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욱의 도자이야기>고려 청자의 쇠퇴와 조선 백자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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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장흥 월송리 백자 요장-마한문화연구원 편집에디터
02-장흥 월송리 백자 요장-마한문화연구원 편집에디터

조선의 자기문화는 크게 고려 상감청자의 뒤를 이은 분장청자와 중국의 영향을 받아 발전된 백자로 나눌 수 있다. 흑자와 도기 등도 생산되었지만 주도적 역할을 하였던 것은 백자였으며, 분장청자는 조선 전기에 꽃을 피웠다. 분장청자는 15세기 중․후기를 지나면 중앙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경기도 광주에 설치된 사옹원(司饔院) 분원(分院; 중앙 관요)의 정립과 지방 사기장의 정착으로 백자가 대량 생산되면서 점차 소멸한다. 한편, 고려시대에 청자뿐만 아니라 백자가 지속적으로 생산된 것처럼 조선시대에도 청자는 소량이지만 계속 생산되었다. 특히, 오방사상에 의해 동쪽에 거주하였던 동궁(세자)의 생활공간에서 많이 소비되었는데, 이는 동쪽의 색상이 청색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원이 성립 이전에는 지방에서 청자를 생산하여 공납하였으나 분원이 확립된 이후에는 분원에서 백자 바탕 흙에 청자 유약을 입힌 백태청유자(白胎靑釉瓷)를 생산하여 사용하였다.

백자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분원 성립 이후 전국에 위치하고 있던 분장청자 요장은 점차 소멸하면서 지방 백자 요장이 등장한다. 이들 백자 요장에는 지방 관청의 통제를 받는 사기장이 배치되고 지역의 관청과 향교, 사찰, 사대부 등을 대상으로 백자를 제작하였다. 생산품은 분원의 영향을 받아 중·상품이 소량 생산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 중·하품으로 조질 백자가 중심을 이루었다. 전라남도에서도 나주목이 위치하고 있는 나주를 중심으로 질 좋은 백자를 생산하였던 요장이 일부 확인되고 있으나 대부분 중·하품을 생산하였다.

백자는 고려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세계 도자의 큰 흐름이 청자에서 백자로 옮겨지는 원말명초(元末明初, 14세기)에 중국 백자의 영향으로 치밀질 백자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고 있었다. 즉, 백자는 크게 고려 백자의 전통을 이은 연질백자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경질백자가 있는데 조선시대에 성행하였던 것은 치밀질의 경질백자였다. 새로운 백자는 세종(1418~1450년) 때에 왕실용으로 사용할 만큼 세련되게 발전하였고 중국 황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렀으며 청화백자(靑畵白瓷)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분원 설치 이전에는 고령과 남원, 광주(廣州) 등에서 만든 백자가 주로 왕실에서 사용되었으며, 분원이 설치된 1468년 이후에는 갑발을 사용한 품질 좋은 순백자가 약간의 청화백자와 함께 만들어졌다.

15세기 백자는 대체로 풍만한 가운데 단정하며 구연부를 제외하고는 기벽이 두껍고 굽도 넓어 안정감을 갖는다. 일상생활에 널리 쓰이는 그릇 외에 제기와 문방구, 화장용기 등 특수한 기물들이 백자의 보편화 단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장식기법에는 상감과 인화, 청화, 철화, 동화 등이 사용되며, 때로는 서로 조화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항상 간결함과 검소한 미를 잃지 않는 한계를 지키며 사용되었다. 이시기의 백자는 사대부들이 추구하였던 검소하고 질박하며 결백한 미감과 맞아 떨어져 발전을 거듭하였다.

16세기의 백자는 초기의 엄숙하고 정돈된 느낌이 보다 자연스러움을 갖추면서 꾸준히 발전한다. 이것은 서원이 설립되고 향약이 널리 보급되는 등 유교 이념이 확산되는 사회적 동향 때문이다. 17세기에는 임진왜란과 청의 건국으로 작은 중화(中華) 사상이 대두되어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나 국문학의 주체성이 나타나는 등 조선의 독자적인 문화가 더욱 강조되었다. 백자는 달항아리 등 간결한 순백자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청의 건국으로 청화 안료를 쉽게 구할 수 없게 되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산화철 안료로 무늬를 그린 철화백자가 많이 만들어 진다.

