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대동 세상

유순남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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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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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군 단위 교도소에 갔다. 찻길에서도 보이는 건물은,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저수지가 있는 지극히 평화로운 주변 가운데 서 있다. 차가 정문을 들어서는데, 스피커에서 팝송 “세일링”이 흘러나온다. 우리는 항해를 하고 있어요/ 바다를 건너 집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우린 거친 폭풍을 헤치고 항해 중이예요/ 당신 곁에 머물기 위해 자유롭기 위해…. 가사가 그곳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아침에 그곳에 음악이 흐르는 것도 예상하지 못한 일인데, 선곡까지 세심하다. 신분검색대를 거쳐 강의실로 가는 복도에는 아름다운 경치가 그려진 액자들이 걸려있다. 오래전 양심수 면회를 갔을 때 본 살풍경한 광주교도소와는 사뭇 다르다.

필자는 그날 강의를 모니터해주기 위해 동행했다. 강의실에는 20대부터 60대로 보이는 남자 30여 명이 원탁에 자유스럽게 앉아 있었다. 바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우주는 선악을 판단하지 않는다.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인연이 발생하고, 본인 외에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의 인생을 잘 운영해나가야 한다.” “인간의 마음도 중력이 작용한다. 좋은 기운은 좋은 것을 끌어당기고, 나쁜 기운은 나쁜 것을 끌어당긴다. 그러므로 기왕 끌어당기려면 좋은 인연을 끌어당겨라,”(중략)”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기록해보라. 원하는 것이 명확해졌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한 단계를 설정하고 그것과 관련된 책을 보라. 그리고 출소하면 바로 실천하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라. 믿어야 이루어진다.”

한 시간의 강의가 끝나고 잠깐의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들은 각자 가지고 온 커피, 녹차, 과자, 바나나 등을 자유롭게 먹었다. 한 청년이 가지고 있던 바나나 한 개를 옆에 있는 아저씨에게 건네자, 그는 극구 사양하며 그 청년이 먹기를 원했다. 그 모습이 참 훈훈해 보였다. 강사는 “아파서 골방에 누워있는 어머니 걱정은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저는, 애인이 아프면 애타는 마음으로 병원과 약국을 달려갑니다. 친구와 애인에게는 사소한 잘못도 용서를 구했지만, 어머니에게는 셀 수 없이 많은 잘못을 하고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에 안 계신 지금에야 저는 후회합니다.”를 끝으로 강의를 마쳤다. 강의에 심취해서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천진난만에 의아했는데, 거기는 죄가 별로 크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밖으로 나오니 임범수의 ‘아이스크림 사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곳도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우리는 행동에 옮기지 않았을 뿐 가끔 추악한 생각을 하고, 심지어 사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교도소 밖에서 잘사는 사람도 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 ‘우주는 선악을 판단하지 않는다’로 귀결되었다. 인간을 자연의 하나로 볼 때 교도소에 있는 사람이나 표창장을 받은 사람이나 모두 ‘사람’이라는 커다란 범주 속에서 각자 다른 특성을 보이는 존재일 뿐이리라. 법을 어기거나 남을 헤친 사람은 반드시 죗값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교도소 안의 사람들이 거기에 있는 것은 일정 부분 교도소 밖에 있는 사람들의 책임도 있다는 생각이다.

‘예기’ 〈예운〉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 사람들이 오직 자기의 부모만을 섬기지 않고/ 자기의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으며/(중략)/ 재물이 버려지는 것은 싫지만/ 반드시 자기 것으로 하지 않으며/ 힘써 일하지 않는 것은 싫지만/ 반드시 자기만을 위하지 않는다/ 이렇게 된다면 꾀함이 없어져서/ 도둑과 난적들이 생기지 않으니/ 대문을 닫지 않는다/ 이것을 대동이라 한다(人不獨親其親/ 不獨子其子/ (중략)/ 貨惡其棄於地也/ 不必藏於己/ 力惡其不出於身也/ 不必爲己/ 是故謀閉而不興/ 盜竊亂賊而不作/ 故外戶而不閉/ 是謂大同). 삼천 년 전 공자가 꿈꾼 ‘대동 세상’이다. 교육과 경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대동 세상만이 진정한 평화 세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