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욱의 도자이야기>청자 발전을 위한 각고의 노력, 가마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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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배천 원산리 청자 가마터 편집에디터
01-배천 원산리 청자 가마터 편집에디터

청자 발전을 위한 각고의 노력, 가마의 변천

도자기는 점력을 지닌 바탕 흙의 재질적 특성으로 인해 살아 움직이는 것을 제외한 모든 물상을 표현하고 재현하며 창조할 수 있다. 다양한 용도에 맞추어 제작되며 인간의 상상에 의해 여러 형태를 만들 수 있다. 또한, 예술적 조형과 실용적 용도를 함께 지니고 있어 그 가격도 천양(天壤)의 차이를 보이는 높은 재화(財貨)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수비와 성형 등의 공정을 거친 날 그릇은 가마에 넣어져 높은 화력을 견뎌내면 마침내 흙에서 도자로 새롭게 탄생한다. 이를 견뎌내지 못하고 터지거나 금이 가는 등 실패한 도자는 아쉬움을 남기고 폐기장으로 향한다. 이 과정에서 장인의 완벽한 기술력과 예술성, 그리고 지극한 정성, 우수한 태토와 유약의 개발, 물과 바람 등 자연의 조화, 전통과 창조의 절충 등이 어울려 고려만의 비색청자가 완성된 것이다.

가마는 도자 제작의 최종적인 과정인 불 때기를 위한 시설이지만 장인이 원하는 청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완벽한 가마 구조와 이를 운용하는 기술력, 그리고 바람과 습도 등 순조로운 자연의 조건을 맞추어야 가능하였다. 따라서 가마는 바탕 흙과 유약 등의 원료와 지역의 독특한 기후, 가마가 위치한 지형 등을 이해하여야 완벽하게 지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가마만을 전문적으로 축조하는 전문 기술자가 있었으며, 이러한 모든 조건을 이해하고 수시로 바뀌는 바람 등 자연의 변화에 맞추어 불을 땔 수 있는 전문가도 별도로 있었다. 완벽한 청자의 제작에는 가마 짓기와 불 때기 등의 전문 인력 이외에도 바탕 흙의 채취와 운반, 수비, 성형, 무늬, 유약, 땔감, 포장 등 모든 공정에 대한 기술자가 각자 있어 완벽한 천하제일의 청자를 만들기 위해 정성을 다했던 것이다.

고려에서 청자와 백자 등 자기 제작은 처음 중국의 자기 제작기술을 도입하여 개경 주변의 중서부지역에서 시작하였다. 이후 전라도를 비롯한 남서부지역에서 전통 도기 제작기술을 바탕으로 중국 기술을 받아들여 자기를 생산하였으며, 마침내 고려만의 독창적인 비색청자로 발전하였다. 이와 같은 시간적 지역적 차이는 가마 규모와 구조, 축조 재료, 번조품 등에도 반영되어 배천과 고양, 시흥, 용인, 여주 등의 중서부지역 가마는 중국의 기술을 그대로 반영하여 벽돌로 축조하고 있다. 또한, 길이 40m 내외의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연소실에 불 턱이 있어 고화도의 화력을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생산품은 청자와 백자를 함께 번조하고 있으며, 요도구로 굽 안바닥에 받친 원형의 고리 받침이 확인되고 있다. 강진과 해남, 고흥, 장흥, 함평 등의 남서부지역 가마는 신라 하대의 전통적인 도기 가마를 계승하여 진흙으로 축조하고 있다. 길이 10∼20m의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연소실에 불 턱이 없어 번조실과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생산품은 청자를 중심으로 흑자와 도기를 함께 번조하고 있으며 원형 고리 받침이 확인되지 않아 중서부지역과 뚜렷하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 가마는 고려 중기에 청자 생산의 성지(聖地)인 강진으로 기술이 집약되면서 전통의 진흙 가마를 바탕으로 연소실에 불 턱을 갖추고 길이 20m 내외로 축조되는 등 고려만의 특징으로 변화 정착된다. 또한, 중국식의 벽돌 가마는 초벌구이가 없으며, 초기의 진흙 가마 역시 강진 용운리 63호를 제외하면 대부분 초벌구이가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비색청자가 생산되는 등 고려적 요업 체계가 완성되는 중기 단계에서는 초벌구이가 정착되어 가마에서도 초벌칸이 뚜렷하게 확인되고 있다. 즉, 중국의 신기술과 전통의 도기 가마가 고려의 원료와 풍토 등에 맞추어 절충되면서 고려만의 청자를 만들 수 있도록 변화 발전된 것이다.