18세기 백자는 사대부의 정신세계를 나타낸 청초하고 간결하면서도 기품있는 독특한 멋을 지닌다. 밝고 광택이 있는 달항아리, 각진 병, 고족(高足) 접시 등이 제작되며, 청화로 난초와 매화, 풀꽃 등을 청초하게 그린 병과 항아리 등이 생산된다. 18세기 후반까지 이러한 경향이 이어지며 분원 요장이 광주 분원리(分院里)로 옮겨져 본격적인 분원 백자가 만들어 진다. 영조와 정조대에는 문화의 중흥기로 산수와 인물, 사군자, 십장생, 수복(壽福)이 쓰인 각종 청화백자가 만들어 진다. 설백(雪白)의 유약 색상이 점차 청백(靑白)으로 바뀌며 의례에 쓰이는 청화 항아리와 병, 고족접시, 문방구 등이 많이 성행한다.

19세기에는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리며 외세의 발호와 함께 문호가 개방된다. 분원 백자 특유의 담청을 머금은 무문과 음각, 양각, 투각, 동식물 형태로 만든 문방구(필통, 연적)와 제기, 생활용기(병, 호) 등이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 진다. 특히, 두꺼비, 오리, 해태, 토끼, 복숭아, 금강산 등의 형태로 만든 소박하고 정감어린 기물과 투각의 각종 필통은 전성기의 순청자를 보는 듯하다. 또한, 청화를 이용하여 운룡문과 봉황문, 장생문, 산수문, 인물문, 연꽃문, 모란문 등을 간략하고 대범하게 그리고 있다.

이와 같이 시기에 따른 변화가 있으나 백자의 기본적인 특징은 우리 조상들의 꾸밈 없는 순수하고 평범한 마음과 생활을 반영하듯 티 없이 맑고 고운 순백색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여유스런 둥근 곡선에 있다. 백자는 하얀 바탕 흙 위에 파르스름한 투명 유약이 입혀지며 무늬가 있는 것은 매우 적다. 무늬는 산화철이나 구리, 코발트와 같은 안료를 이용하여 대담하게 생략하거나 재구성하였다. 소재는 소나무나 대나무, 국화, 용, 풀꽃 등으로 간결하게 그리며, 넓은 여백을 남겨 무늬의 효과를 확대시키고 있다. 지방 백자도 크게 이러한 배경에서 제작되었으나 품질이 낮고 문양도 간략하여 분원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면서 변화 발전하였다.

백자 역시 청자처럼 크게 문양을 시문하는 방법에 의해 나누어진다. 가장 일반적인 순백자(純白瓷)는 성형 후 유약만 바른 순수한 백색의 자기를 말한다. 여기에는 무늬가 전혀 없는 백자와 무늬가 있는 음·양각백자, 투각백자(透刻白瓷), 상형백자(象形白瓷) 등이 있다. 상감백자는 고려 상감기법을 이은 것으로 그릇 바탕 위에 무늬를 새긴 후 그 부분에 붉은 흙(赭土)을 메운 다음 표면을 다듬은 뒤 시유하여 번조하였는데 주로 조선 전기에 만들었다. 청화백자(靑畵白瓷)는 청화 안료(산화 코발트)로 무늬를 그리는 것으로 중국의 원과 명에서 생산되었던 청화백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으며 한국풍과 중국풍이 함께 있다. 한국적인 것은 소나무와 대나무, 매화 등의 나무와 간결한 절지문(折枝文)을 비롯하여 달과 별 등이 회화적인 수법으로 표현되었으며 유약이 다소 치밀하다. 중국적인 것은 세밀한 용무늬나 다소 조잡한 당초문이 그릇에 가득 그려져 있으며 유약이 다소 조잡하다. 처음에는 페르시아 코발트 안료를 아라비아 상인을 통해 중국을 거쳐 수입하였기 때문에 회청(回靑) 또는 회회청(回回靑)이라고 불렸으며 매우 귀하고 값이 비싸 많은 수량을 만들 수 없었다. 조선 후기가 되면 분원에서 일반 판매를 목적으로 문방구류를 중심으로 많이 번조하여 널리 확산되는데 이러한 경향은 지방 요장까지 확산된다. 그러나 안료의 품질도 떨어지고 문양도 간략하여 분원 생산품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철화백자(鐵畵白瓷)는 백토로 성형한 후 산화철 안료로 무늬를 그린 것으로 무늬가 흑색이나 흑갈색을 띤다. 조선시대 전시기에 만들어졌으며 그 무늬는 대담한 것과 치졸한 것, 추상적인 것, 해학적인 것, 회화적인 것 등 시기와 가마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청의 건국 등으로 청화 안료가 귀한 중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이때 청화백자처럼 지방에서도 생산하는데 문양이 매우 간략하며 품질도 대체로 낮다. 동화백자(銅畵白瓷)는 산화 구리로 무늬를 그린 것으로 붉은 색을 띤다. 붉은 색을 자기에 사용하는 것은 매우 적으며 18세기부터 만들고 있는데 대부분 치졸하거나 해학적으로 시문하였다. 이외에 후기 분원 백자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던 철채(鐵彩)와 동채(銅彩), 청채(靑彩) 등의 백자가 있는데, 하나의 그릇에 두 가지 기법이 함께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백자 태토 위에 흑유를 바른 흑유백자는 일명 “석간주(石間硃)” 자기로 불리며 꿀이나 술 등의 액체류를 주로 담았는데, 담양을 중심으로 전라도에서 특히 많이 확인되고 있어 특징적이다.

