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정보화 시대 ‘그림자 전쟁’ 대비를

최성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前 주 폴란드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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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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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년 전 지구상에 등장한 인류는 헤아릴 수 없는 크고 작은 전쟁을 겪으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인류사가 곧 전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일찍이 프로이센의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 곧 정치의 연속”이라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인류가 전쟁을 거듭하면서 살상용 기술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온 결과, 지금 우리는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는 물론, 군사용 드론과 극초음속 미사일 등 첨단무기가 횡행하는 위험스런 세계에서 살고 있다.

21세기 들어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디지털 혁명의 결과, 인터넷 기술은 인공지능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을 명실상부하게 이끌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술의 고속발전은 인류의 전쟁 수행방식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한다. 따라서, 미래의 전쟁에서는 인터넷과 인공지능 등 신기술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사이버 공간에서의 모든 활동은 익명성과 책임귀속(attribution) 문제라는 양대 속성을 전제로 하다 보니, 사이버 공격은 물론, 사이버 반격도 이러한 속성에 의존하여 내밀히 움직이려 한다.

이처럼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던 과거의 전쟁방식에 따르지 않고서도, 인터넷과 인공지능, 드론 등으로 은밀하고 효과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시대가 바야흐로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신기술을 적극 활용한 새로운 전쟁방식을 그림자 전쟁(shadow war)이라고 한다. 숀 맥페이트 조지타운대 교수는 “정보화 시대에는 화력(火力)보다도 익명성(匿名性)이 훨씬 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술의 고속진보에 따라 이러한 추세는 더욱 보편적으로 심화되고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그림자 전쟁은 각종 무기를 동원한 직접적인 군사공격 대신에 상대국의 기반시설과 시스템을 사이버 및 드론 등을 통해 간접적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타격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는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현재 폴란드와 에스토니아 등 상당수의 국가들은 자국의 핵심 기반시설을 대상으로 하는 사이버 공격 및 가짜뉴스를 이용한 선거 개입 시도 등에 대처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경우, 상대국에 대해 가짜뉴스와 사이버 공격 등 다양한 방식의 그림자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된다. 이는 과거 냉전 시기에 성행했던 스파이戰에 비해 그 규모가 크고 본격적이다. NATO 동맹국들도 2014년초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발한 이래 러시아의 다각적 도발에 대비하기 위해 상호 공조를 일층 강화하고 있다.

남북분단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는 향후 전쟁 수행방식의 변화가 한반도의 군사안보 환경에 미칠 함의를 예의 주시하면서 적시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 즉, 북한이 재래식 무기와 대량살상무기를 동원한 직접적인 군사공격뿐만 아니라, 사이버 및 드론, 전자기파(EMP) 등을 이용한 은밀한 대남도발을 자행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만반의 방책을 세워야 한다. 사이버안보 강화와 드론 방어용 무기개발 등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북한이 7000명에 달하는 사이버 전력을 동원해 우리 정부기관 및 핵심 기반시설과 기업체에 대한 각종 사이버 공격을 집요하게 계속하고 있고, 댓글과 가짜뉴스 등 다양한 대남 선전선동 매체를 통해 우리 사회를 교란시키려 획책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면적인 총성과 포성이 울리지 않고서도, 대한민국이 그림자 전쟁에 맥없이 당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