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교무행정사 죽음… 뒤늦은 산재 이제라도”

전국여성노조, 근로복지공단 광산지사 앞 기자회견
지난해 교내 부조리 고발 후 신원유출로 극단적 선택
노조 “불법적 신상 공개·직장 내 괴롭힘 등 산재 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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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광주 광산구 우산동 근로복지공단 광산지사 앞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 회원들과 숨진 장성 교무행정사 정모씨 유족, 나경채 정의당 광주시당 위원장 등이 정씨의 산업재해 승인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김정대 기자 nomad@jnilbo.com
22일 광주 광산구 우산동 근로복지공단 광산지사 앞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 회원들과 숨진 장성 교무행정사 정모씨 유족, 나경채 정의당 광주시당 위원장 등이 정씨의 산업재해 승인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김정대 기자 [email protected]

꼬박 8개월이 걸렸다. 장성 모 사립고등학교 교무행정사 정모(당시 29·여)씨의 억울한 죽음을 달랠 길은 산업재해 신청 뿐이었다.

그에 앞서 정씨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밖에 없었는지 진상을 알아야 했다. 이를 밝히는 데 앞장서도 모자랄 판에 교육당국과 해당 학교 측은 진행중인 형사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협조를 거부했다.

22일 정씨의 남편 윤모(41)씨 등 유족과 전국여성노동조합 회원들은 지난 8개월 간의 싸움 끝에 마침내 정씨의 산재 신청을 마무리 했다. 이들은 이날 광주 광산구 우산동 근로복지공단 광산지사 앞에서 정씨의 죽음에 대한 산재 승인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공단 측에 산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 억울한 죽음, 뒤늦은 산재

장성 모 사립고에서 교무행정사로 근무했던 정씨는 지난해 12월3일 광주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정씨는 그해 1월께 교감 승진예정자였던 박모(60)씨의 부적절한 행실을 고발하는 글을 국민신문고에 올렸다. 그러나 해당 민원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전남도교육청·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행정 실수로 신원이 유출돼 지난해 4월부터 박씨로부터 지속적으로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배후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으면 고소하겠다’ 등의 내용이 담긴 박씨의 문자메시지를 받기 시작한 지 사흘만인 4월10일 약물 과다복용으로 자살 시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5월 말부터 3개월간 질병휴직을 신청할 정도로 우울증이 악화됐다.

두 번째 자살 시도를 했던 6월께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나라가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보호 받아야 할 사람이 가해자가 됐다’는 취지의 내용이 적힌 유서까지 작성해 둬 가족들의 억장이 무너지게 했다. 정씨는 지난해 12월께 또 다시 자살을 시도했고 결국 고인이 됐다.

내부고발 사실이 유출된 후 고립되다시피 한 정씨는 두려움에 떨다 전국여성노조에 손을 뻗었다. 정씨가 고인이 된 직후부터 노조는 정씨의 남편 등 유족들을 추스리며 교육당국과 학교 측에 지속적인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산재 신청을 위한 수순이었지만 쉽사리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유족과 노조는 지난해 12월28일 최초로 전남도교육청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고, 올해 5월9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등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후 학교 측이 협조 의사를 밝혀와 지난달 2차례에 걸쳐 진상 조사 차원의 학교 관계자 면담을 진행할 수 있었다.

김경미 전국여성노조 광주전남지부장은 “당시 학교 측은 숨진 정씨에 대한 강요 등 혐의로 박씨가 경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형사 사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협조를 거부했다. 전남도교육청도 마찬가지였다”면서 “2차 기자회견 후 반성인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학교 측이 협조하기로 돌아서면서 뒤늦게나마 산재 신청을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 산재 관건은 업무 연관성

오랜 싸움 끝에 겨우 산재 신청을 이뤄냈지만, 문제는 승인 여부다. 통상 산재가 인정되려면 업무 연관성이 입증돼야 한다. 유족들을 돕고 있는 홍관희 노무사는 산재 승인이 기꺼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간 노조는 지속적으로 교육당국과 학교 측에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학교 내 부조리를 고발한 것이 발단이 돼 정씨가 억울한 죽음에 이르게 됐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경찰 조사를 통해 드러난 박씨의 지속적인 협박 외에도 정씨가 어떤 고통을 받아왔는지 다각적인 근거가 요구됐다.

홍 노무사는 “학교 측의 협조로 정씨와 가까이 있던 교직원 등과 심층 면담을 진행했다”면서 “정씨가 국민신문고에 박씨를 신고하게 된 것은 교무행정사 업무 과정에서 그의 부적절한 전력을 알게 된 점이 작용했다. 또 조직 내에서만 알 수 있는 일을 내부고발한 것이기 때문에 연관성이 있다고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홍 노무사는 이번 사건을 지난 16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근로기준법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는 “협박을 받기 시작하며 우울증 진단을 받는 등 병원 기록도 확인했다”면서 “숨진 정씨의 직장 동료이자 상급자인 박씨가 직장 내 상하 관계를 이용해 접근, 국민신문고 고발 취하를 강요하는 등 업무 범위를 넘어선 압력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홍 노무사는 생전에 제도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 고인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되돌아보면 고인이 겪어야 했던 우울증과 사망에 대해 업무 연관성을 찾는 것 또한 개인에게 떠넘겨졌다. 학교과 행정당국은 공식적인 사과를 했는지, 대처에 나섰는지 묻고싶다”면서 “모든 것은 사회적 약자였던 고인만의 몫으로 강요됐다. 이제라도 고인의 산재를 인정해야 할 이유”라고 말했다.

김정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