참가자들 중 실력은 최고였지만 1위를 수상하지 못했었고 오히려 1위 입상자 대신 특별상인 ‘사이토 히데오’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그가 사실상의 1위였음을 인정하는 일본 클래식계의 마지막 양심에 따른 결과였다.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의 개막지휘는 당연히 일본의 ‘오자와 세이지’가 맡았지만 바로 이어 열린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의 개막 지휘는 김홍재에게 기회가 왔다. 무국적자 조센징이 올림픽 개막식에서 일본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다.

그는 내 주변에서 내가 아는 한 가장 정치적이지 않은 지휘자 군(群)에 속한다. 조센진으로 불리 우며 온갖 불이익들을 감수하면서도 오랜 세월 무국적자의 신분을 고집했던 전력(前歷) 등 말하자면 그 비정치적인 성향은 어떤 신념 같은 것이고 그로 인한 여러 가지 고난의 감수는 자발적인 선택이 맞다. 한 가지 예로 ‘오자와 세이지’가 세계적인 교향악단 미국 보스턴 심포니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을 때 ‘오자와’는 제자였던 김홍재를 두 번씩이나 미국으로 초청하려 한 적이 있었으나 그의 무국적자 신분은 마지막까지 발목을 잡았다. 이때도 김홍재는 끝까지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세계 클래식계의 중심지에서 자리 잡고 발돋움할 수 있는 인생 최대의 기회를 스스로 날린 것이다. 김홍재 지휘자는 상당히 오래 전 어느 방송국과의 특집 프로그램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음악회가 있는 날은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못 가본다. 자식이 죽느냐 사느냐 해도 그날은 못 돌아가고 이 음악회를 해야 한다는 각오로 사는 사람이니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한다.” 김홍재는 약 400여곡의 어마어마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으며 명확한 곡 해석과 완벽한 바톤(Baton) 테크닉 등을 보여주는 명실 공히 월드클래스의 지휘자다. 그는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한다는 우리 광주시 문화예술의 대표적인 인적(人的) 자산이며 대외적 자랑거리로서 가치가 충분한 인물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남북 화해가 절실한 이 시점에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평양국립교향악단을 수차례나 객원 지휘했던 그의 경력이 남북 간의 문화예술교류에도 적절하게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가 2016년 광주시향으로 자리를 옮길 때의 일이다. 9년 동안 지휘했던 울산시향의 단원들이 시청을 찾아가 지휘자가 떠나지 않게 해달라는 청원을 하였고 이에 울산시장(市長)은 파격적인 계약 조건을 다시 제시하였지만 그는 끝내 광주행을 변경하지 않았다. 현재 그의 연봉(年俸)은 국내 각 광역시급 교향악단 상임지휘자들 중 하위 수준이다.

김대중 5.18 묘역참배 편집에디터
김대중 5.18 묘역참배 편집에디터
2007년 경기도 구리 코스모스 축제를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뉴시스 편집에디터
2007년 경기도 구리 코스모스 축제를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뉴시스 편집에디터
김홍채 편집에디터
김홍채 편집에디터
김홍채 편집에디터
김홍채 편집에디터
김홍채 편집에디터
김홍채 편집에디터
김홍채 편집에디터
김홍채 편집에디터
김홍채 편집에디터
김홍채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