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무엇이며, 역사 속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
군인 회고록 개인 영웅적 행위에 방점
역사와 개인사 동일시 해석 열린 구조
“향후 개인사가 역사보다 우위”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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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은 르네상스 시대 군인들의 전쟁 회고록을 통해 역사 속 개인의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회고록에는 전쟁에 참여한 군인 개개인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사진은 지난 6월 6일 제64회 현충일에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관람객이 6·25 전쟁 전시관을 둘러보는 모습. 뉴시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
'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은 르네상스 시대 군인들의 전쟁 회고록을 통해 역사 속 개인의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회고록에는 전쟁에 참여한 군인 개개인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사진은 지난 6월 6일 제64회 현충일에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관람객이 6·25 전쟁 전시관을 둘러보는 모습. 뉴시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

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

유발 하라리 | 김영사 | 2만2000원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유발 하라리는 ‘인류 3부작’을 통해 빅 히스토리적 관점에서 세상의 의미를 통찰했다. 보잘것 없는 존재였던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한 뒤 이제 스스로 신의 자리를 넘보게 됐다는 대서사는 불가해한 세상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탁월하고 대담한 이야기로 각계 각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세상의 의미를 구하고자 ‘우리’의 역사를 쓴 셈이다. 그렇다면 그 속의 ‘나’는 누구이며, ‘나’의 역사는 어떻게 존재할까?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은 ‘나의 의미’를 탐구한다.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파고들기 위해 하라리가 주목한 것이 바로 르네상스 시대 군인들이 남긴 회고록이다. 그들의 회고록은 17세기 중앙 집권적 근대 국가가 등장하기 전 역사(history)와 개인사(lifestory) 사이의 긴장 관계를 첨예하게 드러낸다. 왕과 민족을 핵심으로 ‘역사 만들기’를 추진하기 시작한 국가에 저항한 독립적 개인의 정치적 급진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실 르네상스 시대 군인들의 회고록은 오늘날 기준에서 구색을 갖춘 글이라고 보기 어렵다. 인과 관계로 이어진 이야기라기보단 에피소드들의 건조한 나열이고, 역사적 사건과 자전적 현실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글이다.

그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남겨 두었다. 비교 분석을 위해 하라리가 인용하는 20세기 군인 회고록에서 갈등은 “독물 같은 저 강물도 마실 것”처럼 괴로움을 유발하는 경험으로 묘사되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회고록에서는 “갈증으로 죽을 뻔했다”는 사실만 건조하게 언급될 뿐이다. 추상적 경험보다 구체적 행동이 명예의 준거인 까닭이다. 그들에게 전쟁은 왕과 국익을 위한 추상적 투쟁이기보다 실체가 있는 욕망과 명예를 위해 벌이는 승부였다.

르네상스 시대 군인들에게 역사는 영웅적인 행위, 즉 무훈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겐 전투의 이유나 영향보다 개인이 전투에서 세운 무훈이 훨씬 더 중요했는데, 용맹한 행동들이야말로 기념할 만한 가치가 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무력의 내재적 가치를 역사적 맥락보다 우선시하는 역사 인식으로 인해 르네상스 회고록은 명예로운 행동을 일화 중심으로 건조하게 나열한 ‘사실의 기록’이 됐다.

하라리는 르네상스 시대 군인 회고록이 역사적 현실을 묘사하는 방식을 역사와 개인사의 동일시로 고찰한다. 일화 중심적 역사는 기록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지며, 언제라도 추가할 수 있게 결말이 열려 있다. 각자가 인과율의 억압 없이 자유로운 글을 쓸 수 있다면, 삶 또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왕조-민족의 위대한 이야기’는 개인사가 분리된 ‘우리의 역사’다. 르네상스 시대 군인회고록은 역사와 개인사가 일치하는 ‘나의 역사’다. 물론 당대 회고록 저자는 귀족 남성으로 정체성이 한정됐고, 역사의 내용은 명예로운 행동으로 국한됐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역사와 개인사의 긴장 관계를 보여주는 잣대로 손색이 없다.

하라리는 맺음말에서 현재 역사가 결말을 열어둔 일화 모음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점친다. 르네상스 군인회고록이 개인사와 역사를 동일시했던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개인사가 역사보다 우위를 점하려 한다는 진단이다. 역사가 개인사와 개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해야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는 주장에 근거한 것이다. ‘나’의 의미가 확장되고 있음을 본 하라리는 7년 뒤 ‘사피엔스’를 출간하며 ‘우리’의 역사를 살핀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과 개인의 행복 사이에 아직 커다란 공백이 남아있다.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밝히고 있듯 “우리는 이 공백을 채워나가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 공백을 메우려는 노력의 첫걸음으로 ‘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은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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