전라도지역에서 고려 전기의 가마는 강진 용운리 63호와 장흥 풍길리, 함평 신덕리, 해남 신덕리, 진안 도통리와 고창 용계리 등이 조사되었는데, 중국식의 벽돌 가마는 진안 도통리에서 확인되고 있으나 전라남도에서는 모두 전통을 계승한 진흙 가마만 조사되었다. 진안 도통리는 전라도 최초로 벽돌 가마의 구조가 확인되었으며, 주변에서 진흙 가마가 함께 확인되어 벽돌 가마에서 진흙 가마로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고창 용계리는 이전에 알려진 감조관(監造官)과 관계된 건물지 이외에 공방시설이 확인되어 앞으로 청자의 생산구조를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감조관 또는 ‘소(所)’의 치소와 관련된 건물지는 강진 사당리와 부안 유천리에서도 확인되었으며, 공방 시설은 용인 보정동에서 일부 확인되었으나 감조시설과 공방지가 확연하게 확인되는 사례는 고창 용계리가 처음이다. 또한, 해남 신덕리에서는 초기 진흙 가마의 평면 형태가 완벽하게 확인되어 가마 구조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식의 벽돌 가마가 확인된 진안 도통리 청자 요지(전라북도 기념물 제134호)는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중평마을 일원으로 내동산(887m)에서 뻗은 2갈래의 산줄기가 마을을 서남쪽과 동북쪽으로 감싸는데 가마터는 서남쪽 말단부에 위치한다. 이곳은 가마를 운영하면서 버린 요도구와 축요재, 청자 실패품 등이 대규모로 쌓여 있어 일찍부터 널리 알려진 요장이다. 갑발이 퇴적의 중심을 이루는 대규모의 폐기장은 초기청자 요장에서 일반적으로 확인되는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발굴조사 결과 전축요(벽돌 가마)에서 토축요(진흙 가마)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가마와 고려만의 토축요 가마가 함께 확인되어 초기 청자를 생산하였던 10세기 중반~11세기 중반 중국계의 전축요에서 고려의 독창적인 토축요로 변화되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절대적인 자료를 제공하였다.

도통리 벽돌 가마는 벽돌에서 진흙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축요계 토축요로 반지하식 단실 오름 가마이다. 가마는 요전부와 연소실, 번조실, 출입시설 등을 갖추고 있으며, 길이 43m, 너비 1.4∼1.8m, 경사도 12∼16°이다. 연소실의 평면 형태는 타원형이며, 벽체는 생토층을 번조실보다 깊게 판 다음 그 안에 벽체를 세운 반지하식 구조이다. 불턱의 높이는 35㎝로 부정형 할석을 2열 가량 쌓고 진흙을 발라 마무리하였다. 번조실은 벽체가 상부로 갈수록 점차 둥글게 곡선을 이루고 있어 궁륭형 천정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번조실의 최후 벽체는 대체로 진흙으로 축조되었으나, 연소실과 가까운 하부는 지름 20㎝ 내외의 갑발을 品자 형태로 엇갈려 쌓은 다음 진흙을 발라 보강하였으며, 상부는 길이 40㎝ 내외의 부정형 천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최후 벽체 뒤쪽에는 벽돌로 축조한 벽체가 확인되고 있어 벽돌 가마에서 진흙 가마로 변화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도통리 진흙 가마는 반지하식 단실 등요로 요전부와 연소실, 번조실 등을 갖추고 있는데, 특히 번조실 가장 위쪽 마지막 칸을 초벌칸으로 사용하고 있어 중국식의 벽돌 가마에서 고려식의 진흙 가마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가마의 규모는 전체 길이 13.4m, 경사도 16°이다. 연소실과 번조실을 연결하는 불턱은 생토층을 판 다음 외면에 갑발 2단을 엇갈려 쌓고 그 사이와 뒷부분에 점토를 발라 보강하였다. 벽체가 상부로 갈수록 둥글게 곡선을 이루고 있어 궁륭형 천정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가마 최상단을 석재로 축조하면서 점토 등으로 내측면을 마무리하지 않은 것은 특별히 화력을 관리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석재로 축조한 부분의 바닥도 다른 곳에 비해 화력이 약해 거의 소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갑발과 점토를 이용하여 축조한 곳과 석재를 이용하여 축조한 곳의 경계 부분 바닥에는 3매의 갑발이 정연하게 박혀 있어 양쪽을 구분하고 있다. 이와 같은 특징으로 보아 최상부의 석재로 축조한 부분은 고려 중기 진흙 가마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초벌구이를 번조하기 위한 초벌칸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초벌칸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전형적인 중기 가마와는 약간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연도부는 특별한 시설이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아 단순히 배연공을 통해 연기를 배출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 진흙 가마의 전형이 확인된 해남 신덕리 청자 요지(전라남도 기념물 제220호)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60여기의 초기 청자 요장이 분포하고 있는 해남군 화원면 신덕리에 위치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완벽한 상태의 초기 진흙 가마와 폐기장이 확인되어 많은 자료를 제공하였다. 신덕리는 짧은 기간 많은 가마가 운영되어 일찍부터 국내 청자 발생의 단서와 초기 청자의 기형 변화 등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유적으로 주목받아 왔다. 신덕리는 신덕저수지를 중심으로 사방에 나지막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어 가마 운영에 필수적인 땔감과 물을 공급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바다와 접해 있어 운반이 편리한 곳이다. 가마는 육덕산 남사면 말단부의 해발 48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조는 자연경사면을 판 다음 진흙으로 만든 반지하식 단실 오름 가마이다. 크기는 길이 10m, 너비 1.3~1.6m로 비교적 작은 규모로 중국의 직접적인 기술을 받아들여 만든 길이 40m 내외의 벽돌 가마와 뚜렷하게 비교되고 있다. 또한, 전통의 도기 가마를 계승하여 연소실에 뚜렷한 불턱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연도부는 번조실에서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배연공을 통해 연기를 배출하고 있다. 고려 청자 가마는 중기가 되면 중국식의 벽돌 가마는 없어지고 전통의 진흙 가마를 중심으로 전성기 비색 청자를 만들고 있어 신덕리에서 확인된 신라 하대의 전통적인 진흙 가마의 구조는 영암 구림리 등의 전통 도기 가마의 제작 기술을 계승하고 있으며, 이후 등장하는 고려 비색청자의 비밀을 푸는데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았다.

