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大衆)이 ‘스마트’하면 극일(克日)할 수 있다.

대중이 좋은 방향으로 쏠리면 역사적 성과를 남긴다. 반면 나쁜쪽으로 몰리면 ‘아베의 일본’처럼 된다. 반일운동, 차가운 이성으로 해야 극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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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봉 기자 gbkim@jnilbo.com
김기봉 기자 [email protected]

대중의 선택은 이성적일까, 아니면 거짓에 휘둘리면서도 이성적 선택을 했다고 착각하고 있을까. 지난 주말 넷플릭스에 가입해 처음으로 시청한 장편 다큐멘터리 ‘거대한 해킹(The Great Hack)’을 본 뒤 그런 생각이 머리를 헤집고 다녔다.

지난 2016년 트럼프 선거 캠프에 고용된 영국의 데이터 분석 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mbridge Analytica)는 페이스북 앱을 다운로드 받은 27만명의 세세한 개인 정보를 확보한 뒤 그들 친구의 친구 개인정보까지 모두 5000만명의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공화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비슷한 주(州)에서 ‘설득이 가능한자’들, 즉 부동층을 공략한다. 민주당 힐러리 클링턴이 이른바 ‘e메일 스캔들’에 휩싸이자 “힐러리는 사기꾼”,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광고를 ‘설득이 가능한자’들에게 집중 노출시켰다. 방법도 교묘했다. “사기꾼 힐러리를 물리치자”는 영어 원문인 “DEFEAT CROOKED HILLARY”에서 ‘CROOKED’의 OO를 수갑모양으로 바꿔 퍼뜨렸다. 힐러리는 패배했다.

‘거대한 해킹’에서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라면 공유와 연대를 주창해온 소셜미디어는 실상을 허상으로 바꾸는 공작소나 다름없다. 그러나 시스템은 잘못이 없다. 시스템을 악용한 인간, 그리고 휘둘리는 대중이 문제다. ‘거대한 해킹’은 대중이 똑똑하지 않으면 잘못된 선택의 희생양이 아니라 동조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는 셈이다.

대중의 속성 가운데 하나가 ‘쏠림’이다. 정의로운 사고로 무장한 개인들이 모인 대중이 좋은 방향으로 쏠리면 역사적 성과를 남긴다. 6·10민주항쟁,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촛불혁명 등이 그런 사례이다. 반면 나쁜 쪽으로 몰리면 소크라테스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나치의 거짓 선동에 휩쓸려 역사적 과오에 동참하게 된다. 지금 일본이 그렇다. 강제징용과 일본군 성노예의 사실을 외면하고 경제보복을 꺼내든 아베 총리를 두둔하고 극우인사들은 혐한(嫌韓)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최근 일본을 방문한 한 국회의원은 일본 내 전체주의적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 같다고도 했다.

지금 대한민국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반일운동’은 궤도를 이탈한 일본 정부에 대한 정당한 분노의 표현이다. 분노해야 할 땐 분노해야 한다. 그 에네르기가 사회의 변혁을 일궜다. 다만 냉철하게 따져봐야 할 대목은 있다. 6·10항쟁 때나 3년전 겨울 ‘광장의 분노’는 우리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분노였다. 지금 한·일 경제전쟁은 잘, 잘못을 따지거나 합법과 불법을 판단하는 범주를 벗어나 있다. 힘의 대결이다. 우리의 분노가 승리로 귀결되려면 ‘대한민국은 일본보다 강한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물음에 선뜻 답할 수 없다면 더 치밀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국가는 우연과 행운이 아니라 지혜와 윤리적 결단의 산물이다. 국가가 훌륭해지려면 시민이 훌륭해야 한다.”고 했다.(‘국가란 무엇인가·유시민 저·돌베개) ‘요원의 들불’처럼 일고 있는 반일운동은 일종의 윤리적 결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혜로운가? 조선 인조 때 서인들이 주전론을 앞세우자 청나라 황제는 “조선은 아녀자의 나라인데 무엇을 믿고 저러는가”라며 조롱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병자호란 당시 조선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만큼 강한 나라다. 그런데 요즘 일본 각료들의 궤변을 듣고 있으면 청나라처럼 우릴 얕잡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럴 때 일수록 우리는 ‘쓸개를 씹는’ 심정으로 우리 내부를 들여다봐야 한다. 흥분하면 혜안이 흐려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도전에 굴복하면 역사는 또 다시 반복 된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유린당하고 해방 이후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훼절된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비친다. 이번 기회에 일본과의 관계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발등에 불은 이미 떨어졌다. 급소를 찔린 반도체의 경우 장비 국산화율을 50%로 끌어올리는데 최소 5년이 걸린다고 한다. 지금은 정부의 독전(督戰)이나 대중의 임전(臨戰) 의지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당연히 분노하되, 차가운 이성을 갖고 뭉쳐야 한다. 또 일본 내 양심세력과도 연대해야 한다. 폭주하는 ‘아베의 일본’이 일본의 전부가 아니다. 지난 주말 도쿄에선 ‘노 아베’ 집회가 열렸고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중단되자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일본 작가들도 있다. 그들과 공감의 폭을 넓혀야 한다. 한·일 대중이 좋은 쪽으로 쏠려야 진실을 호도하고 실상을 허상으로 바꾸려는 음험한 술수가 비집고 들 틈이 없어진다.

김기봉 디지털뉴스국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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