조선의 기본 법전이었던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지방 관요에 모두 100명의 사기장이 배치되었는데 전라도에 가장 많은 39명이 배치되었으며, 이외에 경상도 32명, 충청도 23명, 경기도 6명이 배치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사옹원 분원이 설치되었던 경기도 광주 지역을 제외하면 전라도에서 가장 활발하게 백자를 생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전라도에서 확인되는 많은 백자 요장(窯場)의 분포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전라남도에서는 많은 백자 요장의 발굴조사를 통해 백자의 생산 체제와 공정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다양한 공방이 확인되어 도자사와 요업사 등에 다양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즉, 순천 후곡리에서 처음 백자 공방이 확인된 이후 곡성 송강리와 장성 대도리 등에서 공방의 실체를 추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조사를 실시한 무안 피서리에서 백자 요장, 즉 백자 마을(도예촌)의 전모가 확인되어 이후 요장의 발굴조사가 마을 개념으로 확대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특히, 장흥 월송리 백자 요장에서는 다른 유적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원료를 채취하였던 구덩이까지 조사되어 백자를 제작 생산하였던 모든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조선 백자 요장의 전모는 고창 용계리와 용인 보정리 등 일부 요장에서만 확인되었던 고려 청자의 생산 과정을 이해하는데도 많은 자료를 제공하였다.

요장은 마을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매장영역(무덤)이 제외된 생산(공방과 가마, 폐기장 등)과 주거(생활), 자원(원료) 공간이 갖추어진 곳으로 자기 생산을 목적으로 조성된 곳이다. 따라서 요장은 기본적으로 원료를 채취하는 채토장(採土場)과 수비(水飛)․건조(乾燥)․성형(成形)․시문(施文)․시유(施釉) 등을 실시하는 공방, 번조를 담당하는 가마, 실패한 도자와 가마 찌꺼기 등을 버리는 폐기장을 비롯하여 상하수와 빗물 등을 관리하기 위한 수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가마는 산과 강, 바다 등 자연 지리적 조건이 입지에 중요하다. 요장의 가장 중요한 입지 조건은 땔감이 많은 곳이며, 풍향과 풍속의 영향이 적고 적절한 경사를 갖춘 구릉 또는 산기슭이 이상적이다. 또한, 유통에 편리하도록 해로나 수로와 가까워야 하며 육상 운송의 경우도 소비지로 쉽게 운반할 수 있는 입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한편, 태토 정제를 위한 수비를 위해서는 많은 물이 필요하므로 반드시 주위에 풍부한 수원(水源)이 있어야 한다. 물도 다양한 성분을 갖추고 있어 도자의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도자에 맞는 수질이면 더욱 이상적이다. 관요(官窯)를 제외한 일반 요장은 가까운 곳에서 태토를 채취하여 운반 거리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요장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문헌과 민속학적 조사 등을 함께 실시하여야 한다. 민속학적 조사에서는 장인과 가마에 대한 인식 등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가마에 불을 지필 때와 도자를 운반하면서 시행한 의례 등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문헌분석을 통해 가마의 운영 시기와 각종 제도, 지역 특산물 등을 함께 파악하여 이들 요소가 가마 운영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고 주변 소비 유적에서 출토된 도자를 분석하여 유적의 광역적인 입지 배경과 운송, 소비 등의 관계를 검토하여 유통망(교역권)도 밝혀야 하겠다.

왕조의 교체와 기술적 발전, 소비자의 욕구 등으로 자기의 중심은 청자에서 백자로 변화되었으나 전라도 지역은 계속 왕성한 생산 활동을 하였는데, 이는 많은 요장의 확인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유구한 전통과 전라도의 예술혼, 소비자의 문화 의식 등이 대대로 전승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도자 요장을 찾는다면 눈에 보이는 가마와 폐기장뿐만 아니라 지하에 남아 있는 다양한 공방을 인식하고 당시 도자를 만들던 생기발랄하고 창작열이 넘쳤던 도자 마을을 상상해 보았으면 한다.

01-순천 후곡리 백자 요장-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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