비색청자의 탄생 등 전성기 고려 중기 청자를 생산하였던 강진 사당리 청자 요지(사적 제68호)는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에 위치한다. 가마의 구조는 산기슭 경사면을 이용한 반지하식 단실 오름 가마로 전체 길이 2,012㎝, 경사도 13°이다. 특히, 연소실의 불 턱뿐만 아니라 초벌칸이 확인되어 중기 청자 가마의 정확한 규모와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는 강진 지역의 청자 가마도 고려 중기가 되면 중국의 영향을 받아 불 턱을 만들었으며, 독창적으로 초벌칸을 운영하였음을 알려 주는 뚜렷한 사례이다. 불 턱을 정확하게 갖춘 구조의 가마는 이후 고려 후기를 거쳐 조선 전기 분장청자 가마까지 지속되며, 부안 유천리를 비롯하여 용인 보정동과 대전 구완동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이 시기 전국에서 유사한 구조의 가마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사당리 가마 반대편 구릉인 남서단 사면부에서 숯가마가 확인되었는데, 평면 형태는 약간 세장한 타원형이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으나 청자 가마가 운영되던 시기에 함께 운영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숯가마는 최근 발굴조사가 요장 개념으로 확대되면서 조선시대 분장청자와 백자 가마 주변에서도 확인되고 있으나 정확한 기능은 정립되지 않고 있다. 이들 숯가마는 자기 제작에 필수적인 유약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운영하였다는 주장이 있으나 아직 학술적으로 입증되지 않고 있어 향후 더욱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겠다.

고려 중기 사당리 가마에서 확립된 불 턱과 초벌칸을 갖춘 가마는 이후 조선 전기의 분장청자 가마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청자 생산에 효율적 가마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분장청자와 백자를 함께 번조하고 있는 고흥 운대리 분장청자 가마 등에서 불창 기둥이 확인되고 있어 백자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가마에 밀려 퇴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청자보다 훨씬 높은 화력이 필요한 백자에 맞는 새로운 가마가 등장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고려의 자기 가마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벽돌 가마로 출발하였으나 이후 전통의 진흙 가마와 공존을 거쳐 중기가 되면 진흙 가마와 벽돌 가마를 절충한 길이 20m의 고려적인 진흙 가마가 등장하는데 초벌칸이 불분명한 유형에서 초벌칸이 뚜렷한 유형으로 변화한다. 또한, 고화력을 얻는데 편리한 중국식 가마의 장점인 불 턱은 그대로 수용하여 고려만의 독창적 가마 구조를 완성하고 있다. 즉, 고려만의 재료와 풍토 미감, 기술에 맞는 새로운 가마를 개발하여 비색청자를 창조하고 독창적인 청자문화를 이끌었던 것이다.

02-진안 도통리 청자 가마터(벽돌, 군산대학교박물관)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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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영암 구림리 도기 가마터(민족문화유산연구원) 편집에디터
03-영암 구림리 도기 가마터(민족문화유산연구원) 편집에디터
04-해남 신덕리 청자 가마터(진흙, 민족문화유산연구원) 편집에디터
04-해남 신덕리 청자 가마터(진흙, 민족문화유산연구원) 편집에디터
05-강진 사당리 43호 청자 가마터(민족문화유산연구원)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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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고흥 운대리 14호 분장청자 가마터(민족문화유산연구원) 편집에디터
06-고흥 운대리 14호 분장청자 가마터(민족문화유산연구원) 편집에디터
07-강진 사당리 숯 가마터(민족문화유산연구원) 편집에디터
07-강진 사당리 숯 가마터(민족문화유산연구원)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